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짐’'이란 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입니다. 뛰어난 사람도 더 뛰어난 사람의 등장으로 잊혀져야 하고, 실수를 한 사람은 그 실수를 만회함으로써 이전 모습이 잊혀지며, 아픔이 있는 사람도 새로운 삶이 시작됨으로써 아픔이 잊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인과 그 가족들은 어떤 이들보다 더 잊혀짐이 간절합니다.

 전역하지 않은 이들은 전역 후 군인으로서의 삶이 과거가 되기를 희망할 것이며, 전역을 한 이들도 과거 군 생활의 영광 유무와는 무관하게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며 과거 군 생활은 과거에 머무르기를 희망합니다.

 물론 종종 잊혀짐을 두려워 하는 군인, 그리고 그 가족들도 존재합니다.

 군대에서 트라우마를 겪은 군인이나, 가족을 잃은 군 가족들은 유독 잊혀짐을 고통스럽게, 아프게 느끼곤 합니다. 그들의 몸과 마음에는 군대가 사라지지 않는 흉터로 남아있습니다. 이 흉터는 결코 치유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흉터가 가치있는 흉터임을 믿음으로써 고통이 완화될 수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고향과 나라,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얻게 된 흉터이기에 견디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잊혀짐은 그들에게 고통을 의미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임무 수행 중 사고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군인도, 고된 군생활로 우울을 겪는 군인도, 검은 강물에 휩쓸려 존재가 사라진 한 군인의 가족과 지인들 모두 그런 고통을 안고, 잊혀짐을 두려워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을 잊으려 노력합니다.

 이들의 이야기가 무겁고, 힘들고, 가끔씩은 나에게 부채감을 느끼게 하기에, 우리는 이들과 그 이야기를 잊으려 노력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우리 각자의 삶을 살아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다 보니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으려는 이들과 잊으려 하는 이들의 갈등은 휴전인 우리나라의 상황처럼 차갑게 대립해 왔습니다.

 군대와 군인에 관해 많은 찬사와 비판을 받는 미국에서는 이런 문제를 군 트라우마(PTSD) 센터를 통해 조율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체계와 시설을 갖추고 있기에 미군들의 아픔은 비교적 편히 위로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국군병원이 존재하지만, 정신적인 문제 보다는 신체적인 질환을 다루는데 집중되어 있으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인 상황입니다.

 그래서 군인과 그 가족을 위한 정신건강의학적 문제에 대한 지원은 주로 민간 자원을 통해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군 내부에서는 민간 병원으로 전원하는 시스템을 통해서, 군 외부에서는 자원봉사를 하는 형태로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경제적인 부담만큼은 군인이나 그 가족이 온전히 부담할 수밖에 없는 형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최근 대한정신건강재단과 우리금융미래재단이 함께 시작한 '우리히어로 트라우마 치유 지원사업'은 민간의 의료 자원을 활용하며 경제적인 지원도 함께 해주는,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 입니다. 기간과 참여 인원이 정해져 있는 한시적인 형태의 지원이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적절한 지원이 제공됐을 때 군인과 그 가족이 얼마나 아픔을 위로받을 수 있는지가 확인된다면, 더 큰 차원의 군인과 가족 지원 프로그램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합니다.

 잊혀지지 않으려 하는 군인과, 그들을 잊으려 하는 우리 모두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각각이 공존하기 위해, 상처받은 군인과 그 가족들이 새 삶으로 나아가기까지 누군가는 그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을 기억하는 방법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히어로 트라우마 치유 지원사업'이 그 고민을 성숙하게 잘 이끌어 나가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정원

 

'우리히어로' 트라우마 치유 지원사업 홈페이지 가기>> click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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