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의 [가족의 심리학] (11)

[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깨져버린 거울 – 배우자의 외도

- 한 번 깨진 거울은 결코 다시 붙일 수 없다

2020년에 방영되었던 텔레비전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최고 시청률을 경신한 작품답게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지선우와 이태오, 이태오와 여다경, 손제혁과 고예림 등 다양한 개성을 가진 부부의 위태로운 일면들을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만든 박진감 넘치는 전개가 일품이었다. 드라마에서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대사는 이 부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실수한 건 인정해. 하지만 가족까지 버릴 생각은 없었어.”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여다경과의 불륜이 아내 지선우에게 발각되고, 이 사실이 자신의 후원자이자 지역사회의 실력자인 여다경의 아빠 여병규 회장에게까지 탄로 나자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이태오가 어쭙잖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아내에게 한 말이다. 과도한 동작에 심지어 화까지 내면서.

이태오의 이 말은 진심이었을까? 사람들은 이 말에 어느 정도나 공감할까?

사진_ JTBC '부부의 세계'
사진_ JTBC '부부의 세계'

 

그는 우연히 이루어진 단 한 번의 외도가 아닌, 오랫동안 유지해 온 불륜관계를 실수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건 실수가 아니었다. 계획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고, 그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숨겨가며 쾌락을 즐긴 것이다. 그러나 가족을 버릴 생각이 없었다는 말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자신이 가진 모든 걸 포기한 채 새로운 둥지를 찾아 훨훨 날아갈 사람 같으면 자신의 행동을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대개 이렇게 생각한다. 사랑은 식었으나 배우자와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고, 아이들에게는 다정하고 믿음직한 부모의 자리를 지키고 싶으면서도, 일상의 지루함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신선하고 자극적인 새로운 사랑을 갈구한다. 양손에 든 떡을 하나도 놓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마음이다. 내가 이룬 성취와 안락한 환경은 충분히 누리면서도 은밀한 쾌락까지 더불어 즐기고 싶은 자기중심적 태도다. 이들은 말한다. 그것은 사랑이라고. 사랑은 죄가 아니라고. 자신은 사랑에 빠진 거지 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고.

 

그런데 그것이 정말 사랑일까?

 

“가족까지 버릴 생각이 없었다면 불륜의 강에 발을 담그지 말았어야지.”

“그건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쾌락에 빠진 거라고. 모두를 배반한 죄를 지은 거야!”

 

불륜을 저지른 사람의 배우자나 자녀들 그리고 주변 사람 대부분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태오는 온갖 추태를 부린 끝에 결국 지선우에게 이혼당하고 나서 보란 듯이 여다경과 결혼한다. 그 후 이태오는 과거의 내연녀에서 현재 자신의 아내가 된 여다경에게 말한다.

 

“너랑 나, 바람 아니었잖아?”

 

여다경이 그의 품에 안긴 채 대답한다.

 

“맞아. 절대로 단 한 번도 떳떳하지 않은 적 없었어.”

 

이태오와 여다경은 필사적으로 자신들의 관계가 바람이나 불륜이 아니라 지고지순한 사랑이었으며, 따라서 그 누구에게도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고 당당하다고 항변한다. 그렇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두 사람의 잘못된 관계는 더 도드라져 보인다. 두 사람은 알고 있다. 자신들은 시작부터 어그러져 있었다는 것을. 자신들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상처받고 눈물을 흘려야 했다는 것을. 누군가에 대한 배반을 딛고 피어나는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칠수록 이들 내면의 양심은 이를 더 선명하게 일깨워준다.

 

사랑에는 책임과 의무가 수반된다. 아무런 의무도 없고 책임도 따르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순간적으로 불어와 홀연히 사라지는 바람일 뿐이다.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법적 제도적 장치다. 당연히 최고 수준의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이를 먼저 깬 쪽은 스스로 의무를 저버린 것이므로 파경의 책임을 져야 한다. 배우자를 가장 아프게 하고, 비참하게 만들며, 회복 불가능의 상처를 입히는 건 외도, 즉 다른 이성과의 불륜이다. 그 무엇보다 정조의 의무와 신뢰의 책임이 큰 때문이다.

