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처투성이였던 그 시절의 나에게

우리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1)

정신의학신문|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여기 두 명의 청년이 있습니다. 첫번째 청년은 화목한 집에서 관대한 부모님께 사랑받으며 자랐죠. 이 청년의 부모님은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너는 소중한 사람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청년이 뭔가 잘못한 일이 있었을 때도 꾸중을 할지언정 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을만한 존재라는 점을 계속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었죠. 반면에, 다른 두번째 청년은 불우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의 실패와 불행한 인생을 어린 청년의 탓으로 돌리며 ’너 때문에‘ 내 인생이 그렇게 됐다고 비난했고, 청년의 어머니는 남편을 못견디고 집을 나간지 오래였죠. 청년이 뭔가 잘못하면 주먹으로 구타하기 일쑤였고, 마치 청년이 아무 사랑도 받을 가치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다뤘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화목한 집에서 자란 청년은 긍정적이고 진취적으로 자랐습니다. 약간의 실패에도 그다지 좌절하지 않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여 결국 성공하곤 했죠. 청년은 자신이 귀한 사람이란 것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당당한 청년을 아무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습니다.


불우한 집에서 자란 청년도 어느정도 인생의 성과를 이뤘습니다. 힘들었지만, 좋은 대학에 가서 취직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청년은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이 아무리 성공하던 결국 그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리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다른 사람의 비난에 아주 예민했고, 툭하면 분노하고 싸우고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으면 절망에 빠져 술을 먹기 일쑤였습니다. 왜냐하면 청년은 정말로 자기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불행으로 가는 복선이라고 믿었던 거죠.


만일 이 두 청년이 서로의 집에서 태어났으면 두 청년의 자신에 대한 인식은 달라졌을까요? 그러니까 불우한 집안의 청년이 화목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성인기 때 그 청년의 자기인식은 첫 번째 청년처럼 변했을까요? 전 아마 그럴 거라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정신은 본질적으로 그가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것일까요? 네, 맞습니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는요. 우리는 우리의 마음대로 맛집을 찾아갈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러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을 때,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자유롭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회사에 나가 과장님으로부터 업무에 대한 질책을 들을 때, 결혼을 약속한 애인을 집에서 반대할 때 우리는 어디까지 내 의지대로 내 뜻을 밀어붙일 수가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째서 이 글을 접하게 되었을까요? 아마 어떤 분은 인터넷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찾아오셨을 수도 있고, 아니면 친구의 추천, 앞 사람이 남긴 댓글, 후기 등을 통해서 찾아왔을 수도 있죠. 여러분은 자신이 선택했다고 믿었겠지만, 여러분을 여기까지 이끈 것은 수 많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인간의 정신은 ‘타인과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정신분석이론에서 말하는 ‘대상관계’라는 이론이죠. 우리는 다른 사람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의 일부를 내 마음에 담아서 그 관계와 상호작용을 하고 그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패턴화가 되는데 그게 바로 ‘나’라는 거죠. 우리가 좋은 사람을 만나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사랑을 주고 받으면, 우리의 정신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내면화해서 변해갑니다. 반대로 나쁘고 가혹한 사람을 만나 학대받으면 우리의 정신은 우리가 학대를 받을만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돼죠. 사람과의 만남이 내 정신을 바꿔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죠. 우리의 마음의 일부는 아예 타인에 의해서 정의되어버립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할 때 ”아싸“와 ”인싸“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죠? 생각해보면 약간 웃긴 얘기죠. 나는 똑같은 나인데, 몇 명의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냐에 따라서 내가 누구인지 정의되니까 말이죠. 그리고 우리는 점점 다른 사람이 나를 정의한대로, 그 사람들이 기대하는 내가 되어가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인생에 있어서 누구와 관계하고 누구를 떠날 것인가?, 누구의 영향을 받을 것이고, 누구의 영향을 차단할 것인가? 는 결국 내가 누구인가? 어떻게 살것인가?를 정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나를 형성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2)에서 계속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권 순 재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분당서울대병원 전임의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치매전문센터장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글입니다. 가슴을 뛰게 하네요. "
    "말씀처럼 가까운 데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늘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권순재 전문의의 대표칼럼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