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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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주변에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 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요? 또한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 주는 편에 속하나요, 아니면 여러분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더 즐겨 하는 편인가요? 오늘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는 데 필요한 경청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이들과 하루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학교에서는 매일 만나는 친구들이나 선생님과, 직장에서는 상사나 동료, 거래처 사람들과, 집으로 돌아와서는 가깝고 소중한 가족들과 여러 가지 주제로 많은 대화를 하는데요, 그중에는 별 의미 없는 가벼운 농담부터 일상의 소소한 이야깃거리, 업무적인 내용이나 개인적인 고민까지… 대화 소재는 언제나 끊이지 않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상대의 이야기를 건성건성 듣는 사람부터 마치 방청객을 방불케 할 정도로 리액션(reaction)이 좋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죠. 또 반응이 크지는 않더라도 정말로 말하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관심을 보이며 귀 기울일 때,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 가면서 깊은 속내까지 꺼내 놓게 됐던 경험이 있으실 텐데요, 당연히 우리는 이야기를 잘 들어 주는 사람 앞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게 됩니다.

그리고 말주변이 좋거나 유머러스한 사람 못지않게 타인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의 주변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물론 좋은 평가가 뒤따를 수밖에 없는데요, 여러분도 경청의 기술을 잘 훈련해서 발휘한다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소통 능력이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기대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듣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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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적당한 심리적 거리감 유지하기 

어떤 분들은 누군가 대화를 요청해 오면 반응을 잘 해줘야 한다는 마음이 앞선 나머지 리액션을 무척 과하게 하거나, 상대에게 관심을 표하는 일환으로 집요하게 질문을 이어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할 경우 상대는 오히려 부담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애초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상대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서 말하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문과 함께 말문을 닫아 버리게 만듭니다. 따라서, 경청하는 데 가장 바탕이 되면서도 중요한 태도는 듣는 이가 말하는 이의 이야기에 관심과 흥미가 있다는 것을 적절한 리액션을 통해 상대방이 느끼게끔 하는 것입니다. 

이때의 적절한 리액션이란,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에 대한 ‘공감’과 함께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태도를 말합니다.

 

2. 수용과 공감으로 상대방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주기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자기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 욕구는 자신의 존재나 생각이 따로 외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되고 소속되어 있다는 ‘소속과 애정 욕구’를 바탕으로 합니다. 사람들이 나의 존재를 알아주기를… 또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가 누군가와 대화한다는 것은 곧, 상대가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항상 우리의 내면에 잠재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상대가 가벼운 농담을 건네든, 어렵사리 자신의 고민이나 속내를 꺼내 놓든 “그렇군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렇게 생각하는군요.”처럼 수용적인 표현을 해 주었을 때, 상대는 자신의 존재나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 상대로부터 수용된다는 심리적 안정감과 신뢰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수용받는다는 느낌이 전해졌다면 ‘경청’의 기술을 절반은 훌륭하게 발휘한 셈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동감하지 않아도 공감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이때 상대가 처한 상황이나 상대방의 의견에 동감한다는 것은 상대가 화나는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했을 때 상대방보다 더 길길이 날뛰며 화를 내는 반응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사실 말하는 이가 언급한 상황이나 경험을 듣는 이가 실제로 똑같이 겪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대의 감정을 동일하게 혹은 더 격하게 느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말하는 이는 듣는 이의 반응이 과연 진실한 것인지 의아할 수 있으며, 또한 말하는 이가 이야기의 주체가 되어 대화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듣는 이가 대화의 주인공으로 뒤바뀌기도 하지요. 그렇게 되면 상대는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편안하게 꺼내 놓기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동감보다는 공감, 즉 상대가 처한 입장이나 상대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는 정도의 공감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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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판단적인 자세로 듣기 

우리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그의 이야기를 자신의 관점에서 판단하거나 평가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과 관점으로 상대방의 입장이나 그 자체를 판단하게 되면 상대를 수용하거나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판단적인 자세로 상대의 말을 듣도록 힘써야 합니다.

 

4. 해결책은 듣는 이가 아닌, 말하는 이가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 힘든 일이나 고민에 대해 털어놓을 때 조언을 하거나 해결 방법을 제시해서 상대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법을 알고 있거나, 막상 방법은 알고 있지만 아직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기 어려운 단계 등등 자신의 상황에 대해 현실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다만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거나, 자신의 어려움에 함께 공감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정말로 다른 사람의 냉철한 조언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먼저 그에 대한 의견을 물어 올 것입니다.

 

누군가 죽음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만큼 누군가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진심을 다해 들을 줄 아는 능력은 상대의 존재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그 마음을 알아주는, 귀하고 대단한 능력임에 틀림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우리가 흔히 잊고 있던 사실과 진리, 사람의 귀가 두 개이고 입은 하나인 이유도 바로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라는 신의 바람을 그러한 인간의 형상을 빚어냄으로써 내비친 것은 아닐는지요.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주변을 한번 둘러보세요. 여러분의 마음과 귀를 활짝 연다면, 그동안 여러분의 곁에 있던 많은 이들이 여러분께 하고 싶던 말이나 마음속 숨겨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경청은 더 넓은 세상으로 안내하는 초대장이 되어 줄 거예요.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규홍 원장

참고문헌: 야마네 히로시(2023). HEAR. 밀리언서재.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의과전문대학원 졸업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수료
METTAA CBT / Schema Therapy Exp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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