사업에 실패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났을 경우, 가정 경제에 큰 어려움이 생긴다. 이로 인해 부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위기를 맞기도 한다. 그러나 서로 배려하고 위로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맨 뒤 다시 시작해 고난을 극복하는 사례도 많다. 불가항력으로 벌어진 일이라면 부부가 힘을 합쳐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부모나 자녀와 관련된 문제로 불화가 있을 때도 시간을 두고 대화하다 보면 의견 차이를 충분히 좁힐 수 있다. 설령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일을 저질렀다 해도 실수에 의한 것이고 제대로 반성만 한다면 배우자로서 용서하고 보듬어 줄 수 있다. 다른 관계와 달리 부부는 사랑으로 맺어진 특별한 관계인 까닭이다.

하지만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렀을 때는 배려하고 위로하며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 용서하고 보듬어 줄 수가 없다. 사랑이라는 부부관계의 대전제가 송두리째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부부 문제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상담하는 분 가운데 배우자의 외도를 알게 된 후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불면증과 우울증 등으로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다. 홧김에 배우자와 대판 싸움을 벌인 다음 변호사를 찾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경제나 자녀 문제 등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은 관계로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외도에 빠진 배우자를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랑을 이어가는 사람은 없다. 이혼하지 않고 참고 산다 해도 여러 가지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유지할 뿐이지 부부관계가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서류상 부부로만 지낼 뿐이다. 의사로서 환자의 정신건강을 위해 조언하면서 치료에 임하지만, 깨진 부부관계를 원상태로 회복시킬 수는 없다.

 

사람들은 어디까지를 불륜이라고 생각할까?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불륜의 최저 기준에 관해 물었다. 남녀 간에 응답 차이가 꽤 컸다. 남자들은 ‘지속적인 성관계’(40.1%)를 불륜이라고 생각했으나 여자들은 ‘성관계가 없는 애정 관계 혹은 데이트’(58%)도 불륜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들은 ‘일회성 성관계 혹은 성매매’(15.3%), ‘짝사랑’(7.7%)을 상위 순위로 매겼지만, 여자들은 거꾸로 ‘짝사랑’(11.1%), ‘일회성 성관계 혹은 성매매’(9.4%)를 상위 순위로 매겼다. 이에 따르면 배우자의 불륜 기준으로 남자들은 육체적 관계를, 여자들은 정신적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잠자리를 함께하는 경우를 불륜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에 반해 여자들은 이성을 만나 애정을 느끼고 설레는 마음으로 데이트를 하는 것도 불륜이라는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좀 더 철저한 사람은 산악회나 동창회에 나가서 이성 친구를 만나는 것도 불륜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인 직장 동료와 카풀을 한다거나 단둘이 밥을 먹는 것도 불륜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사회생활하는 맞벌이 부부가 이 정도까지 관여하면서 민감하게 여긴다면 굉장히 피곤하겠지만, 사람마다 인식의 차이가 있기에 결혼 전에 대인관계의 영역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허용할 것인가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대략 기준을 설정해 놓는 것이 좋다.

 

불륜에 빠지면 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걸까?

인간의 뇌에는 보상회로(Reward Pathway)라는 시스템이 있다. 음식을 먹거나 물을 마시거나 성적 행위를 하게 되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자연 보상이 이루어진다. 생존에 필요한 이런 즐거운 감정은 보상 효과와 연결되어 행동을 반복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보상회로의 주요 부위는 쾌락의 중추로 불리는 복측피개영역(Ventral Tegmental Area)과 중격측자핵(Nucleus Accumbens) 그리고 전전두엽 피질(Prefrontal Cortex)이다. 복측피개영역의 뉴런에 있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중격측자핵과 전전두엽 피질로 분비된다. 이 회로는 자연 보상뿐만 아니라 약물 같은 인위적인 보상 자극에 의해서도 활성화되어 도파민을 분비함으로써 기쁨과 쾌감을 맛보게 한다. 보상을 느끼도록 분비되는 물질이 도파민이다.

낯선 이성 혹은 배우자와 다른 매력을 가진 이성과의 외도는 배우자 몰래 은밀히 이루어지는 행위이므로 기쁨과 쾌감이 배가된다. 자연히 쾌락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한 번 빠져들면 스스로 헤어나오기 어려운 까닭에 이를 반복하다 보면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어 뇌에 물리적 변화가 일어난다. 전전두엽 피질에 변화가 생기면서 의지력이 점점 상실되고, 불륜 대상에게 지나치게 몰입하며, 탐닉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이다. 심하면 불륜 상대 외에는 흥미가 일어나지 않고, 몰입되지 않으며, 동기나 의욕이 솟아나질 않는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이러다 큰일 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제 정말 그만둬야지 다짐하면서도 불륜 상대를 만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삶이 무기력해지면서 더 강한 자극을 갈망하게 된다.

