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제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때, 연인이 곁에서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다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었고, 부정적인 생각도 덜 들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무난하게 잘 연애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연인에게서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기적이고 부정적인 면 때문에 너무 힘들고 지쳤다고 말했습니다. 성격이 처음보다는 나아졌지만, 그래도 그동안 제 행동으로 인해 그 친구가 많이 힘들었을 거라 생각하니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그 친구의 집에 들러 짐을 챙기던 도중, 손 편지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이 편지의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 편지를 통해 그 친구가 저와 사귀던 6개월 동안 다른 친구를 만나 왔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함부로 편지를 본 것에 대해 질책할 것을 알면서도, 정말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틀렸기를 바라며 편지의 내용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그 친구는 편지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허무하게도, 제가 코로나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건강한 아이를 낳지 못할 거라고 말하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다른 미접종 친구와 사귄 거라고 했습니다(거짓말이 아닙니다. 저도 정말 그 친구가 왜 이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귀기 전부터 그 친구는 자신이 예전에 전 여자 친구의 바람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서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사실대로 말하기로 약속했었습니다.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제가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 멘탈 케어 차원으로 계속 만남을 이어 왔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거짓말한 것을 알고는, 그게 얼마나 아픈지 아는 사람이 왜 저한테 똑같이 거짓말을 했는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제 성격으로 인해 그 친구를 지치게 했기 때문에 그가 그런 결정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런 저의 과거가 후회스럽고, 제 자신이 싫어졌습니다.

그 친구를 잊어 보기 위해 운동도 시작하고 새로운 공부도 하고 있지만, 계속 그 친구에 대한 분노의 감정과 함께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함께했던 즐거웠던 시간도 생각나며 슬프기도 하고, 그래도 좋은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문제는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이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과 대화하다가도 느닷없이 감정이 요동쳐 대화에 집중하기가 힘들기도 하고, 상대의 잘못이 아닌데도 갑자기 과하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혼자 있을 때는 한없이 우울하고 외로워지다가 그 친구에 대한 분노감이 드는 바람에 한 가지 활동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별을 극복하느라 정말 충분히 힘들었다고 생각하는데, 왜 아직까지 감정 조절이 어려운 것일까요?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하면 감정을 조절할 수 있을까요? 미리 답변 감사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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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이렇게 사연으로나마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 후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듯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연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무엇보다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상대방의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사연자님께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때 곁에서 지지해 주고 응원을 받았다는 생각에 상대 연인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하며, 그동안 힘들었을 연인을 붙잡을 수 없었다고 회고하는 사연 속에서 사연자님께서는 자신의 감정만 우선시하는 분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도 배려하고 보듬을 줄 아는 따뜻하고 성숙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연자님의 이전 연인이 헤어짐의 이유로 언급했던 것은, 사연자님의 이기적이고 부정적인 면 때문에 지치고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연상에는 두 분께서 얼마간의 기간 동안 연애를 했고, 또 어떤 상호작용을 하며 관계를 이어 왔는지, 두 분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아 정말 사연자님께서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또 많이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는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저 사연자님의 이전 연인이 내세운 이별의 사유가 그렇다는 것 정도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전 남자친구는 사연자님을 만나면서 동시에 다른 여성을 6개월 동안 만나 왔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사연자님과의 만남을 정리하지도 않은 채 다른 여성과 동시에 만남을 가졌던 이유라고 밝힌 것이 ‘사연자님께서 코로나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건강한 아이를 낳지 못할 것 걱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만약 정말로 그런 연유에서 다른 이성을 만나야 했다면 충분히 사연님께 그 이유를 설명하고 만남을 정리한 후에 새로운 분을 만나거나, 이러한 이유로 이별을 고하는 것으로 인해 사연자님께서 충격 받을 것을 걱정했다면 이 부분은 끝까지 그분의 마음속에 담아 둔 채 만남을 정리하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헤어짐의 수순이 아니었을까요.

자신이 바람을 피운 이유에 대해 변명 아닌 변명으로 일관했던 전 남자친구의 처사는 스스로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태도도 아닐뿐더러,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큰 마음의 상처받았을 사연자님께 진심으로 미안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오히려 전 남자친구의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면모가 드러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마저 듭니다. 

