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의 [가족의 심리학] (9)

[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소통의 방식 – 호칭과 말투

- 배려와 존중은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부부싸움은 대개 사소한 말로부터 발단한다. 배우자의 심리 상태나 현재 상황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무심히 툭 던진 말 한마디가 심장을 찌르는 비수가 된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뉘앙스가 다 다르다. 내 딴에는 남편이나 아내의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신경 써서 한 말인데, 오히려 화근이 되기도 한다.

 

“와, 오늘따라 딴사람처럼 보이는데? 정말 예쁘다.”

아내 기분을 맞춰주려고 이렇게 말한 남편에게 아내가 정색하며 쏘아붙인다.

“오늘따라 예쁘다고? 그럼 평상시에는 지지리도 못나 보였다는 말이야?”

칭찬해준 남편은 머쓱한 표정으로 달래보려 하지만, 이미 아내의 기분은 상한 상태다.

 

 

“잘 먹으니까 보기 좋다, 우리 남편. 그런데 그렇게 잘 먹으면서 왜 힘은 못써?”

먹성 좋은 남편을 격려해주려고 아내가 말을 꺼냈는데, 마무리가 엉뚱하게 흘러갔다.

“그래, 나 돼지처럼 먹기만 하고 힘은 못 쓴다. 미안하다. 앞으로 작작 먹을게.”

남편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자 아내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말은 참 어렵다. 내가 뱉은 말의 단어와 문장 자체보다 그 말에 담긴 깊은 속뜻과 폭넓은 의미를 넉넉히 헤아려줬으면 좋겠지만, 이 세상 누구도 그렇게까지 내 말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관계없이 듣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말의 내용은 달라진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라는 속담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인생의 진리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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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했던 환자 중에 남편의 말 때문에 우울증을 겪은 여성이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본의 아니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는 정도가 아니었다. 늘 아내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말투가 입에 밴 사람이었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언어폭력이었다.

 

“대충 아무거나 입어.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거 아니다.”

“야,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꼴에 자존심은 있다, 이거냐? 벌어다 주는 돈 쓰는 재주밖에 없는 주제에…….”

 

매사 이런 식이었다고 한다. 자신을 인생의 동반자나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아랫사람이나 하인처럼 대하는 남편 앞에서 그녀는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때로는 거세게 항변도 하고 말다툼도 벌였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화나면 도피처로 삼을 친정도 하소연할 대상도 없었다. 현재 직장도 없고 모아둔 돈도 없는 그녀는 남편에게 의지해 살 수밖에 없어 모든 걸 포기한 채 남편의 언어폭력을 견디며 산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 응어리가 생기고 정신이 황폐해졌다. 병원을 찾았을 때는 우울증이 심한 상태였다. 남편의 말 폭탄이 아내의 몸과 마음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언어는 구획된 성역, 다시 말해 존재의 집이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이다. 언어는 존재가 드러나는 장소다. 모든 존재는 언어에 의해 존재한다.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는 누구도 인식하거나 전달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존재가 머무는 곳이며, 세계와 사물을 인식하는 통로라 할 수 있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생각의 한계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국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말이다. 말은 생각의 표현이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은 말할 수 없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은 논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기에 세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내 생각의 범위는 내 언어의 범위와 정비례한다.

내 말의 품격은 내 생각의 품격이며 나아가 내 인생의 품격이다. 부부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가는 가는 부부생활의 품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다.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 대로 내뱉고,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을 거침없이 구사하며, 수준 낮은 말을 함부로 입 밖에 내는 부부가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을 만들어가기는 어렵다. 호칭과 말투에서 배우자를 배려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삶도 배려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부부의 소통 방식, 즉 현명하고 지혜로운 언어생활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먼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불통으로 가는 대화 방법이다.

첫째, 가능한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말은 삼가야 한다.

 

“제발 쩝쩝거리면서 먹지 좀 마. 밥맛 떨어진다니까.”

“이 바보야, 그냥 직진하면 어떡해? 좌회전했어야지. 어이구, 답답해 죽겠네!”

