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사람들 대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얼마 전, 진료실을 찾았던 새내기 직장인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너무 불편하다며 꺼낸 말이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하게 된 후, 이상하게 주변 사람들이 자꾸 의식이 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말문이 턱 막히더라는 거다. 처음엔 그러다 말 거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 대하기가 더 불편해지고, 주목받는 상황이 오면 움츠러들게 되었다 한다. 급기야는 사람들 앞에서 얼굴이 금세 붉어지고, 말도 잘 나오지 않게 되었다. 자꾸만 인간관계가 어긋나고, 자신은 소극적으로 피하게 되는 것 같아 고민이라는 거다. 

 

인간관계는 더는 사회 초년생들의 고민만은 아닐 테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타인과의 관계란 생존을 위한 필사적 노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또한, 현대사회가 복잡 다양해지면서 사람들은 회사나 학교에서의 직접적인 만남뿐만이 아닌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처럼 간접적이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도 연결된다. 우리는 이른바 ‘관계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관계에 대한 접근성은 더욱 커졌지만, 원치 않는 불편한 이들과도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게 되는 아이러니한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인간관계로 인한 외적, 내적 갈등도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단언컨대, 인간관계로 인한 고민을 한 번이라도 해보지 않은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관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환경을 유독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타인들의 눈빛을 불편하게 느끼며,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늘 주눅 든 모습이다.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라도 할 때면 얼굴이 빨개지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타인과의 대화가 두렵고, 사람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입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 내 주변에 있는 가까운 가족, 지인 혹은 나 자신의 모습일 수 있을 것이다. 

 

사진_freepik

 

사람들은 관계가 불편한 이들에게 ‘소심하다’ 혹은 ‘수동적이다’는 꼬리표를 붙인다. 하지만 관계가 힘든 이들이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관계를 받아들이는 자신의 반응은 의식적이기보다 다분히 무의식적이며, 자동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이 받는 세간의 평가는 더욱 억울하기만 하다. 인간관계의 ‘스킬’을 다루는 방법들은 시중에 넘쳐나지만, 정작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외현적인 노력과 조금은 다른 것일 수 있다. 

 

내가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어떤가? : 자신의 스키마(schema)를 살피기

인간관계의 종류에도 여러 유형이 존재한다. 자신의 삶에서 독(毒)처럼 여겨지는 관계는 당연히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해로운 영향만을 끼치는 상대방과 맺는 관계가 삶을 고통스럽게 한다면, 그 상대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최선이다. 여기서는 상대방을 어떻게 잘 다루고 가능한 한 피할 수 있을 것인지가 주된 이슈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치명적인 관계보다 일상적인 관계에 대한 고민이 더 많다. 친구, 직장 동료, 부부, 연인, 부모 형제 관계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경우에 방향성은 조금 달라진다. 인간관계가 힘들다 느낀다면 자신과 관계를 맺은 상대방에 대한 고민만큼이나 자신이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관계의 초점을 상대방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인간관계는 혼자 맺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관계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를 타인의 탓으로, 혹은 우연히 벌어진 상황의 산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렇게 여기는 것이 자신을 방어하기 쉽다. 이를 심리적 방어기제 중 투사(projection)라 하는데, 투사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일단 마음은 편하다. 타인의 탓이 100%라 여기면, 자신을 향한 자책의 채찍은 피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남 탓’은 관계에 숨겨진 이면을 볼 수 없게 하고, 결국 관계를 고통으로 이끌어간다. 

 

인간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낀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삶에서 특정 인간관계가 늘 문제가 일으켜 오지는 않았는가? 관계에 대해 ‘두려운 것’ 혹은 ‘극복하기 힘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유독 같은 이들에게, 혹은 같은 상황에서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는가? 자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이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은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첫 발걸음이다. 우리는 눈앞의 관계에만 주목한다. 만약 한 걸을 뒤로 물러서 과거의 관계들을 찬찬히 조망해본다면, 자신이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고, 헤어지는 데 일종의 패턴(pattern)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관계의 고통을 만드는 마음 깊은 곳의 동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변화를 위한 발걸음을 옮기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테다. 관계에 대한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는 것은, 잃어버렸던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이 될지도 모른다. 

관계를 맺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와는 별개로 같은 패턴의 문제들이 늘 발생하는 경우라면, 상대방에게만 초점을 맞추던 습관에서 벗어나 관계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 볼 필요가 있다. 나, 타인, 그리고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관계를 어긋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주의를 기울여 자신의 시각을 살피지 않으면 왜곡된 관점들은 일상에 ‘숨어버린다’. 이는 자신이 노란빛 색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가 ‘세상은 원래 노란 것’이라 여기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제프리 영(Jeffrey E. Young)이 주창한 스키마 치료 이론 (Schema therapy theory)에서는 이러한 관점을 스키마(schema)라 지칭한다. 우리는 삶에서 겪는 모든 상황, 사건들을 날 것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스키마라는 필터를 통해 여과된 형태로 마음에 담는다. 만약 자신에게 관계를 왜곡시키는 필터가 있다면 많은 상황 중 유독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집중 조명하여 우울함이나 불안,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 반응들을 만들어낸다. 자신이 어떤 형태의 스키마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바라보고 있는지 고민하는 것은, 반복되는 인간관계 문제를 차단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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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과정의 경험들은 뇌에 흔적을 남긴다 

“나는 왜 이렇게 된 걸까?”

