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성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8세, 4세 남매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입니다. 요즘 제가 미쳐 가는 것 같아요…. 육아도 힘들고, 직장생활도 너무 힘들어요… 사람 상대하는 것도 너무 힘들고요.

그러다 보니 모든 화가 아이들에게 향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라 그럴 수 있다 생각해야 하는데, 작은 실수에도 제가 예민해져서 화를 내고 있습니다. 별것 아닌데도 화를 내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 자괴감도 들고요. 일 년 365일 하루도 안 빠지고 만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아요. 참아야지 하면서도 아이가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면 미쳐 버릴 것 같아요.

어제 저녁에도 사소한 걸로 아이에게 화내고 소리를 지르니까 신랑도 화가 났는지 냉랭하네요. 아침에도 별일 아닌 일로 아이에게 폭언과 물건을 던진 일이 있었는데… 제가 이상한 것 맞죠….

때때로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너무 싫다는 소리도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또 할머니 집에 가서 살라는 말도 쉽게 말하는 제 모습을 보면 정신에 문제가 많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하죠….

아이들을 이렇게 키우면 나중에 커서 엇나갈까 그것도 무섭고… 안 좋은 생각도 많이 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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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올려주신 사연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현재 여덟 살과 네 살 된 두 아이를 양육하시면서 일까지 하고 계신 상황이 많이 얼마나 버겁고 힘드실까 싶습니다. 

‘워킹맘’이라는 말에는 참으로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예쁘고 토끼 같은 내 자식이지만, 어린아이들을 케어하며 성장과 발달을 책임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 책임감과 현실적 무게만으로도 때로는 어깨가 짓눌리는 듯한 느낌도 받습니다. 또 엄마의 손길과 마음을 필요로 하는 일들은 어쩜 그리도 많을까요. 셀 수가 없습니다. 

직장에서는 또 어떤가요. 해야 할 업무는 끝도 없이 쌓여 있는데, 하루하루 피로감도 함께 쌓여만 갑니다. 하루도 마음 편히 쉬기 힘든 워킹맘의 몸과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업무에 집중하기도 힘듭니다. 아이들이 아프기라도 한 날에는 몸은 직장에 와 있지만, 아이들 걱정으로 마음은 아이들 곁에 가 있습니다. 엄마의 마음도 함께 아프기만 합니다.   

일도, 육아도, 살림도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영역인데, 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있는 분들이 바로 ‘워킹맘’입니다. 이 글을 빌려 사연자님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워킹맘들에게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많은 워킹맘들이 그러하듯 사연자님께서도 현재 육아와 직장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상당히 누적된 상태이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누구든 자신이 가용 가능한 신체적 및 정신적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한계를 한참이나 초과하는 일상이 매일매일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과도한 피로감과 스트레스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번아웃이 올 가능성이 큽니다.

쉼도 없이 계속해서 내달리기만 하는 전차가 언젠가는 탈선하거나 멈춰 설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에도 육아나 직장 일만으로도 해야 할 일은 많고 너무 바쁜 지금의 일상에서 사연자님 스스로를 돌볼 시간은 마치 사치처럼 느껴지실 겁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사연자님 자신을 돌보고 또 잠깐이라도 자주자주 휴식을 취하시는 것이 사연자님뿐만 아니라 자녀분들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스트레스와 피로, 긴장으로 가득할 때는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감정을 조절하는 게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연자님의 현재 상황과 상태를 자녀분들이 이해하기에는 아직 너무도 어린 나이입니다. 자녀분들의 입장에서는 매일 화내는 엄마의 모습이 그저 무섭고 또 두려울 수 있습니다. 이런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녀분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나는 데 어려움이 생길 가능성도 커집니다.

