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독이 되는 관계가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는 과정

2) 어떤 사람이 독성관계에서 희생되는가?(1)

정신의학신문 |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자신의 내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이를 나에게 덮어씌우고, 나에게 폭력과 주도권을 행사하고, 그것이 마치 나의 문제인것처럼 나를 세뇌시키는 독성관계의 주도자들. 물론 대부분의 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정상적인 관계의 탈을 쓰고 우리 주변에 숨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다른 관계에서도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문제와 본인이 여러분에게 하는 폭력을 정당화합니다.

“아니 가족끼리 그정도도 안 하는 집이 어디있어? 그리고 너 지금 부모한테 감히 반항하는 거냐?”

“아니, 어른이 술 먹고 아들, 딸 같은 부하 직원한테 실수할 수도 있죠. 이런 걸로 문제 삼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야.”

“여기는 회사야. 회사 안에서는 바깥하고 다른 여기만의 고유한 룰이 있는 거야. 다른 회사도 다 그래.” 

잘못하고 피해를 준 사람이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희생자의 입을 막으려고 가져다 붙이는 논리, 아마 살면서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겁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우리는 여기에 더 이상 항변하지 못하고, 또는 예민한 사람이 되기 싫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독성 관계의 문제가 한 번으로 끝나는 경우는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한 번 나의 경계를 침범하고 무례한 사람들은 계속 경계를 침범하고, 그 침범하는 범위를 넓혀 갑니다. 한 번 성인으로서 나의 당연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부모는 자식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렸을 때 자신이 행사했던 권리나 영향력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합니다. 한 번 직장 부하에게 선이 넘는 언행을 한 직장 상사는 이를 정식으로 항의하지 않는 한 끊임없이 자신의 잘못된 언행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합니다. 마치 자신의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행위를 지속하는 것이 자신의 행위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양 말이지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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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희생자의 정신은 그 관계에 있는 한 계속 그 독성 영향을 받아 병들어 간다는 점입니다.

앞선 시간에 우리는 왜 독성 관계의 주도자들의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지, 그리고 당하는 사람은 왜 여기서 벗어나거나 심지어 이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힘든지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독성 관계의 주도자들이 보이는 특징. 자신이 그래도 처벌받거나 보복받지 않는 상황에서만 독이 되는 행위를 한다는 점이 다른 범죄자들이나 소시오패스와 큰 차이라는 점을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주도자가 되기 쉬운 이들이있다면, 독성 관계의 희생자가 되기 쉬운 유형의 사람들 또한 존재합니다. 과연 어떠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희생자가 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들은 크게 보면 아래 세 가지 특징을 보입니다.

 

1. 갈등이나 분노의 표현에 대해서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사람들 

2. 상대방의 감정과 나의 감정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

3.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들

 

한 번 각각의 특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갈등이나 분노의 표현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사람들

가족이건, 직장이건, 학교건간에 우리는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서로 다른 성장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이것은 서로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집단생활을 하는 쪽으로 진화해온 인간의 숙명입니다. 그리고 이 인간의 집단생활은 생식능력을 가지지 못한 모든 개체가 생식능력을 가진 유일한 개체를 위해 희생하는 벌의 집단생활과 전혀 다른 양상을 가집니다.

집단생활에서 우리는 이 집단에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를 익힙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 안에서 사회에 기여할 줄 알아야 하고, 또 서로 다른 사람 간에 어느 정도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서 예의나 매너를 익혀야 합니다. 또한 인간이 가진 언어라는 의사소통 수단에 비해 인간의 조직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상황을 짐작하는 것, 즉 분위기를 읽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영아기로부터 초기 성인기까지 받는 긴 교육은 사실은 우리가 인간만의 정글, 즉 사회에서 살아나가기 위한 기술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이 인간의 사회에서 너무나 자신의 가치관만을 타인에게 강조하면 살아남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바라는 상황이 나의 입장과 반드시 같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는 모두가 바라는 방향과 반대되는 방향을 선택하기도 해야 합니다. 

여기서 생기는 게 갈등입니다.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개성을 가진 개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생길 수 있는 남들과의 입장 차이. 나를 완전히 만족시키면서 타인의 입장도 완전이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행하는, 상대방이 들으면 불쾌할 줄 알면서도 해야 하는 말이나 감정의 표현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한, 그 사람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갈등은 생깁니다. 말다툼도 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는 대답을 해야 합니다. 언성을 높일 때도, 공격성을 드러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갈등은 생깁니다.

반드시.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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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떠한 사람은 이 갈등 상황이 생기는 것만으로 심각하게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내 입장을 말하면 타인을 불편하게 할까 봐. 나중에 뒷수습이 안될까 봐. 정말로 그 사람이 나에게 필요한 상황이 됐을 때 그 사람이 나를 도와주지 않을까 봐.

심지어 어떠한 사람들은 내 안에 일어나는 분노를 이기심의 표현이나 잘못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제 진료실에 방문하는 어떤 사람들은 평소 때는 굉장히 평온해 보이고, 화를 한 번도 내 본 적이 없는데 딱 한 번 화를 내고 나서 심하게 우울해하거나 또는 죄책감을 호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살 시도까지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분노를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거나 지나치게 위협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이런 분들은 갈등 상황을 두려워한 나머지 갈등 상황이 오기 전에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려고 하고, 상대방의 기분에 지나치게 민감해합니다. 다른 사람과 내 입장이 부딪히면 그 상황 자체가 너무 불편한 나머지 알아서 내 권리와 입장을 포기합니다. 

한마디로 알아서 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이 ‘착하다’라는 평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그렇게 자신의 입장을 포기하고 남에게 맞춰 주었기 때문에 이제 그게 당연하고 디폴트가 돼 버리기 때문이지요.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착하다’는 이 사람이 평소 때 자신의 마음대로 할 능력과 상황이 되는데도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걸 의미하거든요. 반대로 희생자가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너 좀 이상하다.’, ‘사람이 변했다,’처럼 억울한 평가를 받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독성 관계의 주도자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쉬운 먹잇감입니다. 이 사람들은 희생자가 있어야 자신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분노도 못하고, 반항도 못하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들이니 얼마나 투사하고 경계를 침범하기 쉬울까요? 심지어 이 사람들은 이 독성 관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에 죄악감을 느끼게 됩니다. 독성 관계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가장 많은 유형이 바로 이 유형입니다.

2) 어떤 사람이 독성관계에서 희생되는가? (2)에서 계속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권 순 재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분당서울대병원 전임의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치매전문센터장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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