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우리는 이따금 갈등으로 인해 감정이 격해진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의 촉을 날카롭게 다듬어 상대의 마음에 꽂는다. 말뿐만이 아니다. 무시하는 태도, 경멸 어린 시선 등등. 어떤 뉘앙스만으로도 이별을 눈치채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즉, 우리는 이미 이별을 마주하기 전 지속적인 갈등을 이어가며 어떤 신호를 주고받는다. 연인관계뿐만이 아니다. 가족, 친구 등 인간관계에서는 수많은 신호가 오간다. 이별은 갑자기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는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마음이 있음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속수무책으로 상황에 끌려가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본마음과 달리 이별의 신호를 보내버리기도 한다.

 

감정 코칭으로 한국에 잘 알려진 John Gottman은 커플들의 이별 가능성을 예측하는 의사소통에 대해 연구, ‘비판, 방어, 담쌓기, 경멸’을 성경의 묵시록에 등장하는 4인의 기수에 비유하였다. 4인의 기수는 동양의 사방신과 유사하며 각각 정복, 전쟁, 기근, 죽음을 의미한다. 묵시록에서는 4인의 기수가 등장하면서 한 시대의 종말이 예고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별을 예측하는 4가지 신호가 야생마처럼 인간관계 속으로 달려온다면, 관계의 종말이 가까워졌음을 뜻한다. 실제로 4가지 신호를 겪은 커플의 95%는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John Gottman은 1970년대부터 수천 쌍 커플의 대화방식을 관찰하고, 관계 만족도를 종단 연구했다. 그 결과 위의 4가지 대화방식을 사용할 때, 커플인 두 사람은 서로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각각 고립되어갔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4가지의 부정적인 소통 방식만을 쓰며 서로를 점점 덜 의지하게 되었다.

 

우리는 화가 나거나 여유를 잃을 때 자기도 모르게 ‘비판, 방어, 담쌓기, 경멸’의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관계를 부정적으로 끊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방식의 표현은 자존감, 신뢰감, 친밀감 등 관계에서 필수적인 요소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이별 후에도 깊은 후회를 남긴다. 비난이나 경멸을 받은 어떠한 사람도 상처를 안 받을 수 없다. 또한 방어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은 진심 어린 대화를 할 수 없다. 이별을 막고 관계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본인이 이러한 대화 방식을 썼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수습해야 한다. 이별을 예측하는 4가지 신호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이를 대처할 방안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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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난

첫 번째로 알아야 할 것은 비난과 불만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둘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관계를 맺는 일은 당연히 어렵고, 불편한 부분이 생길 수 있다. 불편한 것들을 개선하기 위해 이야기하는 것과 상대의 잘못으로 인해 불편함이 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이 두 가지는 어떻게 다른 걸까? 한 상황을 예로 들어 구분해 보자.

 

불편함 말하기 : 집에 왔을 때 설거지거리가 쌓여있는 것을 보면 너무 답답해.

비난하기 : 그릇이 저렇게 쌓일 때까지 설거지를 안 한 거야? 어쩜 그렇게 무신경하니.

 

불편함을 말하는 것은 상황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한다. 하지만 비난은 상대의 행위나 태도 혹은 그 사람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서운함 등 자신의 감정에 못 이겨 상대를 탓하는 언어가 먼저 나가기 십상이다. 이를 대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지한 상황을 표현하고, 자신의 감정을 공유한 후에, 필요한 것들 특히 내가 원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위와 같은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늦게 퇴근하고 들어왔는데 설거지거리가 쌓여 있는 걸 보면(인지한 상황을 표현), 너무 고단하고 속상해(나의 감정을 공유). 당신이 설거지해주면 좋겠어(내게 필요한 것을 이야기함).’

 

2. 방어

‘방어’는 보통 상대방이 나에 대해 비난한다고 느낄 때 나타나는 반응이다. ‘잠깐 누워 있다가 하려고 했는데, 그걸 못 기다려서 내게 잔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도 일찍 와서 설거지 안 하고 다른 일 하기도 하잖아!’