 

불륜은 상대 배우자 한 사람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온 오랜 부부관계,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행복, 남편과 아내로서 그리고 아빠와 엄마로서 가지고 있던 자의식과 정체성, 이 모두를 앗아갈 수 있다. 불륜은 이처럼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만, 그에 비해 주변에서 너무 쉽게 벌어지는 흔한 일이 되었다. 언제나 금기시되는 위험한 일임에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이 된 것이다. 왜 사람들은 독이 든 열매인 줄 뻔히 알면서도 이 금단의 열매를 따 먹는 것일까? 마냥 행복해 보이는 부부도, 존경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사는 부부도 어느 한순간 배우자의 불륜으로 가정이 깨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도대체 이들은 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걸까?

 

‘욕망과 결핍, 상처와 치유에 관한 불륜의 심리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에서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에스터 페렐은 이렇게 말한다.

“개인주의 사회는 이상한 모순을 낳는다. 서로 간의 신의가 더욱 필요해지는 동시에 불륜의 매력 또한 더욱 강렬해진다. 감정적으로 파트너에게 크게 의존하는 시대에 외도는 전례 없는 파괴력을 갖는다. 하지만 개인의 성취를 강조하고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약속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문화에서 바람피우고 싶은 충동 또한 전례 없이 커진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바람을 많이 피우면서 그 어느 때보다 가차 없이 불륜을 비난한다.”

 

집단이나 혈연보다 개인이 중시되면서 성공에 대한 열망 못지않게 불륜에 대한 욕망 또한 커진다는 이야기다. 불륜에 빠진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운명적 사랑을 뒤늦게 만난 거라고, 참을 수 없는 권태에 빠져 있다고, 배우자가 외도하는 걸 알고 복수심에 불타서 맞바람을 피운 거라고……. 이유는 다양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국은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하고 싶다는 게 본질적인 이유다. 성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은 불륜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낯선 이성과의 성관계 또는 현재 배우자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진 이성과의 성관계, 이것이 불륜을 부추기는 동인이다.

불륜이 드러났을 때 가장 충격을 받는 것도 상처를 받는 것도 상대 배우자다. 분노를 참지 못해 이혼하든, 사정상 이혼은 하지 못하더라도 남처럼 담을 쌓고 살든 그건 두 사람이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다. 결혼도 두 사람이 결심해서 했듯이 이혼이나 별거도 두 사람 마음에 달렸다. 그런데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어른들의 잘못으로 가정이 깨짐으로써 정신적 육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피해를 겪는 건 아이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부모가 이혼한다. 자신에게 아빠랑 살지 엄마랑 살지 결정하라고 한다.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을 아빠나 엄마라고 부르라고 한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외도했기 때문이란다. 낯선 광경들, 낯선 환경들, 낯선 사람들……. 부모 이혼으로 자녀가 받는 트라우마는 상당히 심각하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도 가장 혼란스러운 사람은 지선우나 이태오, 여다경이 아니라 지선우와 이태오의 아들 이준영이다. 지선우나 이태오는 자신이 세상에서 아들을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륜과 이혼 앞에서 아들은 빼앗기지 말아야 할 자존심 같은 존재일 뿐이다. 여기에 여다경까지 가세한다. 보란 듯이 계모가 아닌 친모 노릇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준영이 받는 충격과 혼란은 안중에도 없다. 다들 내 편이 되어주기만 바란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 속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습이 펼쳐진다. 불륜은 이혼을 낳고, 이혼은 가정의 파탄을 낳고, 가정 파탄은 성인인 부모보다 나이 어린 자녀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만다.

사랑은 불타는 뜨거움이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불은 점점 사그라든다. 남는 것은 따뜻함이다. 오랜 시간 쌓아온 추억, 함께 나눈 식탁과 정겨운 이야기, 자녀와 보냈던 아름다운 지난날들, 이 모든 것이 결혼생활을 지켜주는 따뜻함이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어 따뜻함이 차가움으로 변해 버리게 만드는 것, 그것이 불륜이다. 불륜은 배우자에 대한 최악의 배반이며 모욕이다. 결혼하며 약속한 배우자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일이다. 배우자가 상대방의 불륜을 알게 된 순간, 결혼이라는 이름의 거울은 산산조각이 난다. 한 번 깨진 거울은 결코 다시 붙일 수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사랑은 뜨겁게 불타오르는 시간도 짧지만, 차갑게 식어버리는 시간 또한 짧다.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시간이다.

 

※ 본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가공된 것으로 실제 사례가 아닙니다.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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