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아프게 하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이들의 슬프고도 기구한 사연이 우리의 마음을 울립니다. 갑작스러운 상실감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고스란히 마음의 상처가 됩니다. 트라우마(Trauma)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원래 트라우마는 외력으로 인해 생기는 상처를 뜻하지만, 특히 우리 마음에 남겨진 상처를 트라우마로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석가모니의 말처럼 '삶 자체가 고통'입니다.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존재와 같습니다. 살면서 마음에 생채기가 나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요. 삶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일인데도, 상처를 입을 당시의 우리는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가벼운 아픔은 어떻게든 견딜 수 있지만, 때로 더 큰 상처는 우리 마음에 오랜 여운을 남깁니다. 그런 경우에 마음의 상처는 우리 삶 전체에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아픈 기억을 너무 깊게 곱씹게 되거나, 과민해져 나답지 않은 말과 행동을 타인에게 쏟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나를 자극하는 모든 것이 싫어져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합니다. 툭하면 눈물이 새어 나오고, 뜬금없이 울음이 터지기도 합니다. 쉽게 회복되지 않는 상처라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로 발전하여 오랜 시간을 늪에서 허우적대게 됩니다.

 

 지금의 트라우마가 나를 잠깐 괴롭히다 지나갈지, 아니면 나를 오랫동안 괴롭힐 병적인 고통인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바로 기능입니다. 혼란, 좌절, 낙담과 같은 감정이 나를 압도해 내가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거나, 누군가를 대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거나, 직업적 영역에서 큰 흔들림이 오는 경우에는 전문가의 진료를 꼭 받아보아야 합니다. 힘든 시기에는 다른 이들의 조언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나보다는 나의 가족, 친구, 연인이 나의 객관적 변화를 더 잘 살필 수 있거든요.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한다면 불면과 불안, 우울감에 맞는 적절한 약물 처방과 더불어 트라우마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조언들을 얻게 될 겁니다. 트라우마의 고통이 길고 깊어질 경우에 여러 병들도 함께 자라납니다. 힘들어서 술에 과하게 의지하거나, 상실과 상처에서 오는 무력함과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우울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모든 병이 그렇지만, 트라우마로 인한 마음의 병 또한 치료의 골든 타임을 놓쳐선 안 됩니다. 그리고, 골든 타임은 증상을 자각한 지금 이 순간일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노력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일상으로의 복귀입니다. 트라우마의 초기에는 모든 것이 멈추겠지만, 얼마간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학생은 다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고, 직장인은 잠시 쉬었던 직장으로 다시 돌아갈 채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만나면 얼어붙습니다. 트라우마로 인한 무력함과 무기력함은 몸을 침대 밖을 움직이기 어렵게 합니다. 힘든 마음에 그냥 침대에 누워만 있고 싶죠. 하지만 활동이 줄어든 상태에서는 상실과 상처의 기억을 곱씹게만 됩니다. 이러한 반추는 그 기억과 감정, 생각에 젖어 들게 만듭니다. 어떻게든 외부의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즉, 트라우마에는 감정의 환기가 꼭 필요합니다.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면서 흐트러졌던 생활 리듬이 돌아오고, 상처로 인해 해진 삶이 조금씩 정돈될 겁니다.

 두 번째로,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할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트라우마가 회복되기 위해서 상처의 기억이 사라져야만 하는 게 아닙니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한 번 뇌에 저장된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꽤 지나 희미해질지라도, 때로 그 기억은 나를 불편케 하거나, 눈시울을 젖어들게 할 겁니다. 결국 트라우마에서 회복된다는 건, 상처의 기억에 대한 의미가 변하는 것입니다. 상처의 기억에 '너무 끔찍하고,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으며, 내 삶을 망가뜨렸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산다면 그 상처는 우리 삶을 압도합니다. 그 기억이 우리의 삶을 삼켜버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 '그 사건이 나를 괴롭게 했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여기서 내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 라는 의미로 바뀐다면 우리 삶은 다시 흘러갈 방향을 발견합니다. 의미가 변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받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이에게 충분히 마음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내 마음을 꺼내서 이야기할 때 그 기억에 붙은 감정들이 조금은 털어내어집니다. 그리고 상대의 따뜻한 조언과 나의 이야기가 뒤섞이면서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고, 나의 뇌에는 기억에 대한 새로운 의미가 저장이 됩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끄집어내어 이야기하고, 이야기가 뒤섞이는 과정이 반복되며 트라우마의 다른 면들을 발견하게 되죠,

 마음을 자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큰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의 뇌에서는 발화를 담당하는 브로카 영역(Broca’s area)의 활성도가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마음의 상처가 우리의 뇌를 얼어붙게 한 거죠.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은 입을 닫아버립니다. 심하면 실어증에 걸리는 이도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자주 들여다보며 이야기하는 과정이, 다시 우리의 뇌를 깨워 삶을 향하게 도울 겁니다. 

 세 번째로, 충분히 잘 먹고, 또 잘 자려 노력해야 합니다. 불규칙적인 수면이나 식사가 계속된다면 지친 몸이 회복할 수 없습니다. 내내 굶다가, 급하게 과식하고, 또 달고 매운 군것질로만 식사를 대체한다면 감정 기복이 더욱 심해지게 됩니다. 또, 뇌는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부정적 감정과 기억을 처리하고, 약화시킵니다. 트라우마로 인한 과잉 각성이 수면을 어렵게 한다면, 수면제 등을 처방받아 어느 정도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트라우마의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우리에게 고통이 찾아오는 순간이면 삶을 좀 더 멀리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사건과 기억만 들여다보면, 그 일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버리거든요. 항상 있던 곳이 아닌 다른 곳을 다녀보거나, 평소에는 해보지 않았던 낯선 일을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낯선 곳에서 자신의 삶을 멀리서, 좀 더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자신의 삶을 바라볼 때, 삶은 길고 넓으며, 늘 그랬듯 지금의 상처 또한 지나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트라우마가 마음에 남는다 해도 결국 그 상처는 조금씩 나의 삶의 중심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문을 열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문을 닫은 채로, 나에게 찾아온 상처를 절대로 허용하고, 용서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오히려 삶의 많은 에너지를 상처의 기억에 쏟게 하니까요. 때로 마음의 상처가 손님처럼 찾아들더라도 너무 애를 써서 다투지 않는다면, 그 상처와 아픔 또한 잠시 머물렀다 제 갈 길을 가게 될 겁니다. 우리의 삶은 항상 그렇듯 다시 흘러가게 될 테고요. 마음의 상처 또한 삶의 일부분으로 인정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생기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재현 ㅣ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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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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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이라 멀어서 못 가지만 여건이 되면 찾아가고픈 제 마음속의 주치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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