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성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희 엄마는 매우 통제적이고 불안이 많아요. 제가 본인의 생각대로 다루어지지 않으면 화를 냅니다. 엄마 때문에 힘든 것은 친구 관계부터 자는 시간, 먹는 것까지 사소한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사소한 것들이 쌓여서 저를 힘들게 하고, 엄마가 저를 집어 삼킬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 엄마가 간식을 먹으라고 할 때 제가 먹기 싫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별로 안 먹고 싶다.”라고 제 생각을 표현하면 눈을 부릅뜨면서 “좀!”, “왜 그러니?”, “하라는 대로 좀 해!”라고 하며 화를 냅니다. 결국 저는 먹고 싶지 않은데도 엄마가 주는 대로, 먹으라고 하는 시간에 먹어야 합니다.

2. 엄마가 매우 보수적입니다. 저는 대학생이고 성인이지만 화장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항상 학창 시절부터 화장품이 없었고, 성인이 됐는데도 엄마가 하라고 할 때만 할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물론이고, 가족과 여행을 갔을 때도 못하게 하셨습니다. 친구를 만날 때만 하라고 하셨고요. 

엄마는 사람은 외면이 아니라 내면이 중요한 거라며 화장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못하게 합니다. 저도 이제 어엿한 성인인데 화장할 수 있는 날을 엄마가 정해 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단순히 화장 뿐만이 아닙니다. 만약 제가 모자를 쓰고 밖에 나가려고 하면, 왜 쓸데없이 모자를 쓰느냐고 화를 냅니다. 저는 이런 사소한 행동들을 왜 제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지 정말로 이해가 안 가고 답답합니다.

3. 저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와 논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하교 후 한 시간 동안 사이버 강의 듣는다고 거짓말을 하고 몰래 놀아 그래도 이때는 친구들과의 추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때는 친구와 논 기억이 3년 동안 네 번 정도밖에 없습니다. 당시에도 엄마한테서 연락이 올 때 못 받을까 봐 긴장하며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해야 하니까 못 놀게 하고, 대학생이 난 뒤에도 코로나 때문에 위험하다고 못 만나게 했습니다. 저는 엄마가 왜 제가 친구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엄마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못하게 하는 것만 생각하니? 내가 허락해 준 것들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저는 엄마가 이렇게 말했을 때 너무 어이가 없었고, 숨이 막혔습니다. 

언젠가는 “이제 코로나도 잦아들었으니 친구를 좀 만나고 오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도 어김없이 엄마는 “안 돼!”라며 반대했습니다. 저는 그날은 크게 반항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엄마는 단순히 자기가 안  된다고 하면 그냥 수긍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마음이 너무 힘들어져서 홧김에 집을 나왔는데, 고작 세 시간밖에 안 됐는데도 엄마는 경찰을 불렀습니다. 엄마가 나중에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자기가 성격이 좀 그러니까 안 된다고 하는 게 이해가 안 되더라도 그냥 바로 수긍하라고 합니다. 

저는 이런 엄마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대학교에서 상담도 받았어요. 하지만 학교생활과 학업을 하는 것이 버거워서 지금은 중단했고요. 저는 학기 중에도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에 가야 했습니다. 친구들은 만나지도 못하고요. 저는 독립을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엄마는 취업도 집 근처로 하라고 했고, 만약 다른 지역으로 가면 아예 연을 끊자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고 하셨습니다. 참고로 엄마랑 아빠는 어렸을 때 많이 싸우시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쿵짝이 잘 맞고, 두 분은 사이가 좋습니다.

저는 엄마랑 같이 있는 시간이 항상 답답합니다. 이 답답함에서 벗어나려면 저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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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께서 올려주신 사연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그간 사연자님께서 얼마나 답답하고 마음이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연자님께서 상세히 적어 주신 내용을 보면, 어머니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사연자님의 사소한 행동이나 결정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점은 먹는 것부터 자는 것, 심지어 외모를 꾸미거나 친구 관계까지 사연자님의 생활 전반에 걸쳐 간섭하고 통제하는 행동으로 이어져서 사연자님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실현하거나 형성하는 데까지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됩니다.

