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 독이 되는 관계가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는 과정

2) 어떤 사람이 독성관계에서 희생되는가? (3)

➂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들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가정 학대의 피해자들이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당히 많은 학대하는 부모들이 자신의 사랑을 걸고 자식들에게 경쟁을 시키거나 차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니까 자식에게 어느 정도의 사랑과 관심을 주는 것은 당연한 건데, 그 당연한 사랑을 받지 못해서 인정과 관심에 주린 아이들한테 “자, 내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너희들끼리 경쟁해야 돼.”라고 하며 끊임없이 자식들을 비교하고, 분열시키는며 자신의 결핍을 이런 식으로 채우는 그런 미성숙한 부모에게서 자란 사람들이죠.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삶은 상대방의 애정과 관심을 받기 위한 전쟁터가 되어버립니다. 모든 인간과계에서의 갈등은 자신의 탓이 되어버립니다. 사실 인간관계의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사랑해주고 나에게 만족해주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영원한 것은 아니죠.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이러한 경향은 독성관계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독성관계의 시작을 만들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무엇이든 다 한다? 미성숙하고 애정 결핍이 있는 독성관계의 주도자들에게 있어서 이 사람들보다도 먹음직스러운 먹이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내가 조금만 불편한 기색을 보여도 내 눈치를 살피면서 나를 만족시키려고 하고, 내가 인정을 안 해 주면 내 인정을 받기 위해서 뭐든 다 참아내는 사람. 미성숙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존재가 옆에 있으면 얼마나 만족스럽겠어요?

그리고 더 심한 것은 이 사람들은 독성관계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도 힘듭니다. 왜냐하면 이분들에게 있어서 정상적인 인간관계는 그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는 거예요. 계속 노력하고 맞춰 주고 착한 아이가 되면 언젠가는 나를 학대하던 나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그 동안 숨겨 왔던 깊은 사랑을 내게 주면서 그동안의 내 인생의 결핍을 보상해줄 거라는 그런 판타지를 가지고 있거든요.

이런 분들에게 있어서, 자신이 그동안 했던 능력이 부질 없고,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남들과 같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인정하고, 인정받는 그런 가족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세상의 멸망과도 같은 두려움이거든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필사적으로 제게 자신의 주도자들을 옹호하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뭔가 오해하고 계신 거예요. 저희 부모님 그렇게까지 나쁜 분들은 아니에요.” 

 

하지만 슬프게도 회사라는 이름을 쓴다고 해서 모두 같은 회사가 아니듯이, 가족이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가족은 아닙니다. 서로 간에 정말 배려하고 조건 없이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절대로 그게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요. 자신은 자식을 사랑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지만, 자식의 입장에서는 그게 사랑이 아닌 집도 많습니다.

아무리 상대방의 마음에 들게 나를 성형해도, 값비싼 선물을 가져다줘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더 심하게 말하면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존재합니다. 그건 여러분의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슬프지만,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갈등이나 분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상대방의 감정과 나의 감정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 이 모두 독성관계의 주도자들이 가장 타깃으로 삼기 쉬운 사람들이자, 관계에서 가장 많은 독성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독이 되는 관계는 주도자와 희생자, 단 둘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의 대부분의 관계는 일대일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죠. 독성관계는 주도자에 의해 시작되지만 협력자들로 인해 완성됩니다.

독성관계를 못 본 척하며 용인하다가 결국은 자신도 주도자가 되어버리는 사람들.

다음 시간에는 협력자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권 순 재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분당서울대병원 전임의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치매전문센터장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글입니다. 가슴을 뛰게 하네요. "
    "말씀처럼 가까운 데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늘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권순재 전문의의 대표칼럼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