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공의 수련 시절 매주 월요일 아침, 병동 입원 환자들의 치료 경과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회의를 주관하시던 A 교수님께서는 입버릇처럼 환자들의 연애 유무와 지속 기간에 대해 질문하셨습니다. 첫 회의에서 저는 우물쭈물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주치의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사항을 모른다고 꾸지람을 들었지만 그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갸우뚱했습니다. 이후로 수련을 쌓으며 깨달은 내용을 적어 보려고 합니다. 글의 결론은 제목과 같습니다. 가장 훌륭한 정신과적, 심리적 치료자는 여러분의 연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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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발달과 관련해, 특히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 대해 많은 이론들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핵심을 추려서 말하자면, 우리는 어머니와의 초기 관계 속에서 인간 관계에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능력을 배웁니다. 기본적 신뢰, 애착, 감정 조절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 때 익힌 것들을 바탕으로 관계는 확장되어 나갑니다. 아버지가 합류하면서 보다 입체적인 인간 관계가 펼쳐집니다. 또 친구들, 또래와의 관계는 사회적 관계의 기초가 됩니다. 이러한 발달은 탑을 쌓아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아래층이 안정되어 있어야 위층을 잘 쌓을 수 있습니다.

아래층이 잘 쌓이지 못했거나 탑을 잘 쌓던 중, 외부에서 강한 충격이 가해진다면 탑은 잘 서 있기 어렵겠죠. 초기 발달이 안정적이지 못했거나, 성장 중에 커다란 외상-학교 폭력 등-을 경험한다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불안정함을 느끼기 쉽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언제 끝나버릴지 모르는 위태로운 것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언제든 나를 떠나거나 혹은 내게 해코지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러한 대인 관계의 문제를 치료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 가지 비유를 더 들어 보겠습니다. 축구를 할 때 공을 차는 자세가 잘못되었다면 훈련을 통해 교정해야 합니다. 충분한 훈련을 통해 자세를 숙달하여야 실제 경기에서도 올바른 방향으로 공을 찰 수 있습니다. 매일 마주치는 인간 관계는 실전과도 같아서, 충분한 연습과 교정이 없이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상처받을 뿐입니다.

초기에 잘못 형성된 자세를 바로잡는 것, 축구에서의 교정 훈련에 해당하는 것이 연인과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조금 더 깊고 안정적이며, 조금 덜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높은 신뢰감과 안정성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돌아볼 여유가 있는 관계입니다. 상대방에게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을 고치고, 관계를 보다 안정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시도를 해볼 수 있습니다. “너를 만나고 나서 나는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었어”라는 표현은 진부하지만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대인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드리는 이야기이지만, 그런 분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나름대로의 모나고 못난 부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롭지 않지요. 많은 부분에서 미숙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곤 합니다. 연인과의 성실한 관계, 상대를 배려하고자 하는 노력은 그런 우리를 보다 편안하고 행복한 사람,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우리의 가장 훌륭한 치료자는 연인입니다.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으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인턴,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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