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처투성이였던 그 시절의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4) 독이 되는 관계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들

정신의학신문|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선동. 타인을 부추김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일이나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행위입니다. 선전을 뜻하는 ‘propaganda’의 동사형인 ‘propagate‘는 원래 종교를 전도하다는 뜻에서 나왔습니다만 근현대에 와서는 점차 오염된 이념과 사상을 전도시키는 것으로 변질되어 갔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칼럼니스트 최성환 선생님은 말합니다. ‘좋은 선동은 불가능하다. 다른 걸 비하하거나 깎아내리지 않는 선동은 효과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책 ‘선동의 기술’에서는 명연설과 선전을 이렇게 구분합니다.


명연설은 국민들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지만, 선동은 국민들을 분열시킨다.


그렇다면, 왜 선동가들은 국민들을 분열시키기를 원할까요? 왜냐하면 국민들의 뜻이 통합되어있다면, 조종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TV에 나오는 정치가나 아니면 여러분 주변의 친구가 친구들 사이를 화합하고 통합시키게 하기보다는 우리를 갈라놓고, 분열시킨다면 그 사람은 우리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약하게 만들어서 조종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다고 보셔도 됩니다.


이 독이 되는 관계는 1대1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선동과 조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끊임업이 나를 깎아내리고 서서히 나의 자존감을 제로로 만들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관계이지요. 이 관계에서는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이 나에게 주입한 자신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그 사람이 원하는대로 행동하게 되지요. 이렇게 다른 사람을 심리적으로 선동해서 기필코 조종하려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렇게 남을 선동하는 행위가 두 가지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 타인을 조종함으로써 자신은 어떠한 위험도 감수하지 않고 자신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취약한 정신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것, 즉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는 것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심의 가책, 자기 반성, 책임을 지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그런 것들이죠.

이렇게 독이 되는 관계를 여러분에게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여러분의 정신을 분열시킵니다. 여러분의 욕구와 소망이 있어야할 곳을 깊은 곳에 묻어버리고 자신들의 심리적 도구나 노예로 여러분들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선동당하는 관계나 조종당하는 관계에서 자신의 욕구와 소망, 마음을 잃어버린 분들은 어떠한 상태에 이르게 될까요?

 

freepik
freepik

 

첫 번째로, 이들은 자신의 갈등을 해소하거나 위로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정신을 치유하고 위로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단, 여기에 절대적인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나쁜 일들에 대해서 내 자신이 기여한 바가 있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시험에 실패하거나 인간관계에서 실패하는 등의 좌절을 경험했다고 해봅시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납득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그 좌절에 대하여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전부 다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가지거나, 전부 다 남의 책임, 세상과 환경의 책임이라고 여기지요. 그리고 그 극단적인 두 가지 생각이 오가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우리는 서서히 구분하게 됩니다. 나에게 일어난 좌절에 기여한 나의 역할의 지분과 또 내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역할을 말이죠.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좌절에 대한 지나친 죄책감과 자기 비하, 또는 지나친 증오와 미움을 극복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고민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보내주거나 피하고, 내가 좌절에 기여한 부분에 대해서는 침착하게 오류를 수정하여 다음에 오는 비슷한 상황에 같은 좌절을 겪지 않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 속에서 고난에 따른 성장이 일어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남들에게 강요되거나 주입받은 것으로 인한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면, 어렸을 적 아버지의 폭력이나 가정불화 때문에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는 여기서 어떤 반성을 하고, 어떤 오류를 수정해야 할까요? 더군다나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르면서 네가 그렇게 맞은 것은 전부 너의 잘못 때문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주입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가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것과 나의 잘못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비슷한 순간이 왔을 때 더 현명하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아닐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당한 폭력과 학대, 그리고 조종의 피해자들은 언제나 마음이 극단적인 상태에 가 있습니다. 모든 일의 원인을 자신의 잘못에서 찾는 왜곡된 죄책감, 또는 세상에 대한 지나친 증오심. 죄책감과 증오는 둘 다 인간이 견디기 힘든 과정입니다. 하지만 남에게 유도되었기에 그 근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죄책감과 증오는 결코 해결되지 못하고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게 됩니다.
 

두 번째, 남들이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사랑받아왔던 사람은 앞으로 다른 관계에서도 당연히 자신이 사랑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해서 학대받았던 사람은 다른 관계에서도 학대당할까봐 엄청나게 경계하곤 합니다. 한 관계에서의 실패는 앞으로 겪을 다른 관계에서의 실패의 복선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독이 되는 관계 속에서 내가 받은 상처는 나 혼자서는 결코 스스로 받아들일 수도, 치유하기도 어려운 그런 상처들입니다. 그리고 상처를 준 사람들이 흔히 이런식으로 자신의 미숙한 행동을 합리화합니다. 그리고 그 합리화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죠.


“내가 사랑해서 널 때린거야.”


“나니까 그래도 네 옆에 있어주는거야.”

