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베트남 전쟁 특수부대 출신인 전직 군인 존 람보는 옛 동료를 찾아 시골 마을로 향한다. 그 곳에서 보게 된 것은 이미 고엽제 후유증으로 사망한 옛 동료였다. 실의에 차서 마을을 걸어다니던 도중 그를 수상한 인물로 오해한 지역 보안관들의 강압적인 취조를 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떠오른 전쟁 당시의 참상은 그의 정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극한의 상황에서 그는 세상과의 전쟁을 벌이고, 영화의 마지막, 전쟁은 이미 다 끝났다는 옛 상사의 설득에 그는 절규하며 말한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 아무것도! 난 승리 하나만 보고 그 짓을 했는데 정작 아무도 나를 이기지 못하게 했죠. 막 돌아왔을 때 공항에서 그들을 만났어요. 나에게 항의하고, 침뱉고, 살인자라 욕을 했죠! 내가 되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내가 있던 곳에 있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자기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20124월 군인화 및 군의장교 훈련을 마친 나는 배속지인 화천으로 향했다. 산 길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문명의 흔적은 멀어져갔고, 교과서에서만 접했던 38선을 넘었다. ‘사창리라는 아주 작은 마을에서 한숨을 돌리던 중 나는 이 마을이 세상의 가장 끝에 있는 마을과 같다고 생각했다. 나의 배속지인 15사단은 그 곳에서 차로 30분은 더 북쪽으로 올라간 곳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배속이 끝난 다음 비로소 나는 이보다도 더 북쪽으로 들어간 통문이라는 특수한 철책을 넘어 수 백명의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휴전선 GP에서 자신의 청춘을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31년 동안 그들의 희생으로 지금까지 삶을 누리던 내가 막상 그들을 그다지 고맙게 느끼지 않았다는 것도.

 

2023722일 집중 호우 피해지역인 경북 예천에서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고 채수근 상병의 영결식이 열렸다. 전투상황에서는 물론 전투 중이 아니더라도 군에서는 온갖 사고의 위험이 존재한다. 앗차 하는 사이에 상자에 깔려 손가락이 절단된 병사도 있었다. 목함지뢰를 밟아 발목을 영영 잃은 병사도 있었다. 격리된 환경에서 적응하지 못하거나 전우들의 괴롭힘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병사도 적지 않았다.

 

생명이나 신체를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 질병인 외상후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는 미국 남북전쟁 때 전쟁터의 군인에게서 나타났던 증상을 토대로 기술되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의 상당수는 전쟁 혹은 복무경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끔찍한 일이 지나간 이후에도 당시의 장면이 떠오르는 악몽과 같은 나날이 지속된다. 전쟁의 참상과 비슷한 일만 목격하거나 전해들어도 심한 고통이 나타나기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회피하려고 한다. 멍하니 넋을 잃다가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게 되고 온순했던 사람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분노를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우울증이나 불안증과 유사한 질환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의 정신은 지나치게 피폐하기에 그나마 정상적인 감정인 우울이나 불안이 자리잡을 공간조차 없다. 죽음과도 가까운 위기를 겪을 때 뇌의 일부는 그 주인을 보호하고자 기능을 정지한다. 우리가 생명의 위기를 느낄 때 순간적으로 감정성이 사라져 냉정해지는 것과 유사하다. 사실 냉정해진 게 아니라 얼어붙어 버린 것이다.

 

그 얼어붙은 정신은 끔찍한 상황이 끝나고 안전을 확신할 때에야 비로소 천천히 해동된다. 해동되었던 음식이 녹아내릴 때 팽창했던 수분이 다시 수축하면서 숨이 죽고, 곤죽이 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PTSD의 환자는 그 순간의 몇 배, 때로는 몇 십배나 되는 시간을 우울과 불안, 혼란과 분노가 점철된 채로 보내게 된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는 그 사건 전의 자신과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며,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현재와 미래가 안전할 것이라는 이전과 같은 긍정적인 느낌의 일부를 찾게 된다.

 

누군가는 그조차 되지 못해 글 첫머리에 있는 존 람보처럼 과거의 참상을 지금의 세상에서도 계속 재현하며 살아간다. 낙하산 훈련 중 사고로 눈 앞에서 동료를 잃고 술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부사관 출신 중년 남자를 보았다. 격리된 군 생활 동안 당한 학대로 20년간 쌓아온 스스로에 대한 자신과 믿음을 전부 잃고, 이를 힘들게 되찾고 있는 청년 또한 있었다. 아직도 그 속에 남겨져 버린 이들. 다시 찾지 못한 과거의 자신. 기억되지 못한 이들의 희생은 시체조차 남기지 않기에 기릴 기념비조차 없다.

 

자신의 재산을 써보지도 못하고 누군가에게 속아 의미 없이 강탈당한 사람이 이후의 인생에서 보람과 의욕을 되찾기는 쉽지 않다. 희생을 통해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를 국가와 사회에 바친 람보가 자신을 살인자로 부르는 사람들에게서 받았던 상처는 단지 자신의 능력이나 행위에 대한 가치가 폄하당했기에 생기는 자기애적 상처가 아니다. 원하지 않았던 전쟁에서 미래를 희생한 자가 그 자기희생의 의미마저 잃어버렸기에 생기는 존재의 상실에 가깝다. 람보는 너무나 쉽게 자신의 삶을 불길 속으로 내던져 버린다. 더 이상 지킬 것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웅의 희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관심과 보상과 명예이다. 실제로 수 백만 달러짜리 전차와 헬기를 몰던 람보에게는 전쟁이 끝난 후 주차장 관리요원자리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 누구도 자신의 고통의 의미를 잃고서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다. 자신의 전 인생을 희생한 결과가 단지 허무라면 그 누구도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라. 마치 아무리 뛰어도 전기 충격을 피하지 못하는 상자 속 개가 선택을 포기하고 주저앉아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영웅들을 미래가 없는 자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자신이 지켜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내가 알바냐는 모욕적인 무관심과 남자라면 국민이라면 당연히, 남자라면 당연히와 같은 폭력적인 당위의 강요이다. 이는 상처받은 이들에게 전 인생과 영혼을 빼앗는 말에 다름 아니다.

 

데려와야 한다. 전쟁이 있을 때에는 총을 쥐어주고 전쟁터로 보냈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는 그 곳에 남겨두어 허무한 폐허 속에 남겨져 있는 그들을, 세상 끝의 마지막 마을 너머 오지의 GP 통문에 남겨져버린 그들의 청춘을, 수해를 복구하다가 급류에 휩쓸려 차가운 강 밑바닥에 가라앉고, 월드컵의 함성 속에 잊혀지고, 그리고 정치에 모욕당해 함선과 함께 버려진 아직 건져내지 못한 전사자들의 명예를 말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그들의 과거로의 여행에 동행해야 한다. 그들이 미처 바라보지 못한 곳을 볼 수 있는 현명한 눈과 그들의 불안을 잠재워줄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 함께하며 그들의 불행의 순간을 다시 한번 함께 걸어가며 얼어붙어버린 그들의 시간을 흐르도록 해줘야 한다. 굳이 이유와 근거를 찾지 않아도 자신의 현재에 안전에 대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확신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우리가 모르는 매 순간 그들에게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사회와 국민들은 그들을 기억하고, 명예롭게 대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희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들의 군 생활에 자부심을 부여하고, 그럼으로써 그들이 입은 희생과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임무를 훌륭하게 마친 그들이 또 다시 우리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이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남겨진 그들을 구하여 다시 우리로 만들어야 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권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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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분당서울대병원 전임의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치매전문센터장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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