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군대에 가는 꿈

"아직도 군대에 입대하는 꿈을 꿔.“

군대를 다녀온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이미 지나간 일,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겠지만 당사자 처지에서 온전히 웃을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인생에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일 테니까요. 유난히 또렷한 기억 탓에 꿈을 꾸는 그 순간에는 몸 한쪽이 서늘해졌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훈련소에서 들었던 노래, 시쳇말로 입대곡을 평생 기억하기도 합니다. 2012년에 입대한 사람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2022년에 입대한 사람은 뉴진스의 하입보이를 들을 때마다 군대를 떠올립니다. 설령 군대에 가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입니다. 최악의 순간일수록 선명하게 기억되는 건 흔한 일이니까요.

 

트라우마에 갇힌 삶

이제 군 트라우마라는,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앞의 이야기를 조금 더 확장해 봅시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식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발짝 나아가 보는 것일 테니까요. 예컨대 이런 식의 상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군에 입대하는 꿈을 꾸었는데,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혹은 우연히 켠 라디오에서 입대곡이 흘러나올 때 갑자기 주변 풍경이 사라지고 제대했던 부대의 모습이 나타난다면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할 것입니다. 정신력이 웬만큼 강한 사람이라도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요, 군대에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의 삶이 이런 모습입니다.

 

언제인가 부대 선임의 폭력과 강요로 입속에 매미를 넣어야 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제대 후 여름철 매미가 울 때마다 폭력의 기억이 떠오르며 공황상태에 빠지곤 했습니다. 이사를 하려고도 했지만, 대한민국에 매미가 울지 않는 곳이 없어 그저 귀를 막고 가만히 있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제 환자 중 한 명은 상사에게 구타와 심리적 학대를 당했는데, 여전히 약을 먹지 않으면 반대편 집 창문에서 자신을 보며 미소짓는 가해자의 환상을 봅니다. 그들은 군대를 제대했지만, 여전히 끔찍한 군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8개월이 아닌 5, 10년 혹은 평생을 군 트라우마에 갇혀 그 시절 자신이 겪었던 군대의 현실에서 한 걸음도 벗어가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기억의 질환

대략 예상하실 수 있겠지만 PTSD는 기억의 질환입니다. 신체적 폭력, 심리적 모욕, 전쟁의 참사와 같은 고통스러운 기억은 도무지 머릿속에 자리 잡기가 힘듭니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당시 느꼈던 분노, 공포, 수치심 등의 강렬한 감정이 재현되고 그 즉시 극심한 고통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뇌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불완전한 선택을 합니다. 트라우마 기억을 마치 없었던 일인 양 무의식 속에 깊숙이 숨겨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억은 의식에 통합되지 못한 채 우리의 무의식을 유령처럼 맴돌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위태로운 고요일 뿐입니다. 어떤 촉발요인을 마주하게 되면 트라우마 기억은 순간적으로 의식 속에 떠오릅니다. 이때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의식에 통합되지 못했기 때문에, 즉 있어야 할 시간과 공간에 있지 않기 때문에, 마치 지금 여기에 실시간으로 나타나는 현실처럼 느껴집니다. 현실과 과거와 환상이 뒤죽박죽 엉키며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됩니다.

 

언제든 다시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오를 수 있기에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은 항상 각성되고 긴장되어 있습니다. 바깥의 모든 자극이 기억을 되살릴 수 있으므로 모든 경험을 회피하며 오로지 집 안에서만 생활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평생을 과거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반대로 현재의 삶은 점점 매말라가는 이유입니다.

 

트라우마 치유하기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이 상담실에 오면 정신과 의사는 먼저 그들의 심신을 안정화시키고 신뢰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도록 격려합니다. 여기에 치료자의 공감적인 이해, 진심 어린 존중이 더해지면서 서서히 회복이 시작됩니다. 진행되는 여러 차례의 면담을 통해 상담자는 감정과 인지, 신체 반응을 포함한 종합적인 기억을 세심히 살피며 트라우마의 실체를 파악하게 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과거의 트라우마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당시 나의 행동이 한편으로는 아쉬웠지만 다른 한편으로 적응적이었으며,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무엇보다 최악의 경험조차 내 삶을 무너트릴 수는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트라우마는 이야기로 치유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되찾고 타인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정에서 트라우마는 조금씩 힘을 잃습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자기 인생의 이야기 안으로 온전히 통합될 때 치유는 완결되고 비로소 현재의 삶이 다시 시작됩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들려질 수 있도록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트라우마를 말하는 것에 인색합니다. 특히나 군대에서의 트라우마는 더욱 그러한 경향이 짙습니다. 많은 사건은 은폐되고, 군인정신과 같은 의지력으로 마음을 다스리도록 강요받습니다. 남들 다 가는 군대에서 왜 너만 힘들어하느냐는 시선은 피해자의 죄책감과 수치심을 자극하여 더욱 숨어있게 만듭니다. 치료는 멀어지고 병증은 깊어집니다.

 

<우리 히어로 치유 지원 사업>은 그래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전문적인 치료과정을 통해 트라우마의 피해자는 회복의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주변에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정보를 나누고 그들이 용기 내 이야기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세요. 혹시 트라우마의 피해자라면 <우리 히어로 치유 지원 사업>을 통해 치료자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더 많은 이야기가 들려질수록 트라우마는 힘을 잃고 당신의 삶은 더욱 단단해질 것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희주 

 

'우리히어로' 트라우마 치유 지원사업 홈페이지 가기>> click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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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살피려는 노력을 하기, 그리고 작은 목표를 달성했을 때
    ‘의식적으로’ 목표에 대해 보상하기. 중요한 내용을 많이 배워갑니다!"
    "근육을 키운다는 느낌으로 조금씩 실천해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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