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사실 답은 제가 잘 알고 있지만 조금 힘들어서 글이라도 써 봅니다. 저는 이때까지 만나 왔던 남자들한테 거의 대부분 잠자리에 대한 상처를 받았습니다. 나를 좋아해서 만나는 건지, 내 몸을 좋아하는 건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이기적인 모습을 많이 봐 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남자를 안 만나려고 하다가도, 또 잘해 주는 모습을 보면 사귀게 되고 또 상처를 받는데… 사실 다 제 잘못 같습니다. 제가 가끔 거부 의사를 밝히면 조르거나 끝까지 매달리는 남자들이 너무 혐오스러웠지만… ‘그래도 남자 친구니까.’, ‘내가 좋아서 이러겠지.’ 하면서 넘어갑니다. 하지만 결국 그런 관계는 빨리 정리되었어요.

전 남자 친구에게는 몰래 촬영을 당하거나, 싫다는데도 딱 한 번만 하자며 거의 반강제로 당하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범죄행위인데… 그 당시에는 뭐에 홀린 듯이 그냥 좋게 넘어가고 그랬어요. 장난스러웠으니까요.

그때 상처를 제일 크게 받아서 마음의 문을 닫았다가, 현재 2년간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가 생겼습니다. 그동안 만났던 남자들에 비하면 꽤 괜찮다고 생각해 오래 만나게 됐는데, 가끔씩 또 그런 상황이 옵니다. 거부 의사를 밝혀도 끝까지 조르는….

이제 그 상황이 너무 지겹고, ‘제대로 화내도 별로 상대방에게 타격도 없구나.’ 하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낍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남자 친구와 원만한 스킨십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저도 스킨십을 싫어하는 편이 아닌데, 남자들이 이럴 때마다 저의 스킨십 욕구는 아예 없어져 버리고 남자 친구일지라도 증오심이 듭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의사도 똑 부러지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제가 한심하네요. 진지하게 이야기해도 늘 그때뿐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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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올려 주신 고민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연인과의 연애에 있어 스킨십 문제와 관련해 고민이 있어 상담글을 올려 주셨네요. 먼저, 용기 내어 이렇게 사연을 올려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성과 사랑을 나누거나 연애를 하는 데 있어 스킨십은 서로의 애정을 표현하고 확인받는 중요한 소통 방식입니다. 이성 간의 스킨십이란 것이 다른 제삼자는 끼어들 수 없는, 오직 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애정과 친밀함을 나누는 행위이기 때문일 텐데요. 

연인 사이의 스킨십은 서로간의 정서적 교감과 심리적 안정감을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는 낮추고,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하는 ‘옥시토신’을 분비시켜 사랑의 감정과 유대감을 증진시켜 줍니다. 이처럼 사랑하는 연인 간의 스킨십은 자연스러운 애정 행위이자, 우리의 몸과 마음에 안전감을 가져다주는 건강한 욕구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성 간의 교제 시에 이러한 스킨십과 관련해 서로 간에 원하는 시기나 빈도, 스킨십의 수위 등에 있어서 의견 차이가 많이 클 때입니다. 이처럼 스킨십에 대한 서로 간의 욕구 차이가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서로가 마음이 다치지 않고 이 간극을 좁혀 나가며 관계를 원만하게 이어 갈 수 있을까요? 

 

사연자님께서는 과거 연인과의 관계에서 스킨십과 관련해 여러 차례 마음을 다쳤던 경험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그러다 보니 지금의 남자 친구가 사연자님께서 원하지 않을 때 스킨십을 요구하는 상황이 오면 무의식적으로 과거에 느꼈던 좋지 않은 감정들이 올라와 지금의 상황에 더욱 민감해지고, 남자 친구에게 ‘증오심’마저 들 정도로 부정적인 감정의 강도가 과해지는 측면이 있다고도 여겨집니다.

그러나 지금의 남자 친구는 사연자님께서 예전에 사귀었던 분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떠올리신다면, 같은 상황에서도 남자 친구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적정선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일단은 사연자님께서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 즉 남자 친구는 스킨십을 원하고 사연자님께서는 스킨십을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 부분을 잘 조율해 나갈 수 있을지가 관건일 텐데요, 사연자님께서 스킨십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계속해서 조르는 상황에서 몹시 난감함을 느끼시는 듯합니다. 

더욱이 사연자님께서 처음에 거부 의사를 밝히고 또 화를 내면서까지 싫다는 의사 표시를 했음에도 상대가 이를 잘 수용하지 못하는 모습은 그리 성숙한 태도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남자 친구 입장에서도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스킨십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이것이 번번이 거절되는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욕구불만이 쌓이거나 자존심에 타격을 입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균열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사연자님께서도 인식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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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남자 친구에게 원치 않는 스킨십을 거절할 때는 사연자님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지금은 스킨십을 하기 힘든 이유를 설명해 주고, 그로 인한 미안함의 표현, 다음에 언제 사랑을 나누면 좋을지 이야기함으로써 남자 친구가 스킨십을 하고 싶었던 욕구와 그것이 거절당해 서운했을 마음에 대해 알아준다면, 남자 친구 입장에서도 비록 당장은 스킨십을 거절당했지만 그로 인해 속상한 마음이 여자 친구로부터 어느 정도 이해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평소 스킨십과 관련해 서로 좋아하거나 원하는 스킨십 유형, 빈도, 어떤 분위기나 상황에서 스킨십을 하는 게 좋은지, 또 어떤 상황에서는 좀 힘든지 등등 진솔한 대화를 많이 나눔으로써 상대의 스킨십 욕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고, 최대한 서로 조율해서 만족시켜 줄 의사가 있음을 상대방이 인식할 수 있게끔 해 주신다면 어떨까요. 이렇게 함으로써 남자 친구 분도 자신의 욕구가 여자 친구로부터 존중받고 있음을 느끼고, 사연자님께서 스킨십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혀도 함께 존중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부분은 표면적으로 볼 때는 단순히 스킨십의 문제로 보이기 쉽지만, 스킨십이 화두로 떠오른 것일 뿐 서로 간의 욕구와 감정을 알아주고 충족시켜 주는 문제,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고 존중하는 태도, 서로 견해차를 좁혀 나가는 소통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도 이번 기회를 통해 연인과의 스킨십 문제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감정을 나누고 건강하게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 보고, 또 실전을 통해 연습하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해지는 시간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만약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자 친구 분께서 사연자님의 의사를 존중해 주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욕구나 감정에만 무게중심을 둔다면, 다음 기회를 통해 사연자님을 더욱 소중히 아껴 주고 존중해 주며 건강한 소통이 가능한 또 다른 인연을 찾아보시는 것도 고려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연자님께서 스킨십 트라우마를 잘 극복하고, 좋은 분과 행복하고 애정 어린 연애를 해 나갈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서울역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희주 원장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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