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독이 되는 관계가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는 과정

3) 독이 되는 관계에는 반드시 공범이 있다(1)

정신의학신문|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 인간이 다른 사람을 심리적으로 지배하고 자신의 문제를 상대방에게 덮어 씌우는 독이 되는 관계. 이 독성관계는 주도자와 희생자. 둘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아주 일시적인이라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이 독성이 여러분의 정신을 긴 시간에 걸쳐 바꿀만큼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사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단지 1대1의 관계라고 믿는 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부부간의 관계를 한 번 보죠. 둘 사이에는 아이들이 있고, 남편 쪽의 아버지, 어머니. 부인 쪽의 아버지, 어머니가 있습니다. 사실 표면적으로 보면 1대 1의 관계이지만 남편과 장인의 관계, 부인과 시어머니의 관계, 남편과 딸의 관계, 부인과 아들의 관계 등 사람의 수만큼의 관계의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두 사람과의 관계의 양상은 두 사람 주변의 관계에도 일정한 양상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이 독이 되는 관계는 주도자에 의해서 시작되지만 두 사람의 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은 주변의 사람에 의해서 단단해지고 완성되게 됩니다. 저는 독성관계의 영향을 받은 주변의 제 삼자를 협력자라고 부릅니다. 이제 협력자까지 나타나게 되면 희생자 입장에서는 이 관계를 뒤집을 수도, 벗어나기도 힘들어집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진료실에서 만난 한 사례를 각색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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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0대 후반의 워킹맘입니다. 젊은 나이에 직장 동료인 남편을 만나 연애를 시작했고, 아이가 생겨 급히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시댁은 큰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부잣집이었습니다. 사실 결혼할 때 저희 시부모님께서는 저를 탐탁지 않게 느끼시는 것 같았어요. 사실 노골적으로 저를 무시했죠.

‘우리 집안은 원래 너희 같은 집안에 사돈 맺을만한 집이 아니다. 애 생겼으니까 어쩔 수 없이 결혼이야 시키겠지만 어쨌든 내 아들 절대 기죽이지 말고 살거라.’

워낙 부잣집이시고 자존심 강한 분들이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라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는 정말 생활이 만만치 않더라구요. 아이와 남편 챙겨가며 직장생활도 해야했고, 그러면서도 매주 주말에는 시댁에 가서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모든 집안의 대소사와 명절 준비는 실제로 제가 준비해야했구요. 그러면서도 시부모님들은 모두 저에게 수고한다거나 잘했다는 말 한마디 하는 법이 없으시더라구요. 제가 매주 찾아뵐 때는 반가워하지 않으시다가 어쩌다가 한 번 주말에 방문을 안하면 꼭 월요일에 전화해서 주말에 뭘했길래 코빼기도 비추지 않느냐는 등 나무라시는 말씀을 하셨어요.

제 손윗동서는, 그러니까 남편의 형님의 부인이죠. 명절을 포함해 일 년에 네 번 남짓 시댁에 올 뿐이에요. 손윗동서는 좋은 집안 딸로 알고 있는데, 제 앞에서 노골적으로 역시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야한다는 둥, 얼굴이 밝아서 좋다는 둥 비교 아닌 비교를 항상 하셨죠.

근데 문제는 처음에는 손윗동서나 남편도 이러는 데에 민망해하다가 몇 년이 지나니까 이게 당연한 돼버린 거죠. 나머지 시댁식구들이 명절에 즐겁게 얘기하고 웃는 동안 저는 혼자 설거지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심지어는 손윗동서가 저에게 과일 좀 내오라고 시키는 경우도 있었어요. 마치 자신이 서열 상 위에 있어 저에게 명령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어요.

시아버지께서 암으로 돌아가신 후에는 시어머니는 혼자 생활하기가 버거우셨는지 합가하고 싶어하는 기색을 보이시더라구요. 그런데 합가할 때 가장 중요한 제 의견은 아무도 물어보지 않으시더군요. 저는 솔직히 시어머니와 합가해서는 살기 어려울 것 같아요. 그 분을 모시는 일도 모시는 일이지만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이 저에게서 응당 받아야할 것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분을 볼 때마다 분노가 일고, 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비참한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이 아니라 이 기분을 매일 느끼면서 사는 것은 견디기 버거울 것 같아요.

문제는, 시아주버니와 동서, 그리고 남편이 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에요. 세 사람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저보고 속이 좁고 인정머리 없다고 비난하더군요. 마치 당연히 제가 해야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저를 비난하더군요. 가까이 살면서 그것 좀 하는게 얼마나 그렇게 힘들었냐는 거죠.

모든 책임과 고충은 실질적으로 제가 짊어지는 것이지만, 막상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훨씬 더 커요. 알아요. 제가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시어머니와 합가하게 될거라는 것을요.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분노가 조절이 되지 않습니다. 아들과도 계속 싸우기만 하구요.

그리고 왜 저는 중요한 제 일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제 의견 대신 다른 사람을 자꾸 따르게 되는 걸까요? 제가 정말 그들 말대로 속이 좁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라 화가 나는 걸까요? 하지만 이대로는 정말 견디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위의 사례는 어떻게 보면 가족간의 관계, 특히 시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 매우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모형입니다. 혈연과 결혼으로 맺어진 집단에서 자주 나타나는 독성관계의 예입니다. 주도자는 시부모님, 그리고 협력자는 자신이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중재도 하지 않는 남편과, 제 삼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사연자에게만 터무니 없는 부담을 요구하는 남편의 형과 부인 세 사람이지요.

처음에는 이들도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시부모님의 영향으로 인해 이 사연자분은 집안에서 어떤 영향력도 없고, 일은 일대로 하면서도 가장 낮은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한 사람으로 굳어졌고, 이 두 사람의 역동은 주변 사람으로 퍼져나갑니다. 결국 남편의 형 부부마저도 사연자분을 집안에서 가장 아랫사람, 권리가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된거죠.

협력자들, 독성관계를 옹호하고 독성관계를 체제로 만들어 유지하는 주도자의 공범들. 주변인들이 협력자가 되어가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단계로, 이들은 주도자의 희생자에 대한 처우를 용인하고, 묵인하다가 두 번째로 결국 자신도 주도자의 역할에 가담합니다.

3) 독이 되는 관계에는 반드시 공범이 있다(2)에서 계속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권 순 재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분당서울대병원 전임의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치매전문센터장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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