이런 말을 듣고 감정이 상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식사할 때 소리를 적게 내라든지, 운전할 때 표지판이나 신호등을 정확히 보라는 의도로 이야기할 거면 이렇게 하는 게 좋다.

 

“당신이 맛있게 먹는 게 참 좋아. 소리를 조금만 적게 내면서 먹으면 더 좋을 것 같아.”

“내가 먼저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표지판이나 신호등은 운전자가 미리 확인해야 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내가 듣기 싫은 말은 배우자도 듣기 싫다.

 

둘째, 화가 나더라도 배우자의 학력, 출신, 신체 조건 등을 거론하는 건 비겁한 일이다.

“너는 그러니까 무식하단 소리를 듣는 거야. 못 배운 티 좀 내지 마.”

“좀 빨리빨리 따라오지 못해? 그러니까 내가 살 좀 빼라고 수없이 얘기했잖아!”

그렇지 않아도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부분을 배우자가 감싸주기는커녕 화가 날 때마다 들춰내면서 상처를 후벼파면 그 아픔은 더 크고 쓰리다. 이미 다 알고 결혼해놓고 이런 문제를 틈만 나면 끄집어내는 건 배우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부부싸움에도 정도가 있다.

 

셋째, 문제를 점점 확대하면서 과거까지 꺼내 전면전으로 치닫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영화를 보러 갈 거냐 그냥 집에서 드라마를 볼 거냐, 외식을 할 거냐 집으로 배달시켜 먹을 거냐, 아이 학원을 보낼 거냐 말 거냐 하는 문제로 의견 차이가 생겨 대화가 조금 격해지더라도 그 문제만을 놓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결론을 내려야지 상대방을 지나치게 자극하거나 그 문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지난 일을 들춰내서 비난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당신 정말 멋대가리 없어. 지난번 추석 때 일만 해도 그래…….”

“어이없어 말이 안 나오네. 너야말로 전에 친구들 부부 동반 모임 때 그 태도가 뭐냐?”

이런 식의 대화는 서로 감정만 상하게 할 뿐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넷째, 배우자의 가족, 즉 처가나 시댁 식구를 싸잡아 비난하는 건 금물이다.

부부 사이에 말다툼을 벌이다가 자칫 상대방 가족을 건드리는 일이 있다. 이건 폭탄 심지에 불을 붙이는 일과 같다. 자신이 너무 한 게 아닌가, 이건 내가 잘못한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배우자가 느닷없이 자기 가족을 비난하고 나서면 욱하는 감정이 치밀어오르게 마련이다. 이때부터 합리적 대화나 논리적 사고는 자취를 감추고 만다. 전쟁이 시작되면 오직 승리만이 목표가 된다. 신혼부부는 말할 것도 없고 수십 년을 산 부부도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양보가 없다. 아내가 먼저 자기 친정이나 장인 장모 흉을 좀 본다고 해서 남편이 거들고 나선다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나는 욕해도 되지만, 남편이 자기 친정 욕하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게 아내들의 공통 감정이다.

그 반대도 똑같다. 남편이 시댁 식구나 시부모님 잘못을 털어놓는다고 해서 아내가 이때다 싶게 숟가락을 얹는다면 큰 실수를 하는 것이다. 아내나 남편이 배우자 앞에서 자기 부모나 가족의 잘못을 들추는 건 같이 비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상황이 이러니 당신이 좀 이해해달라는 완곡한 표현일 뿐이다.

 

다섯째, 배우자가 싫어하는 말이나 비속어, 욕설 등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는 아무런 느낌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라도 배우자가 유난히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을 수 있다. 어렸을 때 그 말로 인해 상처를 받았거나 그 말과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이건 개인적 경험이므로 그 자체를 인정해 줘야 한다. 무심결에 그 단어가 불쑥 튀어나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화가 났을 때 상대방을 자극하려고 일부러 이런 말을 내뱉는 사람이 있다. 이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다. 아무리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상대방은 내 아내요 남편이다. 배우자에게 천박한 비속어나 욕설을 퍼붓기 시작하면 가정의 품위와 부부 사이의 품격은 휴지통에 처박히고 만다. 이런 식으로 저속한 표현을 총동원해서 싸우게 되면 경계선이 허물어지고 부부싸움은 매번 개싸움으로 전락한다. 혹여 자녀들이 이런 부모의 말 폭탄을 듣게 된다면 무너진 부모의 위신을 세울 길이 없게 된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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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하면 할수록 좋은 말은 어떤 게 있을까? 소통으로 가는 대화 방법이다.