실제로 상대가 비난했을 경우도 있지만, 본인이 오해하거나 투사하여 방어를 펼칠 수도 있다. 어쩌면 상대가 지나가는 말로 ‘설거지거리가 쌓여있네(알게 된 상황 표현)’라고 혼잣말을 했을 뿐인데, 비난으로 느껴 이렇게 받아치는 것이다. ‘너는 빨래 담당인데, 세탁기 아직도 안 돌렸잖아’ 이는 방어를 하면서 다시 상대를 비난하는 태도로, 상황 및 관계를 악화시킨다.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의 책임은 아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이기 때문에 관계 악화의 일부는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 이를 인정하도록 노력해야 방어를 떨치고 제대로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네. 설거지거리가 쌓여있네. 내가 하기를 바랐구나.’

 

3. 담쌓기

대화 담쌓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이는 말 그대로 대화에 담쌓듯 소통을 단절하는 표현방식이다. 침묵하거나 팔짱을 낀 채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거나, 핸드폰만 보면서 상대의 이야기에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이는 등 말이다. 이런 무심한 행동은 상대방이 대화 및 관계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이런 태도를 취하는 사람은 이미 관계 갈등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확률이 높다. 상대의 대화 태도가 위협적으로 느껴지거나, 분노를 겨우 참고 있는 경우일 수도 있다.

이때,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차라리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다. 30분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약속하고,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는 각자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4. 경멸

경멸은 수치심을 일으키는 정서적 학대에 가깝기 때문에, 4가지 신호 중 가장 위험하다. Gottman의 연구에 따르면 경멸은 이혼이나 이별의 가장 큰 지표다. ‘비난’에 대한 말하기와 비슷하면서도 정도가 강하다. 한쪽이 일방적인 우월적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과장된 비난이기도 하다.

 

‘이럴 줄 알았어. 당신이 일찍 온다고 집안일을 할 위인이 아니지. 내가 뭘 기대하겠어.’

이러한 경우, 비난에 대한 말하기보다도 더욱더 나의 감정표현에 주의하면서 말해야 한다. 경멸은 보통 오래된 분노나 배신 등 깊은 감정으로, 타인에 대한 비난의 마음이 가득하다. 그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경멸의 말들이 나올 수 있다. 경멸이 발현되는 몇 가지 방식은 이러하다.

 

‘어제도 설거지거리가 쌓여있었는데 오늘도 쌓여있네(인지한 상황을 표현). 이런데도 내가 화를 안 내야 하는 거야?(나의 감정에 당위성 부여).’

‘어제도 설거지거리가 쌓여있었는데 오늘도 쌓여 있잖아(인지한 상황을 표현). 당신은 내가 매일매일 얘기해줘야 설거지를 할 수 있는 거니?(상대의 인지 능력을 비꼼)’

 

이처럼 이별의 징후를 나타내는 의사소통 방식은 다양하게 모습을 바꾸어가며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빙빙 꼬아놓은 변형 문제라도 그 근본적인 방법만 제대로 알고 있다면 문제를 풀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의사소통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여러 방식으로 발현되어도, 이를 해결할 방법은 누구나 행할 수 있도록 간단하며 확실하다.

 

‘설거지거리가 쌓였다고 불평했는데 바로 일어나서 설거지해 줘서 고마워.’

 

눈치챘는가? 의사소통 방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식은 감사를 표하는 데 있다.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거나 위로, 안정감 등을 주었다면 망설이지 말고 표현해보면 어떨까?

 

묵시록은 요한계시록의 다른 명칭으로, ‘예언서’이다. John Gottman은 비판, 방어, 담쌓기, 경멸을 예언서에 비유할 만큼 관계를 망가뜨리는 예측요인으로 본 것이다. 우리는 사실 언어로 정립할 수 없었던 것뿐이지, 무엇이 관계를 망가뜨리는 요인인지 무의식적으로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무엇이 악화된 관계를 회복시키는지도. 용기 내 실천하는 일은 백 마디 말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어 보자. 말을 하기 전에 상대방을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자. 관계를 망가뜨리는 요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면, 이제 당신이 해야 할 것은 멸망의 예언서를 뒤집는 일뿐이다.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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