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성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8세, 5세 남자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데 너무 힘듭니다. 언제부터가 시작인지 이젠 기억도 안 나고, 신랑이랑 첫째 아이만 보면 너무 짜증나고 답답합니다. 이 둘에게는 늘 차가운 말투입니다. 얼굴만 봐도 너무 싫어요.

그런데 둘째 아이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아이에게 화낼 때도 있지만, 돌아서면 귀엽습니다. 그런데 신랑이랑 첫째만 보면 유독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이런 건 어디서 어찌 고쳐야 할까요? 이 두 사람과는 말도 하기 싫습니다. 화병인지 우울증인지 두통도 늘 있고, 특히 하루 종일 명치 부분이 너무 답답합니다. 명치부터 목까지 답답하고, 오한도 한 번씩 옵니다. 귓속도 아프고 눈물도 줄줄 나고요. 전에는 화가 날 때면 가슴이 답답했는데 요즘엔 몇 주째 계속 이런 상태네요.

첫째 아이 때문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호출도 몇 번 받았어요. 쟤는 왜 저런 건지 도무지 모르겠고, 너무 힘듭니다. 아이의 문제점은 너무 많아 다 적기도 힘들 정도네요. 아이는 풀배터리검사를 받아 볼까 하고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어느 순간 마음도, 따뜻한 손길도 안 주니 아이가 더 그런 거겠지만, 아이가 하는 행동을 보면 정말 미워져서 이 지경까지 온 듯합니다. 한 번 성질이 나면 이제는 흥분 정도가 심해지는 것 같아요. 애랑 한 번 실랑이 하면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머리가 아파요.

저는 신경과를 가야 하나요? 정신건강의학과를 가야 하나요? 지역보건소에서 하는 센터를 가도 될까요? 전 약물이 필요한 걸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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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께서 올려주신 사연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두 아이의 남아를 육아 중에 있으신 것 같습니다. 한창 자기 의견과 생각이 자라날 시기이고, 활동성도 큰 남자아이들이다 보니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욱이 첫째 아이의 경우, 담임선생님의 호출을 받을 만큼 학급에서도 문제 행동을 보이는 상황이지만 사연자님께서는 그런 아이에 대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뿐더러 어디서부터 풀어 나가야 할지 알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이 크신 듯합니다. 

사연자님께서 남편분이나 첫째 아이에 대한 감정이 유독 불편하고, 미운 마음이 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두 사람과 그동안 어떻게 상호작용해 오셨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서, 또 직접 뵙지 않고 도움이 되는 말씀을 드리기에는 다소 제한적인 답변이 될 수 있음을 미리 양해 부탁 드립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거나 소통하는 방식, 특정한 감정을 형성하는 데는 다양한 요인들이 역동적으로 작용하면서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물론 ‘내’가 있습니다. 관계란 일방향이 아니라, 항상 쌍방향적으로 맺어지는 것이기 때문인데요, 사연자님의 개인적인 성격적 특성이나, 기질, 성향이나 대인관계적 경험과 관계를 맺는 패턴, 성장 과정이 등에 대해 먼저 깊은 이해와 통찰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나’와 ‘상대방’, 그리고 관계에 대한 특성과 역동, 패턴 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관계의 현 상황이나 핵심적인 갈등 및 개선해 나갈 방향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언제부터인지 남편분이나 첫째 아이만 보면 너무 짜증이 나고 답답해지셨다고 하셨습니다. 잘 기억나지 않으시겠지만, 기억을 찬찬히 떠올려 보시면서 그 지점이 언제쯤인지, 그리고 왜 그런 마음이 드는 건지 조금은 가닥이 잡힐 수도 있을 텐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곰곰이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누군가에 대해 미운 감정이 든다는 것은 상대방의 행동 때문이든 혹은 나의 현재 스트레스 수준이나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과 같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미움’이란 감정은 왜 생겨나는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밉다’라는 감정은 정확히 어떤 상태일까요? 사전적인 의미로는 ‘모양, 생김새, 행동거지 따위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눈에 거슬리는 느낌’을 뜻합니다. 사연자님께서는 남편이나 첫째 아이의 어떤 모양이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고, 눈에 거슬리셨을까요? 그 행동이나 상황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상대방의 행동이 문제였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상태나 관점이 왜곡되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가족이란 관계는 서로가 굉장히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많이 다릅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성인의 위치에서 애정과 신뢰와 존중과 인생의 비전 등을 삶의 주요하고도 많은 부분을 나누고 협력하게 됩니다. 이때 서로의 가치관이나 입장 차가 클수록, 또는 사소한 일에도 사사건건 부딪친다거나 서로의 욕구와 바람은 채워 주지 않고, 나의 입장과 감정만 알아달라고 주장하다 보면 타협점을 찾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렇게 점점 소통이 안 되고, 불통이 되어 갈 때 우리는 배우자에게 미운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사연자님께서 지금껏 남편분과 어떻게 소통해 오셨는지,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 어떻게 풀어 나가셨는지, 앞으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싶으신지 사연자님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신 후 남편분과 진실하게 대화해 보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어떨까요? 첫째 아이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여덟 살의 남자아이라고 소개해 주셨습니다. 아직 부모님의 사랑과 손길이 많이 필요한 어린아이일 텐데요, 그런 아이에게 언제부터인지 ‘늘 차가운 말투’나 ‘따뜻한 손길’을 안 주셨다고 말씀해 주신 데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어머님께서는 자녀를 가슴속 깊이 사랑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정성껏 최선을 다해 양육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만, 현재의 사연자님께서 스트레스 수준도 높으시고, 분노를 조절하기 힘들 만큼 마음이 힘드신 상태이기에 현실에서 잘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신 것 같습니다.

