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1) 부부싸움을 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결혼하기 전에는 사이도 참 좋았는데, 결혼 후에는 싸울 거리가 왜 그리 많던지요. 특히 양가 가족들 때문에 기분 상하는 일이 너무 많아요. 결혼은 부부끼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더니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아내는 시어머니와 갈등이 생겼고, 저 또한 여러 이유로 처가 식구들을 보는 것이 불편해졌어요.

 

A) 우리나라의 유교 문화에선, 성인이 되면 부모님을 봉양하며 오래도록 함께 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요.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며, 과거 농경 위주의 사회에선 가용 노동력이 많을수록 공동체에 더 유리했으니까요. 하지만, 시대가 변했음에도 과거의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아요. 시대착오적인 착각에서 생기는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아 더 안타깝죠. 

결혼 초기에 나타나는 가장 많은 갈등은 부부 사이의 갈등보단 시댁-처가를 둘러싼 갈등이 대부분입니다. 모든 경우는 다르겠지만, 대개 1) 마음 안에선 아직 각자의 가정에서 독립하지 못했고, 2) 부부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정이야 다들 다르겠지만, 결혼 생활을 시작하며 신혼부부들이 가장 관심을 두어야 할 관문은 <각자의 집에서 독립하기>입니다. 몸만 떨어져 있다고 독립이 아니겠죠. 남편과 아내 모두 부부생활은 처음인 데다, 아직 마음의 한 부분은 각자의 집에 남겨두었을 겁니다. 결혼 초기에 부부간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 이유지요. 

함께 공동의 취미를 가지는 것도 좋습니다. 모두 잠든 밤 시간에, 맥주를 홀짝이며 마음에 담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오로지 둘만을 위한 대화 시간'을 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부부간의 공감대가 형성된 후에야 비로소 서로의 가족들을 대하는 태도, 빈도, 시간 등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가 가능해지니까요. 만약 시댁 - 처가와의 갈등이 심해진다면, 물리적인 거리를 멀리 두는 것도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신혼부부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부부를 독립된 공동체로 보지 못하고 각자의 살았던 가정과 겹쳐서 보는 거죠. 착각은 갈등을 부를 뿐임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부부생활 초기에 생기는 갈등은 잔물결이죠. 시간이 지나며 밀려오는 더 큰 파도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부부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마음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사진_픽셀


Q2) 부부싸움을 하면, 처음에는 꾹꾹 참아요. 그런데 인내심의 한계가 왔을 때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거나, 책상을 내리치게 되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화만 나면 자동으로 과격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나고 나면 꼭 후회하고 사과를 하곤 하는데, 이걸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A) 프로 농구 경기를 보면, 경기 중 선수가 팔을 삼각형으로 만들어 경기를 멈추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타임아웃(time-out)이라 합니다. 뜬금없이 왜 농구 이야기냐고요? 그래요, 부부관계에도 타임아웃이 필요합니다. 감정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부부싸움 중 감정이 자극되면, 어느새 행동화(acting-out) 돼버리죠. 감정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잠시 끊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싸움 도중 감정이 올라오는 상황에서 자신의 신체 감각을 되돌아볼까요.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손에 힘이 들어가거나, 얼굴이 벌게지거나, 혹은 목덜미가 뻐근해지는 감각이 느껴졌을 겁니다. 주로 느끼는 감각은 사람마다 다르니 자신은 어디 속하는지 체크합니다. 그리고 싸움 도중 신체 감각이 느껴지면, 행동화 직전이라는 싸인이니 재빨리 '타임아웃'을 외치고 부부간에 물리적 - 시간적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거나, 둘 중 한 명은 밖으로 나가 얼마간 산책하는 것도 좋습니다. 가능한 한 충분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타임아웃 동안 팀원들은 작전 회의를 합니다. 부부간의 타임아웃 중에는 다툼의 상황을 헤아려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상대의 탓, 상대의 결점만 보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남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미숙한 투사(projection)를 벗어나, 다툼 직전에 내가 했던 생각, 행동, 자신의 의도를 생각하고, 상대에게 어떻게 비쳤을까에 대한 심사숙고를 하는 거죠. 어려우면 책상에 노트를 펼쳐 놓고 적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휴대전화의 메모 앱을 이용할 수도 있겠네요. 적는 행위 자체가 무의식적인 감정 영역에 이성의 힘을 깃들게 하고, 감정을 다소나마 컨트롤할 수 있게 도와주거든요. 그러고, 나서 얼마간의 타임아웃이 끝나면 다시 만나 적은 내용을 소통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리 이 타임아웃의 상황과 시간에 대한 약속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 또한 평소 충분히 부부간의 대화와 마음으로 이어진 소통으로 가능합니다. 또, 습관이 들 때까지는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부부간에 이를 잘 양해하는 것도 필요하겠네요.
 

