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우리는 수줍어하거나, 낯을 가리는 이에게 사교성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사교성’은 남과 쉽게 사귀는 성질, 사회를 형성하려는 인간의 특성을 가리킨다. 사교성이 꼭 뛰어날 정도로 좋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사회, 인간관계에서 뛰어난 사교성이 높은 미덕으로 취급받는 건 사실이다. 사회성이나 사교성을 키우고 싶다는 고민은 인터넷상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모두와 금세 친구가 되는 사람을 부러워해 본 적이 다들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저렇게 손쉬워 보이는 일이 어떤 이에게는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당신은 수줍음을 많이 타는가? 아래 보기 중 몇 개에 해당하는지 체크해보자.
1. 발표 시간에 손들고 발표 좀 하라고 꾸중 들은 적이 있다.
2. 어린 시절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해보라는 어른들의 권유에 당황한 적이 있다.
3. 당신의 생일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직전, 민망하거나 수줍었던 적이 있다.
4.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어색한 마음에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인 적이 있다.
5. 사람들이 많은 곳(ex. 파티)에 가면 주목받기 싫어, 구석으로 피한 적이 있다.
위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친구의 경험 일부이다. 당신도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당신은 몇 개나 해당하는가?
수줍음을 많이 탄다고 일상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그로 인해 원하던 것을 취하지 못한다면 본인에게 많은 아쉬움이 생기는 듯하다. 낯을 가리고 수줍음을 타는 이들은 이와 같은 고민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친해지고 싶었는데, 먼저 말을 걸어볼걸.’, ‘조금 더 용기 내서 내 생각을 말해볼걸.’
그렇다면 수줍음은 고쳐야 할 만큼 나쁜 것일까? 우리는 도대체 왜 쑥스럽고 수줍은 마음이 드는 것일까?
‘수줍음’이란 무엇인지, 어떤 점을 시사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연구를 살펴보자.
미시간 대학의 아동 심리학자 헨리 웰먼(Henry Wellman)은 200명의 아이를 대상으로 공격성, 두려움, 수줍음, 지각적 민감도, IQ를 조사했다. 시간 흐름에 따른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서, 38개월이 되었을 때와 70개월이 되었을 때 각각 조사하였다. 이를 통해 수줍음이 아이의 감정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준이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줍음이 많은 기질의 아이들은 사회적 갈등이 일어났을 때, 조심스럽고 주의 깊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다른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바로 함께 노는 것보다 우선 그 아이와 상황을 지켜보는 것을 선호했다. 이러한 자세는 타인과 자신을 구별할 줄 알고, 타인과 자신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지각하여, 아동기의 인지적 이해와 사회적 기능 향상에 기여하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즉, ‘수줍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타인의 마음 상태를 헤아리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것으로 보이는 아이는 사실, 자신이 살아갈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한발 뒤로 물러난 채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인사해라, 발표해라, 노래해라’ 등등 사교성을 강요하는 어른들의 부추김은 아이가 스스로 적응할 시간을 빼앗는 것과 비슷하다. 명랑하고 스스럼없는 것이 좋은 거라며, 그렇게 행동하길 바라는 간접적인 요구는 어른들의 욕심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사실 수줍음과 낯가림, 사교성, 사회성에 대한 논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 및 집단 경험을 지닌 어른에게도 적용된다. 낯선 장소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소극적이고 수줍어하는 이유는 그 무리에 잘 녹아들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내보이기 전에 무리의 특징을 잘 관찰하려는 것이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긴장하지 말라는 다그침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과 안전하다는 느낌이다.
20대, 30대, 40대 여성 주인공들의 회사생활을 담은 마스다 미리의 만화 『걱정 마, 잘될 거야』에서는 이러한 면모가 잘 드러난다. 20대 여성 마리코는 회사라는 공간과 새로운 사람들, 그 무리에 잘 스며들어 제 역할을 다하고 싶어 하며 이렇게 말한다.
항상 지레 겁먹고는 발언하지 못하고
자신과 비슷한 의견인 사람의 발언에 동의하면서
회의는 끝나버립니다.
(P. 55)
우리가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에는 제각각 그 감정이라도 드는 이유와 역할이 있다. 부정적인 감정도 포함해서 말이다. 20대 마리코가 직장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 헤매는 것과 같이, 우리는 회사뿐 아니라 어딜 가든 삶의 새로운 페이지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을 받는다. 그때마다 사람, 공간, 상황만이 아닌, 다양한 감정들을 마주해야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감정이 있다면 왜 그러한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해 나타났는지 본인에게 먼저 질문해보는 것이 어떨까?
괜찮아, 알고 있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고, 지금 네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
‘언젠가 회의에서 의견을 말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면 오히려 허들을 올리게 될 테니 아무 말 말자.
(P. 61: 회의 시간에 아무 말 못 한 것을 자책하는 20대 마리코를 바라보며, 40대 상사가 홀로하는 생각은 어쩌면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