아이는 이제 막 자라나는 작은 나무와도 같습니다. 어린 나무가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따뜻한 햇살과 적당한 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광합성 작용을 잘해야 양분을 만들면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성장 단계상 아직 미성숙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렇듯 마음도, 몸도 한창 성장하는 시기에 필요한 것은, 부모님의 따뜻하고 관심 어린 눈빛과 지지적인 말들, 믿고 격려해 주는 마음가짐, 아이의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태도 등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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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배터리검사를 알아볼지 생각 중이라고 하셨는데요, 이번 기회를 통해 아이를 좀 더 이해하고, 아이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돕는 시간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역시 내면의 상처나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문제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문제행동에만 초점을 맞추지 마시고,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서 아이가 문제행동을 보이는 원인을 파악하고, 꾸준히 상담이나 치료를 받는다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연자님께서 현재 겪고 계신 두통이나 명치 부분의 답답함과 같은 신체적인 어려움과 관련해서는 먼저 내과적인 진료를 받아 보시고 건강상 이상이 없으신지 확인해 보셨으면 합니다. 만약 신체적인 이상이 없으시다면, 심리적인 문제로 인한 신체화 증상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말씀해 주신 것처럼 과도한 스트레스나 심리적인 불편감이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을 품고 있는다는 것은, 사실 나 자신에게도 마음이 힘든 일입니다. 또 어머니나 아내 분의 감정을 누구보다 빠르게 캐치할 수 있는 가족들의 경우에도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이 제시한 ‘투사적 동일시’라는 개념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이 품은 판타지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고, 투사한 판타지 속의 모습을 상대방이 잘 따라와 주면 친밀한 관계가 구축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투사적 동일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투사적 동일시는 다양한 관계 중에서도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투사적 동일시를 하는 마음 안에는 ‘내 뜻대로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친밀한 관계 사이에 투사적 동일시라는 기제가 작동할 때 서로의 판타지 위에 관계가 맺어지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할 시 관계가 실패했다거나 단절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좌절감이 엄습하기도 합니다. 

투사는 원래 프로이트가 제시한 개념으로, 자기 내면에서 용납할 수 없는 부정적인 평가를 외부에 투영하는 일종의 방어기제를 말합니다. 즉, 우리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이나 평가들이 타인에게 드리우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어린 시절부터 내면에 차곡차곡 억압된 감정이나 금기들이 현재의 주요한 관계에서 다시 작동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우리가 부모님과 같이 주요 양육자나 가족들과 관계를 맺은 방식이 무의식적으로 현재의 주요한 관계들 사이에서 재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연자님이나 배우자님의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맺은 애착 형태나 양육된 방식, 성장 과정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자신은 물론 배우자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거나 성찰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시다면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가의 도움을 받아 시도해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남편 분이나 첫째 아들이 유독 밉게 느껴지는 이유나 상황, 그렇게까지 감정이 쌓이신 부분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시고,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 조금씩 관계 개선을 시도해 보신다면 분명 미워하는 마음도 점차 옅어지시고, 사연자님께서 내적으로 힘드신 부분이나 불편감도 해소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사연자님 자신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하고,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찾아가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성찬 원장

이성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인하대학교병원 전공의
(전)수도군단 의무실장.아산정신병원.다사랑중앙병원 진료원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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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이 너무 좋아서 여러 번 읽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말씀은 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위안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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