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슬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이는 일본의 정리 전문가인 곤도 마리에가 한 말입니다. 물건을 겹겹이 쌓아 놓지 말고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물건들만 남기고 모두 정리하자는 정리법인데, 그녀의 정리정돈 과정을 보면 다소 특이합니다. 집과 주변 사물들에 그간 자신을 잘 돌봐주어서 고맙다고 기도를 하면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정리 정돈하는 일을 흡사 명상하는 것처럼 주변의 사물을 진중하게 또는 성스럽게까지 여기는 그녀의 태도 때문에 그녀의 정리법은 넷플릭스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또 책은 스테디셀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쁜데 왜 정리를 해야 하지?’ 귀찮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New Mexico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공간이 어수선할수록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을 직접적으로 방해한다고 합니다. 또, 집안이 흐트러져 어수선할수록 스트레스 대처 호르몬인 코르티솔은 증가합니다.

 

당신은 물건뿐 아니라 감정에 대한 정리도 잘하는 사람인가요? 과거에 벌어졌던 한 사건에 대해 감정이 정리되지 않으면 다른 일을 진행하는 데 방해를 받거나 즐거움 등 다른 감정을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바로 물건을 제때 정리하지 않으면 무엇을 찾을 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쾌한 기분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의 감정은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기 때문에, 정리가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가 잘 들지 않죠. 하지만 사물이나 감정이나 정리를 잘 안 하면 불쾌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감정을 정리하는 것이 더욱더 어렵죠. 지금까지 감정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수납정리 전문가들이 알려주는 집의 온갖 사물들을 정리하는 정리정돈 팁을 따라 어렵게만 느껴지는 우리의 감정도 같이 정리해 봅시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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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현재 상태를 먼저 확인한다

왜 정리를 하려고 하는지, 어떻게 불편한지, 얼만큼의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지 등을 먼저 고려해야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감정을 정리할 때도 무엇보다 현재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자면, 현재 나의 기분은 어떤지, 어떤 문제로 불편감이나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지, 또 어떻게 해결되길 바라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② 정리할 구역을 정하고, 작은 단위로 나누어라

집 전체 > 거실 > 책장 > 서랍 5개, 책 선반 10개 등과 같이 정리할 공간을 작은 단위로 나누는 것입니다.

나에게 스트레스 주는 상황을 시간으로 혹은 사건이 일어난 장소로 구분해 봅니다. 한 예로서, 회의 시간에 업무와 관련하여 정대리랑 언쟁이 있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와서도 정대리가 계속 나를 보는 척 만 척합니다. 이때 감정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면, 회의실(공간)에서 언쟁이 있었던 11시경(시간)에 일어났던, 나의 감정으로 한정하는 것입니다.

 

③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

수납 전문가들은 정리도 습관이라고 합니다. 하루에 10분, 딱 서랍 한 개 정도만 정리하라고 합니다.

감정 정리도 마음에 걸리는 것 중 딱 한 가지 만을 해결해 봅니다. 회의 시간에 가장 마음에 걸리는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딱 그거 하나만 정리하는 것입니다. 사람 많은 회의 자리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며 나를 쳐다보던 신경질적인 정대리의 표정. 그 표정에만 초점을 둡니다. 회의 중에 한숨을 내쉬던 모습이나 예전부터 싹수없었던 행동은 오늘 정리할 감정이 아닙니다.

 

 ④ 사용하지 않는 것은 버려라

버리는 기준은 ‘사용하고 있는 물건인지, 아닌지’라고 정리 전문가들은 강조합니다. 추억이 담겨 있는지, 내가 좋아하는지가 아니라 나에게 유용한 것인지가 기준이 됩니다.

감정 또한 나에게 유용하지 않다면 그 상황과 상황이 일으키는 감정을 과감히 마음속에서 흘려보내시길 바랍니다. 정리하려 해 보았으나 부정적인 감정만을 일으키는 사건이라면 더 깊게 생각하지 말고 흘려보내도록 해 봅니다.

 

⑤ 사지 말아라

정말 필요한 물건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봐서 불필요한 물건이 쌓이지 않게 하는 것 또한 정리의 중요한 방법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물건을 살 때 돈/가치를 지불합니다. 감정을 간직할 때는 그 정서가 나에게 가치 있는 것인지 되돌아보고 의미를 부여해 보세요. 부정적인 정서의 창고를 마음속에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⑥ 바로 정리한다

사용한 물건은 바로 제자리에 두어야 정리된 상태가 유지됩니다. 책을 읽고 나면 책장에 꽂고, 연필을 쓰고 연필통에 넣어야 대혼란의 카오스 같은 책상을 만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사건이 일어나면 가능한 한 빨리 감정이 어떤지 살펴보고 다루어야 합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오다 가다 보이는 책상 위에 펼쳐 놓은 책을 볼 때처럼 계속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건에 대한 감정을 서운함, 화남, 속상함 등의 정서 단어로 명료화하고, 필요하다면 당사자에게 혹은 친구에게라도 이야기해 보세요.

 

이상 여섯 가지 단계를 거쳐서 차근차근 감정을 정리하는 법을 알아보았습니다. 트렌드를 넘어서서 이제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까지 여겨지는 정리 정돈법. 이제는 자신에게 중요한 감정을 회피하거나 어쩔 줄을 몰라 쌓아 두지 마시고, 그때그때 건강하게 감정의 정리 정돈 습관을 들여 보시기를 권합니다.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슬기 원장

이슬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서울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 대전,서울지방병무청 병역판정의사
(전) 서울 중랑구 정신건강증진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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