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항우울제가 필요한 이유

우울증에서 약물치료는 매우 중요합니다. 아마도 ‘우울증은 약 대신 의지로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분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과 함께 피로감, 불면 및 식욕 저하 등의 신체 증상, 사고력과 집중력의 저하, 부정적 인지 왜곡 등이 복합적으로 동반되는 상태로,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며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환입니다.

특히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은 상담과 함께 약물치료가 병행될 때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치료될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히 쌓여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항우울제와 관련된 정보의 부족과 여러 오해로 인해 정신과 방문 및 약물치료가 늦어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치료가 늦어지면 우울 증상의 강도나 기간이 늘어날 수 있으며, 회복된다고 해도 향후 재발의 위험성이 증가하게 됩니다. 잘못된 정보로 인한 늦은 치료가 ‘우울증에 취약한 뇌’를 만들게 되는 것이지요. 

 

우울증은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깨지는 것!

우리 뇌 속에는 여러 종류의 신경전달물질과 이들에게 딱 맞는 모양을 가진 수용체가 존재합니다. 뇌 속을 떠돌아다니는 신경전달물질은 마치 크기가 맞는 건전지를 넣어야 전구가 켜지는 것처럼 자신에게 맞는 수용체에 정확히 붙을 때 고유의 기능을 발휘합니다. 우울증은 여러 신경전달물질 중 특히 감정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해진 상태로, 이들이 수용체에 접촉하지 못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여 발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해지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유전적 요인이 있거나 성장기의 부적절한 양육, 심리적 트라우마 등을 겪으면 감정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이 쉽게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외부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신경전달물질이 고갈되는데, 이때 긍정적, 부정적 정서를 조절하기 어려워지면서 우울증이 발생하게 됩니다. 

 

감정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 -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감정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은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으로 우울증의 발병과 치료에 가장 중요합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긍정적인 정서가 너무 적은 것, 부정적인 정서가 과도한 것의 두 가지 기분 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때 도파민 부족이 긍정적 정서에 영향을 미쳐 행복감, 즐거움, 정신의 각성, 열정, 자신감 등을 감소시킵니다. 반면 세로토닌 부족은 부정적 정서에 영향을 미쳐 죄책감, 공포, 불안, 공격성, 짜증, 외로움 등을 증가시킵니다. 노르에피네프린은 긍정적, 부정적 정서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어 이들의 조합으로 우리의 감정 상태가 결정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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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울제가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

항우울제가 우울증을 치료하는 기전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복용 초기에는 스트레스로 고갈되어 버린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이 더 이상 부서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하여 이들의 농도를 원래 상태로 복구시킵니다. 비유하자면 건전지가 방전되어 꺼져 버린 전구에 새로운 건전지를 넣어 다시 불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항우울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신경전달물질뿐 아니라 이들과 짝을 이루는 수용체에도 영향을 미쳐 신경전달물질과 접촉하였을 때 더욱 효과적으로 기능하게 만듭니다. 이 경우는 전구 자체를 업그레이드하여 동일한 건전지를 넣어도 더욱 밝게 빛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의 치료에는 수용체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항우울제를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항우울제의 종류

항우울제는 작용기전에 따라 1세대와 2세대로 나뉩니다. 1세대, 2세대 약물은 모두 우울증에 효과적이며, 여러 연구에서 치료 효과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다만 1세대 약물은 2세대에 비해 졸음, 체중 증가 등의 부작용이 있는 편이어서 최근에는 2세대 약물을 조금 더 선호합니다. 그럼에도 사람에 따라서는 1세대 약물에 부작용이 없고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기 때문에 1세대 약물을 사용할지 2세대 약물을 사용할지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세대 약물은 감정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에 선택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비교적 부작용이 적습니다. 또한 2세대 약물 중에서도 종류에 따라 세로토닌에 주로 작용하는 약, 노르에피네프린 또는 도파민에 주로 작용하는 약이 나뉘어 있어 우울증의 증상, 개인의 성향에 맞춰 처방하기도 합니다. SSRI, SNRI, 부프로피온 등 다양한 2세대 항우울제가 있으므로 정신과 의사의 진단에 따라 나에게 맞는 약을 고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항우울제의 치료 기간

항우울제를 복용한다고 해서 바로 우울증에서 회복되는 경우는 많지 않으며, 치료 시작 후 1개월 정도 지나서야 완전한 치료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는 항우울제가 신경전달물질뿐 아니라 신경전달물질의 수용체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1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장에 변화가 없더라도 항우울제를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항우울제를 처방할 때면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보았을 때 6~9개월 이상 지속 투여하는 것이 권고됩니다. 우울증의 가족력이 있거나 재발성 우울증인 경우에는 이보다 치료 기간이 더 길어지게 되며, 때에 따라서는 수년간의 지속적인 복용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항우울제의 부작용

우울증의 약물치료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부작용의 걱정 때문일 것입니다. 항우울제도 약물인 만큼 부작용이 당연히 있습니다. 하지만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장기간 복용했을 때 간을 손상시킨다든지, 뇌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혹시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용량을 조절하거나 약을 중단하면 대부분 수일 내에 사라지는 가역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과도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부작용의 종류는 개인과 약물의 특성에 따라 매우 다른데, 졸림 혹은 불면, 체중 증가 혹은 체중 감소, 오심 구토 등의 소화기 증상, 사정 지연이나 성욕 감소 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항우울제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바로 치료를 포기한다기보다는 정신과 의사와 상의하여 나에게 맞는 약물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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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울제와 관련된 오해 - 1. 항우울제를 먹으면 약물에 의존하게(중독되게) 된다.

많은 사람이 항우울제를 먹으면 평생 중독되어 끊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사실과 다르며 항우울제는 중독성이 없는 약입니다. 실제로 정신과 영역의 몇몇 약물은 중독의 우려가 있습니다. 이러한 약물에 중독된 환자들은 약을 처방받기 위해 응급실을 내원하거나 증상을 흉내 내며 더 처방해 달라고 애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평생 진료를 보면서 ‘제발 항우울제 좀 더 처방해주세요’라고 부탁하는 환자는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항우울제를 중단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금단 증상이 있을 수는 있으나 의사와 미리 중단 계획을 세운다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습니다.

 

항우울제와 관련된 오해 – 2. 항우울제는 뇌를 망가뜨린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항우울제 먹고 바보가 될까 봐 무서워요’라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이 역시 사실과 다릅니다. 오히려 항우울제를 먹지 않고 우울증을 방치하면 몸 안의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하여 뇌에 손상을 일으킵니다. 실제로 MRI를 이용한 연구에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라는 부위가 줄어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니 뇌 건강을 위해서라도 항우울제를 복용하여 빠르게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항우울제가 발명된 이후 수많은 사람이 우울증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혹시 우울증을 앓고 계신다면 이 글을 읽고 항우울제에 관한 잘못된 정보와 오해에서 벗어나 효과적인 치료를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희주 원장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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