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전 예전부터 누가 절 좋아한다거나 저한테 관심을 표하면서 다가오면 불안감과 혼란스러움을 느꼈어요. 딱히 무슨 감정이라고 명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불쾌한 감정에 가깝다는 거예요. 

가끔 공황 증상이 약하게 올 때처럼 숨이 턱턱 막히고, 아찔해져요. 진짜 모든 게 낯설고 무서워서 어딘가로 도망치려는 듯 하염없이 걷기도 했어요.

원인을 찾아보려고 과거를 아무리 뒤적거려도 전… 모르겠어요. 이런 이유 때문에 연애를 하고 싶어도 누군가를 짝사랑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가도, 그 사람이 제게 호감을 표현하고 다가오면 그냥 무조건적으로 그 사람과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쳐서 회피하게 돼요.

혹시 이런 저의 회피적 성향을 고칠 만한 방법이 있을까요? 일단은 빨리 이런 불쾌한 감정들을 없애고 싶어요.

제가 전에 병원에서 진단받은 병명으로는 우울증이랑 불안장애가 있어요. 요즘은 병원을 안 다닌 지 한 8개월 정도 된 것 같아요. 제가 다녔던 병원은 약 처방 위주로 하셔서 진료를 길게는 안 하셨어요. 

병원을 안 다니게 된 이유는 의사 선생님께서 “요즘은 어떠세요?”라고 하시면서 간단한 질문을 몇 가지 하시는데, 제가 계속해서 우울감이랑 무기력감을 심하게 느껴도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낸다.”라고 거짓말하게 되니까 당연히 약을 먹어도 잘 호전이 안 됐었어요. 

약도 자기 전에 먹으려다 보니까 만날 깜빡해서 일주일에 한 이삼 일 정도만 복용하게 됐고, 그러다가 더 이상 병원에 다니면서 약까지 먹으며 살고 싶지 않아서 자연스레 병원에는 안 가게 됐어요. 

어떻게 하면 저도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남들처럼 마음을 주고받는 연애를 할 수 있을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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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누군가 사연자님께 관심을 표하면서 다가올 때 불안감이나 혼란감을 느껴 고민이 되는 상황이시네요. 오랫동안 고민해 오신 회피적인 성향과 누군가가 다가올 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불쾌감 그리고 더 이상은 도망치고 싶지 않은 사연자님의 절박한 마음 등 사연글을 통해 잘 표현해 주신 것 같아 집중해서 읽어 볼 수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깊은 관계를 맺게 되는 상황이나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과정에서 혹시 거절당하지는 않을지, 상처받지는 않을지 두려운 마음도 생기기 마련이죠. 

우리가 맺는 모든 인간관계가 단순하고 쉽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인간관계에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고, 또 그만큼 명확한 답을 내리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처럼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 혼자 고립된 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나에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있듯, 누군가는 지금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할지 모릅니다. 누군가가 내게 건네준 한마디 위로의 말이 때로는 나에게 큰 힘이 되기도 하고요. 또 비록 어제는 누군가 나에게 칼날 같은 비수의 말을 날려 주저앉게 할지언정, 내일은 그 누군가의 손을 잡고 힘을 내어 일어나기도 하죠. 그렇게 우리는 따로, 또 같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며 살아갑니다.

 