첫째, 배려와 존중이 담긴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남편이 아내를 부를 때,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 이런 호칭을 쓰는 부부가 있다.

 

“야, 이리 좀 와봐.”

“너, 이게 뭔지 알아?”

 

서로를 ‘야’ 혹은 ‘너’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무리 동갑내기이거나 친구 사이였다가 부부가 되었다 해도 부부가 된 이상 서로를 ‘야’, ‘너’라고 부르는 건 좋아 보이지 않는다. 호칭은 격식과 예의를 포함한다. 누구도 싸울 때 상대방을 ‘○○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가벼운 호칭은 상대방을 가볍게 보게 만든다. 같은 이치로 정중한 호칭은 상대방을 정중하게 대하게 만든다. 결혼해서 자녀가 있는데도 아내가 남편을 여전히 ‘오빠’라고 부르는 건 아무리 봐도 어색하다. 아이들 앞에서 남편과 아내 이름을 막 부르는 것도 바람직스럽지 않다.

 

“○○씨, 이거 어때?”

“○○씨,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이름에 ‘씨’ 자를 붙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아빠’, ‘○○ 엄마’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씨’라고 이름을 불러주는 게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봐주는 호칭이 아닐까 싶다. 어른들이 배우자를 ‘여보’, ‘당신’이라고 부른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둘째, 서로 존댓말을 쓰면 배우자를 좀 더 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게 된다.

반말을 쓰더라도 지나치게 하대하거나 막 대하는 듯한 표현을 삼가고 예의를 갖추면 친근하게 느껴져 좋을 수 있지만, 서로 존댓말을 쓰게 되면 아무래도 말 때문에 감정 상할 일이 줄어들게 된다. 처음에는 좀 어색할 수 있으나 존댓말을 자꾸 쓰다 보면 부부간의 대화에서 언어 표현의 격식이 왜 중요한지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정중히 존댓말을 쓰다가 갑자기 핏대를 올리며 싸우기는 쉽지 않다. 아무 말이나 생각 없이 나오는 대로 내뱉다가 말싸움이 전쟁으로 비화하는 일은 부지기수다. 존댓말은 부부 언어생활의 휴전선이 될 수도 있다.

 

셋째, 이왕이면 고운 말, 예쁜 말, 교양 있는 말을 쓰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말을 잘하는 게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유명한 문인도 글을 쓰려면 여러 참고도서를 봐야 하고 사전도 뒤적여야 한다. 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좋은 글이 나오게 마련이다. 아나운서 지망생들은 발음과 억양 등을 정확히 하기 위해 거울을 보며 연습을 거듭한다. 국어사전과 영어사전을 끼고 살며 외우다시피 해야 한다. 좋은 언어를 쓰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부부 사이에 품격 있는 언어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문인이나 아나운서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노력은 해야 한다. 좋은 책을 읽거나 신문, 잡지 등에서 멋진 표현을 발견했을 때 적어두었다 써먹으면 좋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적절한 문장이 나왔을 때 기억해두는 것도 좋다. 노력 없이 거저 되는 일은 없다.

말은 내 인격이며, 생각이며, 존재 자체라는 걸 잊지 말자. 내 배우자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내가 거칠고 독한 말을 퍼부으면 그 말은 그대로 반사되어 내게 돌아온다. 내가 곱고 예쁘고 아름다운 말을 하면 그 말 역시 그대로 반사되어 내게 돌아온다. 부부생활의 절반 이상은 말로 시작되고 말로 끝난다. 말만 조심하고 잘해도 부부생활 절반은 성공인 셈이다.

 

※ 본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가공된 것으로 실제 사례가 아닙니다.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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