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독이 되는 관계가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는 과정

1) 독이 되는 관계에는 언제나 주도자가 있다.

정신의학신문|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앞선 시간에 우리는 인생에서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독이 되는 관계가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파괴하고 망가뜨리는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학대, 인간성의 부정, 조종, 가스라이팅 등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즉, 부부간에, 부모자식간에, 형제간에, 학교 반 친구들간에, 그리고 회사 상사와 부하, 동료들 사이에서 말이죠.

여러분은 이러한 관계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겠나요? 제가 앞에서 언급한 관계들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이들은 부모자식간의 관계나 상사와 부하 사이의 관계처럼 상하관계가 명확히 존재하거나, 또는 부부나 학교 반친구들처럼 얼핏 보면 동등한 관계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간에 힘이나 영향력의 차이가 크게 나는 관계들입니다.

둘째로, 이들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외부에서 개입이 힘든 고립된 관계들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는 그 부모가 좋은 부모던, 나쁘고 이상한 부모던 선택할 수가 없는 존재들이죠. 그리고 그 관계는 보통 외부에서 개입하기보다는 개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겨집니다. 회사 상사와 부하, 반 친구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죠.

그리고 이러한 환경들이 관계에 있어서 나쁜 영향, 즉 독성이 자라나기 쉬운 관계들이 됩니다. 사회규범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옳고 그름을 따르기보다는 그 집단의 고유하고도 독특한 암묵적인 룰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외부에서 개입하지 못하고, 더군다나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보이지도 않고, 사회 보편적인 룰을 따르기보다는 고유의 룰을 따르는 관계. 이러한 관계에서는 도덕이나 이성보다는 힘의 논리나 동물적인 본능이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게 되어있습니다. 보통은 힘이 더 세고, 영향력이 더 크고, 서열상 가장 윗사람이 이 관계를 주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에서 나에게 지속적이고 벗어날 수 없는 나쁜 영향을 주고, 더 나아가 그 관계를 통해 나의 정신을 나쁘고 건강하지 못한 쪽으로 바꿔버리는 그러한 사람. 즉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 폭력을 쓰는 연인, 집단 따돌림을 주도하는 반 친구나 직장동료, 이러한 사람들을 저는 ‘독성관계의 주도자’ 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독성관계의 주도자가 되는가?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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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점이나 유튜브 방송들을 보면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방송이 굉장히 많이 올라오는 걸 볼 수 있어요. 이런 사람이 나르시시스트이다. 부모가 나르시시스트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나르시시스트를 알아보고 피할 수 있을까요? 이런 컨텐츠들 굉장히 많죠?

나르시시스트,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를 말하는 것이죠. 과장성, 숭배에의 요구, 감정이입이 부족한 사람들. 자신의 성취나 재능을 과장하고, 항상 최고로 인정되길 기대하고, 자신의 문제는 특별하고 특이해서 다른 특별한 높은 지위의 사람만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착취적인 대인관계과 낮은 공감능력을 가진 사람들.

그렇지만, 제 의견은 약간 다릅니다. 저는 예전에 초등학생 및 중학생 3,550명을 대상으로 집단 따돌림에 대한 대규모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집단 따돌림은 독이 되는 인간관계의 대표적인 형태이죠? 집단 따돌림의 피해자들은 연구결과, 사회적응력이 낮고, 심한 우울과 불안감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집단 따돌림의 가해자에 대한 특징은 놀라웠습니다. 가해자는 비행과 공격성의 정도는 높았지만, 사회적 결속을 만드는 능력은 높았으며, 사회적 위축이나 우울, 불안 등의 병리는 일반인과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다른 연구들의 결과와도 일치했습니다.

나르시시스트,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들이 우리에게 독이 되는 영향을 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어요. 이들은 타인의 욕망을 인정하지 않고, 착취적인 대인관계를 하며 과도한 숭배를 요구하는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나의 정신을 변질시키고,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단지 나르시시스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도자의 범위는 그보다 훨씬 더 넓습니다. 반드시 정신이나 성격에 병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아주 평범한 사람도 상황에 따라, 집단 역동에 따라 나에게 독을 뿌리는 주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반드시 피해야하는 독이 되는 관계를 주도하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나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아니라 항상 나를 바꾸려 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맞닥뜨리는 수많은 상황에서 우리의 정신이 적응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외부로 향하는 방식, 그리고 내부로 향하는 방식.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아무도 없는 컴컴한 골목길에서 강도와 맞닥뜨렸다고 생각해봅시다. 정신은 한쪽 방향으로 우리로 하여금 무기를 들고 맞서 싸워 자신의 몸과 재산을 지키도록 합니다. 반대로 정신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왜 굳이 인적 없는 길로 다녔는지 반성하고, 다음 번에는 다른 길로 가겠다고 다짐하도록 하여 위기를 극복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정신은 주변 환경을 바꾸거나, 또는 스스로를 바꾸거나 하면서 수많은 상황에 적응합니다.

그런데 유독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외부, 이 경우에는 즉 ‘내’가 되겠죠. 나를 바꾸어서, 내 행동을 움직여서 나와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가지려면 상대방을 바꾸려고도 해야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맞춰 나를 바꾸는 행동이거든요? 적응이라고 하죠. 하지만 독성관계의 주도자는 항상 상대방을 바꿔서, 즉 나를 조종하거나 폭력으로 위협하거나 해서 상황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맨 처음에 든 예가 있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청년 중에서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와 집을 나간 어머니를 둔 두 번째 청년이요. 사실 이 청년은 제 환자였는데,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가 그렇게 자기 탓을 한 겁니다. 너 때문에 너희 엄마가 집을 나갔고, 너 때문에 내가 술을 먹는 것이고, 내가 너를 때린 것은 네가 잘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죠.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죠.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가 알코올에 중독된 것은 그 청년 나이가 10살 때인데, 10살 아이가 어떻게 아버지를 알코올 중독에 걸리게 만들고 어머니를 도망가게 만듭니까?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아버지가 뿌린 독성 영향을 받은 청년은 마음 한 구석에는 결국 그렇게 믿고 있었죠. 심지어는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 마저 가지고 있었어요. 사실 이 아버지가 지금 당장 해야할 것은 술을 끊고, 가족들에 대한 자신의 폭력적인 행동, 그 성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청년의 아버지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 사실을 인정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독이 되는 관계의 피해자들은, 오히려 자신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가지거나 과도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주도자들의 정신의 문제를 덮어 쓰기 때문이죠.

독이 되는 관계에는 언제나 주도자가 있다(2) 에서는 좀더 구체적인 그들의 심리를 알아보겠습니다.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권 순 재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분당서울대병원 전임의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치매전문센터장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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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글입니다. 가슴을 뛰게 하네요. "
    "말씀처럼 가까운 데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늘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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