그중에서도 연인이나 부부 같은 관계는 단연 특별한 인연이자, 무척이나 중요한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형태의 관계 중에서도 서로의 시시콜콜한 일상은 물론, 그 누구에게도 꺼내 놓지 못했던 가장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까지 공유할 수 있는 사이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기쁠 때, 슬플 때, 힘들 때 나의 편에 서서 응원해 주고 위로해 주는 ‘내 편’이기를 기대하는 관계이기도 하죠. 서로의 마음을 채워 주고, 가장 친밀한 감정을 나누는 ‘애정적 관계’로 정의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렇듯 호감이 가는 이성이 있어서 친밀해지고 싶은 욕구가 있음에도, 누군가와 가까워지거나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속에 내재된 경우, 회피 반응을 보이며 도망치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사연자님의 경우, 이런 회피 반응의 원인을 찾으려고 과거를 뒤적거리면서 그 단서를 발견하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 실마리를 찾지 못해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관계가 깊어지거나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원인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며 또 복합적입니다. 다만 많은 경우에 상대로부터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혹은 상대방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수치심, 상대가 나의 결점을 알게 되거나 그로 인해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근심과 걱정, 스스로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자존감 부족,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기 비하와 같은 무의식적 이유나 자동적인 사고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는 어린 시절, 주 양육자와 안정적으로 애착을 형성하지 못했을 경우에도 회피적인 성향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과 친밀하고 호의적인 상호작용이나 감정을 편안하게 주고받는 경험이 많이 부족한 경우에도 역시 누군가와 친밀해지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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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언제까지고 누군가와 가까워지거나 관계를 맺는 것을 피할 수만은 없습니다. 많은 관계들이 그렇듯, 특히 이성 관계를 맺는 것은 사랑을 표현하고, 또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무척이나 중요한 경험이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감정적으로도 성숙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현실에서 이성 관계나 실제적인 상호작용의 경험은 없으면서 머릿속으로만 상상하거나 혼자서만 마음을 키워 나간다면, 막상 누군가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겨도 부담스럽고 두렵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니 비록 두렵더라도 조금씩 용기를 내서 호감이 있는 상대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또 사연자님께 다가오려는 상대의 표현에도 적절하게 응답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습관처럼 달아나서 다시 자신만의 동굴로 숨고 싶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잠시 숨을 고른 후, 방향을 틀어 좋아하는 분을 향해 한 발짝씩 다가서는 연습을 한다면, 조금씩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관계가 진전되는 경험을 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가까운 관계로 발전하거나 그런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호감 표시를 하고 애정 표현을 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나의 취약한 부분이나 결점까지 상대에게 오픈하는 것은 물론, 나 역시 상대의 그런 부분까지 포용해 줄 수 마음과 태도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연자님의 솔직한 모습과 생각, 감정 등을 상대방에게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이 솔직한 자기 모습을 오픈할 수 있도록 사연자님의 마음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따라서 사연자님의 생각과 마음을 틈날 때마다 잘 관찰도 해 보고, 마음 깊은 곳에 어떤 두려움이나 감정들이 있는지 탐색해 봄으로써 누군가가 호감을 표시해 올 때 느껴지는 감정이나 생각 등을 상대에게 있는 그대로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자꾸만 연습해 보셨으면 합니다. 

다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파악하는 것도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상대에게 이런 나의 마음을 모두 솔직하게 전달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직 나에 대해 모든 걸 활짝 오픈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또 나의 모든 것을 오픈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직은 상대의 약점까지 포용해 줄 마음의 여유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10%만, 내일은 20%로만… 마음을 내주고 또 마음을 받아 보는 경험을 쌓아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덧붙이자면, 사연자님께서 과거에 진단받았던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를 계속 진행해 나가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우울감과 불안감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을 때, 부정적인 생각이나 불안 수준이 높아져서 누군가와 건강하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더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고, 또 이러한 정신과적 질환들이 잘 치료되지 않고 만성화될 경우, 치료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약 병원에서 처방해 주시는 약이 있으시다면, 임의로 단약하거나 투여 횟수를 조정해서 복용할 경우 그 효과가 미비할 수 있으니 꼭 처방 약대로 복용하시고, 약에 대한 상담이 필요할 경우 그때그때 담당의 분께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진료를 받으실 때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심하게 느끼는데도 불구하고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치료를 진전시키는 데 방해 요인이 될 수 있으니 사연자님의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담당의 분께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사연자님의 회피적 성향과 심리적 어려움 등을 잘 극복하셔서 미래의 멋진 연인 분과 따뜻하고 안정적인 연애를 해 나가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규홍 원장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의과전문대학원 졸업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수료
METTAA CBT / Schema Therapy Exp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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