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적 시연의 반복이 뇌신경을 발달시킨다

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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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직 아이였을 때,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 기억이 있을 겁니다. 굳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지 않더라도 어린아이들은 많은 시간을 상상과 공상에 빠져 시간을 보냅니다. 남자아이라면 한 번쯤 악당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심판하고 광선검으로 날려 보낸 다음 마법 수트를 입고 구름 속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상상을 해 봤을 겁니다. 여자아이였다면 요정이 나타나 멋진 호박마차와 예쁜 유리 구두를 만들어 주고, 화려한 무도회장에서 운명의 왕자님을 만나게 되는 꿈을 꾸기도 했을 테고요.

너무 고전적이고 케케묵은 이야기라고요? 요즘도 아이들은 히어로물에 열광하고, 엘사 언니를 동경하며 공주풍 의상으로 치장하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합니다. 시대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아직 냉정한 현실의 벽에 부딪쳐 본 적 없는 동심이기에 가능한 상상 아닐까요.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차차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어릴 적 상상했던 무한한 가능성들이 실현되는 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풍부한 상상력과 많은 꿈을 지녔던 아이에서 한계를 인식하고 현실에 적응해 가는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죠. 그러면서 우리는 점점 꿈을 꾸거나 허무맹랑한 상상 따위에서 멀어지고 맙니다.

어느 날부턴가 나를 비롯한 많은 것들이, 사소하거나 시시콜콜한 것들이 아닌 핵심적인 정체성은 이제 변화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고정된 실체로 인식하는 것이죠. 그러나 오랫동안 고정되어 있고 불변한다고 믿어 왔던 인간의 뇌를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실로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꿈을 이룬 사람들의 뇌』를 집필한 저자이자, 신경과 뇌 분야를 연구하는 조 디스펜자Jeo Dispenza 박사는 사이클 경기 도중 차에 치여 척추가 여섯 군데나 부러지는 사고를 겪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그 어떤 수술도 없이 단 12주 만에 걸을 수 있게 되면서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디스펜자 박사가 사고를 당한 시기는 그가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 약물 없이 치료하는 척추지압요법) 클리닉을 개업한 지 6개월 정도 지난 무렵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클리닉에는 환자들이 줄을 이을 만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던 참이었죠.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던 그였기에, 이런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것이 마치 악몽과도 같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사고 직후 그의 주치의는 그에게 다발성척추압박골절이라는 진단명을 내렸고, 3일 안에 수술을 하지 않으면 다시는 걷지 못할 확률이 50%가 넘는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이런 경우에 수술을 거부한 환자는 미국에서는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지요.

디스펜자는 3일을 고심한 끝에 마침내 결정을 내렸습니다. 수술을 받지 않기로 한 것이죠. 사실 디스펜자는 척추와 관련해서는 전문의 못지않게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학부 때부터 카이로프랙틱을 공부하면서 매일 세 시간씩 요가를 해 왔고, 오랫동안 무술 수련을 해 왔지요. 평상시에 등을 움직일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던 그의 주치의의 생각과 달리, 그는 등뼈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유연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디스펜자는 인간의 몸과 정신에 잠재된 자연회복력을 믿고, 치유되기 위해 최선의 환경을 만들어 스스로 극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퇴원 후 완벽한 회복을 위해 철저히 계획을 세웠습니다. 음식은 생선만 조금씩 먹었고, 완전히 치료된 모습과 완벽해진 척추를 상상하며 하루 세 번 한 시간씩 자기최면과 명상을 반복했습니다. 또 약간 경사진 탁자를 제작해 매일 조금씩 침대에서 탁자로 몸을 돌려 척추를 자극했습니다. 6주가 지날 무렵부터 그는 척추에 가해지는 중력이 비교적 덜한 수영을 매일 하기 시작했고, 12주가 지나자 아령도 들 수 있을 만큼 그의 몸은 완벽히 회복되었습니다. 

물론 그의 이러한 자연회복이 같은 상황에 처한 모든 사람들에게 성공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듭니다. 어쩌면 이런 일들은 일생에 단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기적에 가까울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는 인간에게는 자연회복력이 분명 존재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오랫동안 하나의 완성품이자, 바꿀 수 없다고 믿었던 뇌의 능력을 우리의 노력으로 향상시킬 수 있으며, 언제든지 새로운 회로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이죠.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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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으로 실제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해 보는 행위를 ‘심적 시연(mental rehearsal)’이라고 합니다. 여러 연구 결과, 이러한 심적 시연만으로도 실제 뇌의 신경망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는데요, 신경망이란 뉴런이 상호 연결되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신경망은 새로운 경험이 어떻게 뇌를 바꿔 놓는지, 기억은 어떤 방식으로 저장되고, 무의식 또는 의식적인 행동은 어떻게 일어나는지 등을 설명해 주기도 합니다.

연구자들은 심적 시연이 뇌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 대상자를 네 개의 집단으로 나누어 5일 동안 피아노를 배우게 했습니다. 그중 그룹 1은 5일간 매일 두 시간씩 한 손으로 치는 곡을 연습했고, 그룹 2는 어떤 악보나 정해진 것 없이 매일 두 시간씩 마음대로 피아노를 쳤습니다. 그리고 그룹 3은 피아노는 전혀 연주하지 않고 그룹 1이 곡을 배우고 외우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배우도록 했습니다. 즉, 이들은 매일 두 시간씩 피아노를 치는 연습을 마음속으로 상상하기만 한 것이죠. 마지막으로 그룹 4는 대조군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5일간의 실험이 끝나고 연구자들은 경두개 자기자극술을 사용해 뇌의 변화를 알아보았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실제로 피아노를 연습한 그룹 1과 심적 시연만 한 그룹 3의 신경망이 거의 비슷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반대로 자유롭게 피아노를 연주한 그룹 2의 경우 뇌의 변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행동의 반복 없이는 뇌 회로를 자극할 수 없었던 것이죠.

어떻게 피아노를 연주하지도 않았던 세 번째 집단이 실제로 피아노를 연습한 첫 번째 집단과 같은 결과를 보일 수 있었을까요? 세 번째 집단은 정신 집중을 통해 뇌의 특정 신경망을 지속적으로 자극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신경세포 간의 연결이 더 견고해진 것이죠. 신경과학에서는 이것을 ‘헵의 학습(Hebbian learning)’이라고 부릅니다. 같은 생각을 반복함으로써 함께 활성화된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되고, 뇌가 발달되는 겁니다. 반대로 더 이상 자극되지 않는 신경세포는 서서히 연결이 끊어지게 됩니다. 그만큼 반복적인 생각이나 상상의 힘은 막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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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나 바꾸고 싶은 습관이 있으시다면, 이제부터 매일 꿈을 실현한 혹은 습관을 바꾼 자신의 모습을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상상해 보십시오. 물론, 실천적인 노력도 함께 말입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생각들이 여러분의 신경망을 변화시켜 여러분의 뇌 능력치도 향상된다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한 발짝 더 빨리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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