자신이 지금껏 관계를 대했던 관점을 떠올려 보면, 자연스레 그 시작에 대한 의문이 생길 것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 그 뿌리가 성장 과정의 경험으로부터 오는 경우가 많다. 아기가 태어난 후 인생의 초반부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격적 기질(temperament)이 아이의 감정과 행동 패턴의 결을 좌우하지만, 성장 과정의 경험들이 차츰 쌓이며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는 새로운 틀(frame)이 형성된다. 우리가 자전거를 탈 때를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페달에 발을 어떻게 올리고, 어떤 식으로 페달을 움직여 몸의 균형을 잡고, 어느 방향으로 핸들을 움직여야 할지 모든 과정이 불안하고 낯설다. 반복적인 연습이 뇌에 일종의 패턴을 만들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전거를 타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틀이 생겨난다. 이처럼 스키마는 인간이 상황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유용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비슷한 상황이라면,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 처리하는 것이 에너지 소모가 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성장 환경에서 왜곡된 틀이 우리 삶에 자리 잡는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관계와 관련하여 경험했던 불안, 분노와 같은 강렬한 감정적 기억들은 우리 뇌의 변연계(limbic system) 안에 자리한 편도체(amygdala)에 깊게 저장된다. 삶의 행복했던 대인관계 경험들은 건강한 성장과 자존감의 든든한 바탕이 되지만, 학대나 따돌림과 같은 끔찍하거나 피하고 싶었던 관계의 상처들이 저장되어 있다면, 이는 의식의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다른 타인을 대하는 순간에 강렬한 느낌을 ‘재현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것처럼, 타인과 관계 맺는 사회적인 상황이 무의식적인 과거의 고통을 자신도 모르게 상기시키며, 관계의 고통스러운 패턴이 반복된다. 편도체에 남은 타인에 대한 강렬한 감정들은, 결국 관계 자체를 왜곡하여 바라보는 스키마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관계에서 오는 불안, 극복을 위한 3가지의 알아차리기(awareness)

긴 시간 동안 형성된 관계에 대한 스키마는 몸과 마음에 익은 습관과 같아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절대 쉽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살아왔던 대로 살아간다. 변화를 위해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 첫 발걸음을 떼는 일이다. 자신의 삶에서 타인과의 관계가 늘 불편했다면,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문제라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알아차리기(awareness)를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알아차리기란 단순히

1) 자신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뿐만 아니라,

2) 관계가 어려웠던 근원적인 뿌리를 알아보려는 노력, 그리고

3) 관계를 대하는 이 순간 내가 겪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을 포함한다. 

희뿌연 안갯속에서 나를 괴롭혀 왔던, 형체 모를 ‘괴물’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하고 두려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극복할 불편감의 구체적인 형태들을 그려보는 것은 관계의 불편감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인간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낀다면 언제부터 그러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는지, 어떤 형태로 내가 인간관계를 대해 왔는지, 그러한 관계에 대한 태도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에 대한 한층 구체적이고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부모님을 비롯한 중요한 대상과의 관계의 모습 또한 다시 그려 볼 필요가 있다. 내가 경험해 왔던 관계들을 되짚어 보고, 이를 바탕으로 내가 현재 겪고 있는 관계의 문제를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자신이 경험한 관계의 특징들을 직접 기록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내 삶에 드리워진 스키마의 그림자를 알아챌 수 있게 한다.  

내가 가진 인간관계에 대한 스키마의 윤곽이 드러난다면, 이제는 이에 대한 패턴을 깨는 (pattern-breaking) 단계가 필요하다. ‘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매 순간 관계를 대하는 나를 살펴보자. 처음에는 여전히 인간관계의 순간에 과거의 패턴을 답습하는 나 자신이 보일 것이다. 그 순간에 의식하고 집중해 알아차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관성을 벗어나기가 쉽지만은 않다. 편도체에 새겨진 감정적 기억들은 관계의 매 순간 활성화되어 과거의 나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타인과 관계하는 때의 나를 바라보려는 반복적인 노력이 과거에서부터 만들어진 두터운 습관의 벽에 조금씩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글을 맺으며 

알아차리는 것(awareness)이 비단 인간관계의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겪는 고통이 어떠한 범주에 속해 있든, 성장 과정에서 겪은 경험들의 영향과 그로 인한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려는 노력은 막연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불편함의 대상을 명료하게 하며, 그 순간의 자신을 조금은 거리를 두고(distancing) 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토록 자신을 괴롭혀 왔던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변화를 시작할지도 모른다.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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