사진_픽사베이


Q3) 아내가 잔소리하는 게 너무 듣기 싫어요. 또 이상한 건, 내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면 그만인데 그러지 못한다는 거죠. 회사에선 어떤 잔소리를 들어도 '강철멘탈'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잘 참거든요. 그런데 아내의 말은 꼭 내 깊은 곳을 찌르는 것 같아서, 한 마디에도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요.

 

A) 밖에서 만나는 남과, 배우자를 대하는 태도가 자신도 모르게 달라지는 것. 결혼 이후 느끼게 되는 당혹감 중의 하나입니다. 남에게는 너무 깍듯하고 반듯합니다. 사소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요. 하지만, 배우자와 다툼이 일어나는 순간 자신도 몰랐던 '완전 열 받은 나'를 발견하게 되죠.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첫 번째는, 내 집이 주는 느낌 때문입니다. 'Home'이라는 단어에서 고향을 뜻하는 'Hometown'이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듯이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좀 과장하면 긴 전쟁을 끝내고 절뚝이며 고향에 도착한 병사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요? 편하고, 아늑하고, 포근한, 온갖 좋은 형용사를 다 갖다 붙여도 모자란 공간이 바로 내 집입니다. 또, 집에는 뭐든 받아주었던 가족들이 있죠. 마음의 빗장을 풀고 마음 안의 어린아이를 꺼내 놓아도 되는 공간입니다. 내 마음을 방어하던 견고한 벽이 조금 느슨해집니다. 감정 표현과 행동이 절제되지 않고 미숙해지기도 합니다. 가족이라면 받아 주었을 것들을 배우자는 받아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배우자에게 무의식적으로 기대하게 되죠.

이렇게, 배우자에게 거는 무의식적인 기대가 두 번째 이유입니다. 말 안 해도 상대가 내 마음을 다 헤아려 줄 것이라 생각하죠. 피곤한 기색이 보이면, 귀찮은 일들을 다 처리해 줄 거라 기대합니다. 과거 가족들에게 했던 무의식적 의존이, 대상이 바뀌어 나타나는 거죠. 결혼 이전의 연애 시기에는 아름답게 펼쳐지던 판타지에서 아직은 깨지 못한 상태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배우자가 나의 분신처럼 여겨집니다. 배우자와의 다툼에서 느끼는 분노는, '내 분신이 나를 배반하는 것 같은' 섭섭함이 묻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무공 두 개를 겹치려다 보면 반발력으로 튕겨 나가는 것처럼, 아무리 가까운 관계에서라도 나와 상대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배우자와 자신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합니다. 또, 튕겨 나가지 않을 정도의 미묘한 거리는, 부부 생활이 계속되면서 나중에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이 부분은 부부가 함께 손을 잡고 잘 견디는 와중에 배우게 됩니다. 중요한 건, 배우자는 나와 다른 문화를 누리다 온 이방인에 가깝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겁니다. 연인에서 배우자로, 가장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상대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 것이 관계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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