 

이 사연글만으로는 전 남자친구가 그간 힘들었다는 사연자님의 이기적이라거나 부정적인 면모, 상대를 지치게 하는 성격이 어떻게 발현되었고, 또 두 분의 관계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미루어 짐작건대 사연자님께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고 지친 시기에 전 남자친구 분을 만나 교제하면서 나름 심적으로 의지가 되셨던 것 같습니다. 또 그런 시기인 만큼 사연자님을 둘러싼 주변의 상황이 많이 부정적으로 여겨져 감정 기복도 커지고, 그럴 때마다 전 남자친구로부터 위안을 얻으셨겠지요. 그런 면에서 사연자님께서는 전 남자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지만, 상대는 그런 점들이 다소 버겁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해 봅니다.

그렇더라도 그것이 전 남자친구가 사연자님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만한 근거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힘든 시기에 곁에서 지지해 주고 위로해 주는 것은 통상적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지만, 여자친구가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는 이유로 코로나 백신을 맞지 않은 다른 여성을 동시에 만난다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전 남자친구가 사연자님의 개인적인 면모나 성격을 주관적으로 평가한 그대로를 마치 진실인양 받아들여 사연자님 자신을 비하하며 괴롭히는 일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보다는 사랑했던 대상을 상실하고 애석해하는 사연자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보듬으며 스스로를 위로해 주세요. 실제로 이별 직후에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이 일시적으로 분비되지 않아 우울한 기분에 빠지기 쉽습니다. 또, 코스티솔 수치가 매우 높게 나타나는 등 면역력이 약화되기도 하고요. 이렇듯 이별은 우리의 신체와 정신에 영향을 줄 만큼 인생의 큰 시련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이별의 원인을 자신에게로 돌리며 사연자님 스스로를 탓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닐까요. 더욱이 아직은 상대방은 물론, 사랑했던 시간들에 대한 감정 정리가 되어 가는 과정이기에, 사랑에 임했던 사연자님 스스로나 상대방에 대해, 또 그 시간들에 대해 한 발자국 거리를 두고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 한없이 우울하고 외로워지다가 그에게 분노감이 드는 것 또한 이별 후에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자 반응일 테지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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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자님께서 이별 후 얼마간의 기간을 가지며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지 알 수는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며 이별의 상처가 아무는 데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신 듯합니다. 애써 떠오르는 기억을 외면하거나 요동치는 감정을 억누르려 하기보다는 소중한 추억이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또 미운 감정이 솟구치면 솟구치는 대로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음미하고 흘려보내는 과정을 충분히 겪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별의 쓰나미가 잔잔해지고 좀 더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해졌을 때, 이전 만남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이해나 성찰을 해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전 만남에서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지, 어떤 점이 좋았고, 좋지 않았는지, 그 만남을 통해 사연자님 스스로와 사랑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거나 깨달은 점은 무엇인지, 이를 통해 다음번 연애나 사랑을 할 때는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등등.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마지막으로, 사람들과 대화 중에도 느닷없이 감정이 요동치거나 대화에 집중하기 힘들 때는 차라리 양해를 구하고 잠시라도 바람을 쐬고 오거나, 감정을 식히고 오신다면 어떨까요. 상대방에게는 “최근에 이별을 해서 아직 감정이 조금 불안정하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거나, 직접적인 이유를 밝히기 곤란하다면, 다소 두리뭉실하게라도 “요즘 컨디션이 좀 좋지 않아서 잠시 진정하고 오겠다.”는 정도로 양해를 구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마음이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사연자님의 솔직함과 용기에 기대치 않았던 위로와 응원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만약, 상대의 잘못이 아닌데도 과하게 화를 냈다는 판단이 들었다면, 사연자님의 과오를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즉시 사과하거나 이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이후라도 잊지 않고 사과하시는 것이 보다 성숙한 태도로 서로에게도 괜찮은 마무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사랑과 이별의 과정을 겪으면서 좀 더 성숙해지고 단단해지는 사연자님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규홍 원장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의과전문대학원 졸업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수료
METTAA CBT / Schema Therapy Exp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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