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처투성이였던 그 시절의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2) 정신의 관성, 우리는 하던 대로 하고 싶어한다. -첫 번째 불행

 정신의학신문|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무아지경이라는 말을 알고 계십니까? 직역하자면 ‘나를 잊은 경지’를 의미하죠. 어떤 숙련된 스포츠 선수라던지 기술의 달인들이 고도로 집중된 상태에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인간의 한계를 넘는 퍼포먼스를 보이는 걸 의미합니다. 야구선수가 시속 150km로 날아오는 공을 배트로 칠 때 야구선수의 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숙련된 야구선수게만 마치 영화의 슬로우 모션처럼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서 공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자신의 팔과 허리의 각도를 맞춰서 재빨리 올바른 근육에 적당한 힘을 주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그는 홈런을 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진료실에 방문한 전직 프로야구선수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시속 100km를 훨씬 넘게 날아오는 공을 보고 칠 수 있었느냐고 말이지요. 그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막상 자신도 그 순간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매일 수 천번 수 만번 배트를 휘두르다보면 시합 때 자신이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배트가 공에 닿아있다고 말입니다. 반대로 공을 치기 전에 치는 과정을 너무 의식하는 경우에는 결코 공을 칠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영어에도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가 있습니다. 영어에서는 이런 상태를 ‘Zone에 들어갔다.’라고 합니다. 오랜 경험과 습관으로 형성된 기술이 나의 의식을 거치지 않고 자동적으로 나의 몸을 컨트롤하는 경지를 의미해요. 이 상태에서 운동선수들은 배팅을 어떻게 하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때로는 배트나 라켓이 자신의 몸의 일부가 되어 움직이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사실은 이것은 숙련된 달인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면에서 우리의 반응은 존이나 무아지경처럼 사실 자동화된 반응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아침 운전을 했을 때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차에 꽂고 돌리고, 악셀을 밟고... 이 모든 과정을 의식적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모든 과정은 의식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저도 예전에 근무하는 병원을 옮겼는데도 불구하고 출근하여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퇴직하여 예전 근무지로 가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무아지경입니다. 너무나 숙련되어 우리의 의식을 거치지 않고 일어나는 일이지요.


당신의 대인관계 패턴이야말로 무아지경과 Zone의 결정체입니다. 회사에서 사장님을 마주쳤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합니다. 후배는 우리를 보면 본능적으로 고개가 살짝 내려가고 우리의 어깨는 당당하게 올라갑니다. 사랑스러운 아기를 보면 입꼬리가 올라가지요. 뿐만 아니라 우리가 건내는 인사의 형태, 의견이 다를 때 내 의견을 관철할 것인지, 아니면 한 발 양보할 것인지. 이건 그때그때 판단해서 내린 결과는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익숙하고도 중요한 누군가와 대인관계를 할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그야말로 무의식적으로 움직입니다. 평생을 거쳐 숙달된 대로, 익숙한 대로 늘 하던대로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가만히 있으면 나를 해칠지도 모르는 그런 관계 속에서 머물게 되기도 합니다. 관계의 상당 부분은 사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내가 내리는 선택은 대부분 자신의 선택이 아닙니다. 특정한관계, 특정한 집단 안에서 나보다 재량권이나 영향력이 더 많은 누군가와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우리의 몸은 익숙한 패턴대로 자동적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우리의 의지가 우리를 움직이는 것 아니라 관계가 우리를 움직이는 것이지요. 얼핏 보면 우리의 선택 같지만, 선택과는 거리가 멀죠. 우리의 정신의 이러한 관성적인 면은 우리의 삶에서 두 가지 불행을 만들어냅니다.

 

freepik
freepik

 

첫 번째 불행, 나에게 독이 되는 관계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합니다.
종종 어떤 학대나 괴롭힘 안에서 속수무책으로 괴롭힘을 당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안타까운 뉴스들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혀를 차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유.. 쯧쯧.. 차라리 죽을 용기로 한 번 들이받아보기나 하지. 죽는 것보다 낫잖아?”


또는


“아니, 바보야? 저렇게 고통스러우면 회사를 그만두던지. 누가 억지로 다니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막상 그 상황 안에 있으면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방금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어떤 관계나 상황에 오랫동안 머물수록 우리의 선택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우리가 옳은지 그른지 따져보고, 손익을 따져보는 전두엽피질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야구 선수가 백번 천번 반복한 동작을 자동적으로 실행하듯이, 아주 익숙하게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피질하영역의 영향을 받게 되어버립니다.


만약, 정말로 고통스러운 대인관계가 있는데 그 관계의 패턴에 너무 익숙해져서 습관적으로 그 대인관계를 반복할 때 우리가 고통을 느끼고 생각하는 전두엽과 전두대상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의 뇌는 스스로를 마비시킵니다. 반복된 스트레스에 지친 뇌가 최후의 수단으로 ‘기권’을 선택하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흐름에 반대하지 못하고, 모든 감정을 차단한 채 그저 하루하루 버텨내기만 합니다. 마치 번아웃에 걸린 회사원이 머리로는 아무 생각도 못하면서 발걸음만은 회사로 향하듯이 그렇게 고통 속으로 걸어가버리는 것이지요.


2) 정신의 관성, 우리는 하던 대로 하고 싶어한다. -두 번째 불행에서 계속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권 순 재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분당서울대병원 전임의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치매전문센터장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글입니다. 가슴을 뛰게 하네요. "
    "말씀처럼 가까운 데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늘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권순재 전문의의 대표칼럼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