안 그래도 마음이 힘드실 사연자님께 또 다른 마음의 짐을 안겨 드리는 것만 같아 조심스럽지만, 아이들이 신체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발달하는 시기에 건강한 자존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부모의 역할이 막중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정서적 지지와 따뜻한 보살핌, 함께하는 양질의 시간과 격려 같은 것들을 일관되게 제공해야 합니다. 반면에 해서는 안 될 것들로는 신체적 폭력과 언어폭력을 포함한 신체적 · 정서적 학대에 해당하는 것들입니다. 여기에는 아이들이 공포심을 느낄 만한 위협을 가하는 행동과 말 등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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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진료실을 찾는 환자 분들이나 게시판에 올라온 수많은 사연들의 내용만 보더라도, 어릴 적 가정이나 부모님으로부터 폭언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기억과 아픔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후에도 잘 잊히지 않아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픈 경험이나 기억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분들의 인생에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시중에는 좋은 육아 서적들과 ‘자존감’을 주제로 하는 책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곁에 두고 부모로서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혼란스러워질 때마다 한 번씩 읽으시면서 다시 한번 자녀들을 어떻게 대하고, 마음을 나눠야 할지 마음을 다잡으셨으면 합니다. 

어쩌면 사연자님께서도 어렸을 적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하셨거나 가족들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았던 경험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상처가 자녀를 키우면서 자신도 모르게 건드려지고 불쑥불쑥 고개를 들어 감정을 폭발하게 하는 등 육아가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사연자님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실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육아를 하면서 자신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감정이 되살아나고 이것이 자녀를 키우는 데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현실에서, 사연자님께도 제안 드리는 바입니다. 

지금 사연자님께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적당한 휴식과 제때에 적절한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긴장을 이완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 과정에서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또는 시간적으로든 주변에서 도움을 꼭 받으셨으면 합니다. 남편분이나 부모님 혹은 형제들과 같은 가족분들게 도움을 청하실 수도 있고, 그게 여의치 않은 상황이시라면 이웃이나 지역센터, 육아 도우미나 가사 도우미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러 채널을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확보한 사연자님의 개인 시간을 통해 조금이나마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하고, 좋은 에너지를 충전해 나가는 데 주력하셨으면 합니다. 이때 휴식을 취하거나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은 사연자님께 가장 적절한 방식을 고민해 보시고 적용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카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거나 마사지숍에서 긴장된 근육과 피로를 푸시거나 운동이나 산책, 독서 등 그 무엇이든 사연자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실 것을 추천 드립니다.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소에도 방문하시어 사연자님께서 현재 느끼시는 심적 어려움이나 육아, 자녀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전문가 분께 상담을 받아 보실 것도 권유 드립니다. 사연자님의 마음을 다스리시고, 또 자녀분들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달리해야 할지 변화시켜 나가는 데 많은 도움을 받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또 만약에 사연자님의 마음속에만 꽁꽁 숨겨 둔 아픈 기억과 상처받은 마음이 있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속 시원하게 털어놓으시고 마음의 평안과 통찰을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연자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자녀분들을 향한 폭언이나 물건을 던지는 것같이 위협적인 행동은 자녀분들에게 상처를 주는, 두 번 다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임을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연자님의 마음이나 의지와는 달리 또다시 이런 행동을 하시거나 잘 조절되지 않는다면, 하루빨리 전문가를 찾으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더불어 이미 지나간 시간과 일들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간 자녀분들에게 감정적으로 폭발하거나 상처를 주었던 말들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의 마음을 전하셨으면 합니다. 그동안 자녀분들에게 빈번히 화를 내거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말들은 사연자님의 진심이 아닐뿐더러 아이들의 잘못 때문이라기보다 사연자님의 감정 조절이 미숙해서 일어났던 일임을 잘 설명해 주세요. 아직 네 살밖에 안 된 아이라도 엄마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마음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또 그동안 자녀분들에게 부정적인 말들이나 행동을 많이 보여 주셨다면, 앞으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칭찬과 격려, 애정 표현 등 긍정적인 상호작용과 정서적 지지를 제공해 주셔야만 합니다. 

어린 자녀들이 성장하듯, 부모도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습니다. 또 아직 자녀분들이 어린 만큼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자녀분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만 꼭 붙들고, 우선은 지친 사연자님 스스로를 돌보고 서서히 에너지를 충전해 나가면서 다시금 그 에너지를 자녀분들에게도 나눠 주세요. 그렇게 사연자님과 사연자님의 가정에 조금씩 긍정의 에너지와 행복한 기운이 채워지리라 믿으며 응원하겠습니다.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성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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