한편으로는 사연자님께서 그동안 어머니께서 화를 낼 것이 두려워서 혹은 갈등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어머니께서 간섭하거나 통제하는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맞춰 드리거나 수긍하는 삶을 살아오신 것도 같습니다. 물론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는 어린아이라면,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의존하는 시간을 지나와야 했기에, 어머니의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하거나 거스르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사연자님께 자신의 뜻이나 방식을 강요하는데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어머니의 뜻에 부응해 살아오신 삶은, 최소한의 자기방어적인 적응 방식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도 커 감에 따라 점점 자아를 형성하고, 자기만의 생각과 의지도 확고해지면서 어머니의 강요적인 태도에 맞서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권리와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아이의 태도가 못마땅하고, 그 의견을 수용해 줄 생각이 없는 양육자는 그럼에도 계속해서 자녀에게 자신의 방식을 고수할 것입니다. 어머니의 태도가 너무 강경하다거나 부모와의 갈등이나 대립에 취약한 아동들은 그러한 상황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표면적으로는 부모의 뜻에 따르면서 자신의 욕구나 감정은 억압하거나, 회피하는 방어기제를 계속해서 사용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 양식이 반복될 때, 자신의 진짜 욕구 충족은 좌절되고, 자기정체성의 확립이나 주체성의 발달은 지연되고, 부모에 대한 신뢰감이나 만족감은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의 개성 발달에 반드시 필요한 정신적 분화는 생후 몇 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때 엄마는 아기가 자신에게서 멀어져 차츰 독립하고, 세상을 스스로 탐험하려는 욕구를 실현하고, 자주적으로 행동하려는 노력을 기쁜 마음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엄마는 아이가 정신적으로 독립하게 도와주고, 마치 애정을 충전하러 오듯이 엄마를 찾을 때 정신적, 육체적으로 아이를 품어 줌으로써 안심시켜야 합니다. 아이가 어머니로부터 정신적으로 분화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려면, 어머니가 아이의 능력을 믿고, 개별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특히 정신적으로 부모는 자녀의 주체적인 생각과 세계관을 인정하고,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자기 생각을 주입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부모가 자신의 생각을 지나치게 강요하거나 간섭하면서 아이를 통제하려고 들면, 어른과 협상할 능력이 없는 아이는 이의를 제기하기도 어렵기에, 부모의 생각을 은연중에 흡수하거나 부모에게 동화돼서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어느 날 문득 자기 생각이나 의견도 없고, 뭔가를 결정할 자신감도 없이 주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부모들 중 대부분은 자신의 불안감을 낮추고 결핍감을 보상받으려는 무의식적 의도로 자녀를 통제하거나 조종하려고 합니다. 간혹 어린 시절 자신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강자들의 행동을 이제 자기보다 약한 자들에게 되풀이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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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과거를 마주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물론,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부모님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깊은 원한을 품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사연자님의 내면 깊은 곳에는 자신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섭섭함, 분노와 같은 감정이 억압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감정들이 충분히 소화되지 않고, 여전히 사연자님의 삶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한 번쯤은 대면하고, 다루어야 할 감정들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님께서 사연자님을 대하는 태도나 사고방식이 현재에도 사연자님의 삶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당장 부모님을 탓하는 것에 급급하기보다는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봐야 합니다. 첫 단계는 바로 ‘인식’입니다. 지금 사연자님께서는 여러 단계 중에서도 첫 단추를 잘 끼우셨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사연자님께서 놓여 있는 상황, 사연자님을 지치고 힘들게 하는 다양한 상황들이 어머니께서 사연자님께 강요했던 일들의 결과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을 인식’한다는 것은, ‘지금의 상황이 제대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한 자각’입니다. 즉,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먼저 변화의 시작점은 다른 그 누군가가 아닌, 사연자님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이제는 더 이상 나약한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물리적인 나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독립해야 하는 성인이 되셨습니다. 성인이 된 사연자님께서는 이제는 더 이상 어머니의 부당한 요구나 명령에, 지나친 통제나 간섭을 무조건 수긍하거나 복종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어머니가 요구하거나 권하거나 제안하는 것은 당신의 입장이고, 사연자님께서 승낙하거나 거절하거나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은 나의 입장입니다. 사연자님은 어머니와는 다른 욕구, 다른 취향, 다른 생각과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엄연히 다른 사람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이 부분에 대한 뼈저린 성찰이 필요합니다. 물론 쉽게 바뀌기는 힘들 것입니다. 아예 바뀌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이제부터라도 사연자님께서는 어머니께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셔야 합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일단 어머니를 정면으로 마주하실 시간을 요청하셨으면 합니다. 일단 어머니께 사연자님의 말을 중간에 끓거나 자리를 피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 달라는 메시지를 전하세요.

그리고 사연자님께서 지금껏 성장하면서 자신의 양육과 관련해 부모님에 대해 들었던 생각과 감정, 그동안 어머니의 이런 태도 때문에 사연자님께서 얼마나 힘드셨는지, 사연자님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쳐 왔는지, 지금까지 사연자님께서 느끼고 이해한 그대로 어머니께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또 앞으로 부모님께 원하는 사항이나 만약,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하실 건지도 단호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셨으면 해요. 그러나 이때는 가능한 한 감정은 절제하고, 공격적이지 않으면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태도를 취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이러한 말들을 한꺼번에 전달하기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어머니께 드리고 싶은 말들을 노트에 한 번 정리해 보거나, 편지 형식으로 정리해서 어머니와의 대화 후에 전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물론, 사연자님의 이러한 시도가 부모님께는 받아들이기 힘들거나 심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이유는 부모님께 고통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연자님 스스로를 돕고 바로 서기 위해서입니다. 사연자님의 인생 앞에 놓인 과제와 상처, 아픔 등을 스스로가 치유하고 책임져야 하듯, 어머니께서 직면해야 하는 것들은 그분의 몫으로 남겨 두어야 합니다. 사연자님께서 정당한 자기 권리와 주장을 펼치는 행위로 인해 부모님께서 힘들어하신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지실 필요는 없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어머니의 사랑과 지금껏 길러 주신 데 대한 노고와 감사함까지 외면하시라는 것은 아니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해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감사함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어머니와 대화하실 때도 명확히 밝혀 주시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그와는 별개로, 사연자님 고유의 권리와 자유, 경계가 있고, 어머니께도 사연자님에 대한 존중을 정당하게 요구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제는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이 사연자님께서 드시고 싶을 때 드시고, 친구를 만나고 싶을 때 만나셨으면 합니다. 성인이 되어 가는 과정은 자신의 욕구를 잘 알고, 그 욕구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욕구를 충족하면서 만족감을 얻고, 그러면서 자기주장을 하고, 자기 권리를 찾고, 침해당한 권한에 대해서는 그것이 부모일지라도 차차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종국에는 부모로부터의 심리적, 경제적 독립이 목표이기도 하고요.

학교 상담도 다시 재개하셔서 상담가와 함께 자신의 내면을 좀 더 깊게 탐색하면서 억압된 감정에 대해서도 살펴보시고, 자기주장이나 자기표현을 하는 훈련을 하는 데도 도움을 받으셨으면 합니다. 이러한 시도와 노력을 통해 점차 내면의 힘을 기르고, 주체성을 길러 나가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성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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