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처투성이였던 그 시절의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3) 절대적으로 나쁜 관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2)

정신의학신문|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 사람에게 독이 되는 영향을 미치는 관계. 한 사람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그 사람의 정신을 병들게 만들고, 다른 사람의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관계. 나의 불행의 원인이 되는 이 독성관계를 알아차리고 여기서 떠나거나, 이 관계의 영향력을 벗어나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제가 이 강의를 개설한 목적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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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계는 다음 두 가지 특징 때문에 알아차리기 힘듭니다.

첫 번째 특징, 독이 되는 관계는 가족이나 동료, 반 친구, 회사의 윗사람 등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번에 예를 든 제 환자 에피소드에 나온 환자 분의 증상의 원인. 즉 과장이 대단한 범죄 성향을 가진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였냐 물어본다면, 전혀 아닙니다. 이 사람은 겉보기에도 전혀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고 주변의 평판도 좋은 사람입니다. 실제로 친절했습니다. 오히려 평판이 나쁜 것은 제 환자 분이었죠. 이 둘이 회사에서 상관이나 부하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과장은 제 환자 분에게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거예요. 

어떤 사람이 독으로 가득 찬 늪에 들어간다면 우리는 보통 깜짝 놀라면서, 설령 그 사람을 좋아하건 아니건 간에 그 사람을 말리고 꺼내려고 할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그 독이 그 사람에게만 영향을 주는 독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주변 그 누구도 그 사람을 구하려 하지 않을뿐더러 그 사람이 그 안에서 고통스러워 해도 저 사람이 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이것이 독성관계 안에 있는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관계의 외부에서는 둘 사이의 이 병적인 관계가 보이지 않고, 그러다 보니 공감하기도 힘들거든요.

또 그러다 보니 독성관계 안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은 문제의 원인을 본인조차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다른 사람은 들어가도 아무 문제가 없는 늪이 자신에게만 독으로 작용한다면, 보통은 늪이 아니라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될 거예요. 그러다 보니 고통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힘듭니다.

 

두 번째 특징, 독성관계는 다른 정상적인 관계와 일부 특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마치 정상적인 관계처럼 자신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특징은 가족이나 군대처럼, 불가항력적으로 내가 소속되어 있고 쉽게 관계를 끊을 수도 없는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한마디로 나쁜 관계 특유의 폭력적이고 병적인 특징을 다른 관계에서도 그렇다며 설득하는 거죠. 예를 들면, 알코올 중독으로 폭력과 폭언을 하며 자식의 정신에 치유되지 못한 아픔을 준 아버지는 항상 원래 ‘이 정도도 안 하는 아버지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자신을 합리화하고, 그 합리화를 자식에게 강요합니다. 군대도 마찬가지죠. 군대에서 병사들끼리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가혹행위를 군기라는 정상적인 행위 속에 숨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신이 독성관계 안에 있어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혼란스러워하게 됩니다. ‘이거 다른 사람도 다 이렇게 사는데 나만 이렇게 힘들어 하나?’ 라고 생각하거나 심한 경우는 아예 의문을 제기하는 시도 자체를 포기합니다. 우리는 종종 그것을 적응이라고 착각하곤 하죠. 부당함이 당연한 것으로 탈바꿈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실질적으로는 세뇌된 것에 가깝습니다.

 

한 가지 두려운 사실이 있습니다. 어쩌면 독이 되는 관계는 지금 여러분의 주변에 있을 수도 있고, 또는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여러분의 일부가 되어 여러분의 인생을 힘들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혼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우리 주변의 독성관계와 우리의 일부가 된 독성 관계의 영향을 알아차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개 대부분의 관계에서 우리의 마음과 욕구는 타인과 소통하면서 선명해집니다. 하지만 독성관계는 우리가 혼자 있을 때보다도 오히려 훨씬 더 우리의 마음을 인식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모든 환경과 감정에 적응하는 존재들이지만, 이러한 관계에서만큼은 적응해서는 안 됩니다.

 

결코 적응해서는 안 될 독성 관계. 다음 시간에는 독성관계가 한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바꾸어 놓고, 어떻게 한 사람을 불행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4) 독이 되는 관계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들에서 계속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권순재 원장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분당서울대병원 전임의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치매전문센터장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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