 

물론 이는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자신을 합리화하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입한 말입니다. 그러나 지위나 폭력을 통해서 항거불능의 상태가 된 후에 주입받은 이러한 말은 희생자에게 두 가지 강력한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너는 내 곁에서 떠나서 살수 없어. 왜냐하면 세상에서 네가 받을 대접 중 그나마 가장 좋은 대접이 이 정도거든.”


“다른 관계에서도 너는 지금과 같은 폭력과 모욕을 당할거야. 왜냐하면 너는 다른 사람보다 가치가 없는 사람이거든.”


그리고 실제로 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실패를 거듭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속적으로 주입받은 나쁜 자기상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일단 경계하고, 여러 사람이 즐겁게 웃고 떠드는 것을 보아도 나는 절대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없을 거라고 느끼거든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주는 호의를 의심하게 됩니다. 나에게 사실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니까 남들이 나에게 잘해주는 것을 나에게 원하는게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의심하는 거죠.


결국, 이들은 정말로 세상에서 고립되어 나에게 그런 생각을 주입한 독성관계 안에서만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사림이 되어버립니다. 당연히 남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도 없게 됩니다.


세 번째, 이들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의 뇌에는 분노-회피 반응을 담당하는 회로가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위기를 인식하게 하고 그 위기에 대항하거나 피하게 만드는 판단을 담당하는 회로입니다.
하지만 이 회로가 우리의 삶에서 적절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 필요한 것이있습니다. 바로 경험입니다. 우리는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상황에서 얻은 경험을 통해 언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하여 배웁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쌓이게 되면 스스로 자신을 방어하는 나름의 기술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을 보면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겁내지 않으면서도 꼭 필요한 경우에는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보기에도 편안해 보이죠.

하지만 독이 되는 관계에 오래 머무른 사람들은 이와 반대입니다. 이들은 언제 분노해야할지 언제 상황을 회피해야할지 모르게 됩니다. 술자리에서의 가벼운 농담에 갑작스럽게 분노하기도 하고, 막상 내가 분노하며 스스로의 의견을 단호하게 표현해야 할 때 가만히 있게 되기도 합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뒤늦은 분노입니다. 분노는 뒤늦게 표현하면 표현할수록 나의 인간관계를 망칩니다. 우리 모두 인간관계에서 정말 기분이 나쁠 때 아무 말도 못하고 분노를 쌓아두다가 전혀 엉뚱한 때 참지 못하고 폭발하여 곤란한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독이 되는 관계에 오래 노출된 사람들은 이러한 뒤늦은 분노의 폭발이 반복되며 결국 사회생활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하거나 또는 아예 분노의 방향을 스스로에로 돌려 알코올 중독이나 자해, 폭식과 같은 스스로를 망치는 행위에 몰두하게 되기도 합니다.

 

freepik
freepik

 

자, 이제까지 나를 위협하고, 조종하고, 세뇌하는 독이 되는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한 번 정도는 나에게 독이 되는 인간과 만나 독이 되는 관계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관계는 특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곳, 가정, 학교, 부부간, 연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우리의 정신을 분열시키고, 우리가 스스로를 나쁘고 무력한 인간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는 우리를 다른 사람들의 심리적 노예상태로 만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정신의 상당부분은 우리가 겪어온 관계와 우리가 그 관계에서 수행했던 역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쁜 관계로 인한 고통은 단지 기분 나쁘고 불쾌한 경험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독이 되는 관계는 우리의 안으로 들어와 우리의 정신의 일부가 되고, 앞으로 우리가 만다는 모든 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단 한번이라도 이러한 관계가 어떠한 관계인지, 또 이러한 관계를 어떻게 구분해내고 이러한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배운 적이 있나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걸쳐서 우리는 관계의 소중함을 배웁니다. 양보하라고 배웁니다. 사랑하라도 배우지요. 하지만, 우리의 사회는 결코 교과서에서 배운 이론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과서 밖의 진짜 세상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과 부조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나에게 들어온 나쁜 관계는 나에게 세상을 무서운 곳이라 인식시키고, 내가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게 만들고, 내가 장차 세상의 이 부당함에 대하여 결코 저항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결국에는 내 안에 잠들어 있는 행복해질 가능성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마저 파괴해버립니다.

 

이제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내 곁에 두어야 할 관계와 그렇지 않은 관계를요. 나에
게 선한 영향을 주는 관계와 나쁜 영향을 주는 관계의 차이를요. 그리고 이미 내 안
에 들어온 독이 되는 관계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방법 또한 배워야 합니다.

나쁜 관계로 인해 상처투성이였던 어린 시절의 여러분과 나에게 말해주고 싶습니
다.
어쩌면 당신의 잘못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벗어나세요.
정리하세요.


이제 행복해지세요.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권순재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분당서울대병원 전임의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치매전문센터장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글입니다. 가슴을 뛰게 하네요. "
    "말씀처럼 가까운 데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늘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권순재 전문의의 대표칼럼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