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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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40대 초반 직장인 미혼 여성입니다. 연애와 관련해 고민이 되어 사연 남깁니다. 저는 호불호가 강한 편이라서 저를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노력해서 사귀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사귀면 4~5년 정도 길게 만났고, 가장 짧은 만남도 2년 정도였습니다. 나이가 있는 편이지만 만난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닙니다. 결혼 생각도 별로 없어서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기보다는 제 마음이 가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늘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못하고 헤어지곤 했습니다. 

몇 달 전 모임을 통해 다섯 살 연하의 남자를 알게 되면서 진지하게 결혼까지 생각하며 만나 보려고 했는데 한 달을 못 넘기고 헤어졌습니다. 사실 사귀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것이 상대방은 저와 사귀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제가 먼저 연락을 해 와서 분위기를 맞춰 준 것이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거절 아닌 거절처럼 관계가 정리되고 나서 저도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모임에서도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남짓했던 이 관계가 정리되고 난 후 제 마음에 생각보다 후폭풍이 컸습니다. 몇 달이 지났는데도 상처가 아물지 않고 저를 잊은 듯한 그 사람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나이가 더 어릴 때는 연애를 하면서 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정리당하는 것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왜 이렇게 후유증이 오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공대 졸업 후 직원의 90%가 남자인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와 헤어져도 늘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저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 나이가 많아지다 보니 저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소개팅도 전처럼 잘 들어오지 않고 외로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전에는 이렇게 외로움을 많이 느낀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외로운 것보다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듭니다. 하지만 이렇게 외로운 마음에 누구를 만나는 것이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한 달간 만났던 연하 친구가 저에게 상처를 준 것도 제가 연애를 잘 못해서 그런 것 같고, 그래서 연애 자신감도 떨어지고 우울하고 힘듭니다. 

저는 좋은 직장에서 인정받으면서 인생을 즐기며 사는 편이고 친구, 가족 관계도 모두 원만합니다. 다만 친한 친구 중 아직 미혼인 사람은 저 하나뿐입니다. 다른 인간관계에서는 자신감도 있고 거침없는 성격인데 유독 연애에서는 저를 을로 만들고 제가 저에게 상처 주는 연애를 합니다. 친구들 말로는 제가 좋아하는 감정을 너무 남자에게 티 내지 말라고 하는데, 저는 감정 표현을 직설적으로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 그런 표현이 상대방에게 부담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연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남겨 주신 사연 잘 살펴보았습니다. 지난 연애의 후유증과 연애 관계에서 자신감이 낮아지는 점으로 인해 고민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연애를 제외하고는 직장생활이나 대인관계, 가족 관계 등 전반적인 삶에 만족감도 있고 잘 지내고 계신 듯한데 유난히 연애가 잘 풀리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연애는 쌍방향적이기에 혼자만 노력하거나 좋아한다고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사연자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늘 연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연 초반에 본인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을 노력해서 사귄다고 말씀해 주신 내용으로 비춰 봤을 때 사연자님은 아마 굉장히 주체적이고 주관이 뚜렷하신 분인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이성상이나 본인만의 기준도 확고한 편이실 듯합니다. 

저는 사연자님이 질문 주신 연애에 대한 자신감을 높이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사연자님이 현재 연애나 결혼에 그렇게 큰 비중을 두고 계신 이유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원래 결혼 생각이 크게 없다고 하셨는데 결혼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요? 사연에서도 말씀해 주셨지만 아마 외로움과 주변 친구들이 모두 결혼했는데 혼자만 아직 미혼이라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요? 

 

결혼이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지고 주변에도 미혼 친구가 대다수였던 20대와 30대 초반을 지나 30대 중후반, 40대로 갈수록 결혼이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고, 어느새 주변에는 기혼자가 훨씬 더 많아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연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미혼의 이성도 많고 여가를 함께 보낼 동성 친구도 많았던 삶의 반경이 점차 좁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물론 사연자님처럼 모임이나 동호회 등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계속 삶의 활력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던 20~30대에 비해 더 많은 노력과 시간,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 주변 친구들이 어느새 모두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고, 삶이 달라지는 것을 볼 때 싱글로서 행복하고 화려했던 삶이 조금은 외롭고 정체된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아마 이런 감정은 사연자님뿐만 아니라 많은 30~40대 미혼남녀들이 느끼는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감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다수가 기혼자인데 혼자 미혼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대화의 주제도 적어지고, 생활양식도 달라지면서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과도 거리감이 느껴지고 예전만큼 자주 만나기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결혼을 필수로 생각하지 않는 사회적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고, 비혼주의자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소위 결혼 적령기라고 하는 시기에 있는 혹은 그 시기를 지났다고 여겨지는 미혼 남녀들은 일종의 ‘소수자(minority)’가 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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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는 개인의 삶에 ‘생애주기(life cycle)’와 ‘발달과업’이 있다고 봅니다. 출생기, 유아기, 학령기, 청소년기, 성년기. 중년기, 노년기처럼 삶의 주기가 있으며 해당 시기마다 이루어야 할 발달적인 과업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중 성년기는 일을 통한 직업적 정체감 형성과 함께 경제적 기반을 다지고 친구, 가족, 배우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어 가는 시기입니다. 중년기는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오는 만족, 자녀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성장시키고 다가올 부모님의 죽음에 준비하는 것, 오래된 친구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한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주된 과업입니다. 

나이가 들며 생애주기의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우리는 새로운 발달과업을 마주하게 되고, 그것을 이루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발달과업 중 충족되지 않은 것이 있을 때는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끼기도 하고 말입니다. 

사연자님 역시 지금 그런 생애주기의 전환 과정에서 가정이나 친밀한 연인 관계에 대한 욕구를 더 크게 경험하고 계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또 원하시는 것처럼 좋은 연인 관계 혹은 가정을 만드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당장 이런 부분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조바심을 느끼거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지금의 외로움이나 허전함을 새로운 만남으로 잠시간 달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지금 연애를 쉬고 계신 이 시간을 통해 사연자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앞으로의 연인 관계나 미래의 가정생활이나 삶에서 원하는 바를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연인을 만나거나 가정을 꾸린다고 해서 내면의 외로움이 근본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하지 못한 연애나 가정생활은 혼자였을 때보다 더 큰 외로움을 느끼게 만들기도 합니다. 

 

지난 연애에서 상대방에게 모두 맞춰주는 을의 연애를 해 왔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본인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을 노력해서 만나시다 보니 더욱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솔직하게 표현하고 이것저것 재지 않고 내 마음이 원하는 만큼 주는 것은 용기 있고 멋진 모습입니다. 그러나 상대방과 속도를 맞춰 가며, 상대도 부담스럽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사연자님이 스스로를 지나치게 희생하는 방식이라면 장기적 관점에서는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친밀하면서도 독립된 인격체로 적당한 거리와 경계를 유지할 때 건강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야겠지만, 애써 노력하거나 꾸미지 않아도 사연자님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분을 만날 수 있도록 더 솔직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다가가시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외로움이나 공허함을 연애를 통해서만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다양한 사람들이나 활동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고, 지난 연애의 패턴을 돌아보고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됩니다. 또, 결혼을 생각하신다면 현실적인 조건과 이상형 사이의 균형을 맞춰서 기준을 설정하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연애에서는 을이 아닌, 동등한 입장에서 긍정적 시너지를 내는 관계를 맺으실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규홍 원장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의과전문대학원 졸업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수료
METTAA CBT / Schema Therapy Exp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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