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그 일을 계속 곱씹게 됩니다. 그 당시의 상황을 반추하기도 하고, 제 상상이 더해져 파국적인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진상 손님이 와서 저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면 집에 가서도 그때의 상황을 계속해서 떠올립니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거기서 똑같이 맞섰다면?’이라는 상상을 하며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기보다 제 감정을 폭발시키는 상상을 합니다.

그렇게 해야 제 감정이 풀리는 것 같다는 무의식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 당시에 속상하고 억울했던 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꾹 참았기 때문일까요…. 그러기엔 그 당시에 너무 참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라는 게 좀 아이러니합니다. 제가 수동공격성이 강해서 은연중에 기분 나쁜 티를 내거든요.

하여튼 그 상황에서 끝내고 싶은데 그다음 날까지 계속 상상을 하고 곱씹으며 저를 괴롭히게 되니 너무 힘이 듭니다. 서비스직이 안 맞는 걸까요? 그 당시에 제 감정을 다 풀어내고 맞서 싸웠다면 그 결과를 제가 감당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컴플레인 걸릴 테니까요).

어떻게 해야 제 감정을 잘 풀어내고 반추하는 걸 멈출 수 있을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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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올려 주신 사연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그 일을 계속해서 곱씹게 되는 반추적 사고를 하는 것이 고민이시군요. 사연자님께서도 이미 경험으로 인해 잘 아시다시피, 반추적 사고란 과거에 경험했던 일들, 많은 경우에 실수하거나 화가 난 사건, 수치심을 느낀 일 등 부정적인 일을 경험한 후에 당시에 있었던 장면이나 그때 했던 대화 등을 머릿속에서 반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반추적 사고를 할 때는 보통 당시에 느꼈던 부정적인 사고나 감정(우울감, 절망감, 수치심)이 재현되기 때문에 자기 비하나 부정적이고 불쾌한 감정을 재경험하면서 스트레스 반응이 증가될 수 있습니다. 반추하는 내용은 보통 부정적이거나 실패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자주 하게 될 경우, 우울한 마음이 지속되거나 심리적인 안정감을 방해하게 됩니다. 반추가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지요.

부정적인 사건이나 감정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자존감이 저하되거나 자신에 대한 평가가 더욱 엄격해지면서 자아비판적인 경향이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긍정적으로 사고하거나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측면은 억제되고, 비관적인 사고가 다시 강화됨으로써 긍정성이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저하되는 악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사연자님께서 이렇게 반추적 사고를 하는 것 외에 다른 여러 영역에서 이전과 달리 우울증 증상으로 진단될 만한 어떠한 변화가 있으신지 알 수 없어 이것이 우울증과 관련이 있는지 사연만으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반추적 사고를 해 온 기간이 길거나, 그 외에도 생활 전반에 걸쳐서 우울함을 비롯해 부정적인 감정을 자주 경험하거나 과수면과 같은 신체적 증상이 동반되는 등 우울증이 의심될 만한 증상들이 사연자님께 나타나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한번 점검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일단 우울증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DSM-5의 진단 기준에 의거하여 전문가와의 면밀한 상담을 필요로 합니다. 여기서는 우울증의 핵심 증상과 간략한 진단 기준에 대해 안내를 드리오니, 사연자님께 어느 정도 해당되는지 간단한 자가 진단을 해 보시고,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할지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1. 부정적인 감정(불안, 공포, 고독, 죄책감, 적대감, 짜증 등)이 많아지고, 긍정적 감정이 줄어든다.

2. 행동기능장애: 활동성이 줄어들고 행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3. 신체적 증상: 수면장애, 식욕 변화, 배변장애, 나른함, 통증 등

 

우울감이 심하면 이 세 가지 증상이 모두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우울감 정도가 약하면 행동기능장애와 신체적 증상이 약하게 나타납니다. 또한 다음 9개 증상 중 5개 이상이 거의 하루 종일, 2주 이상 지속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만약 그 증상이 다른 신체적 질환이나 약물 때문이 아니라면, 주요우울장애로 진단됩니다.  

- 우울감 / 무감정, 무관심 / 수면장애 / 피로감, 기력과 활력 저하 / 실행기능장애 / 정신운동장애(행동지연과 심한 짜증) / 체중과 식욕 변화 / 자살에 대한 생각 / 죄책감과 무가치감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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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신가요? 사연자님에게 해당하는 우울증 증상이나 기간이 어느 정도 해당된다면 반추적 사고가 우울증의 한 증상일 수도 있으니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추적 사고를 하는 것 외에 달리 우울증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면 반추적 사고가 시작될 때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면서 의식적으로 중단하고 빠져나오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시작돼서 반복되는 반추적 사고를 어떻게 하면 중단시킬 수 있을까요? 바로 몸을 움직이면서 다른 활동에 집중해 보는 것이 효과적인 편인데요,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거나, 가벼운 운동을 하거나 미뤄 왔던 집안일, 취미생활 등 몸을 움직임으로써 반추를 멈추고 보다 생산적인 활동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습니다.

반추를 하는 것이 언제나 부정적이거나 비생산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의도적 반추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말이지요. 여기서 의도적 반추란, 자신의 생각, 감정, 행동을 의식적으로 관찰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말하는데요, 이렇게 의도적 반추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며 그에 따른 행동의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거나 그 과정을 명확히 이해해서 자기 인식을 높이고, 다음번에 유사한 상황에서 보다 적절한 결정을 내리거나 행동하도록 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 직장에서 진상 손님이 와서 무례하게 군 상황을 집에 가서 계속 떠올리며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상상을 하거나 ‘당시에 맞서 싸웠더라면….’ 하고 반추하는 것은 아무래도 ‘의도적 반추’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분이 좋아지거나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떠오르기보다는 감정적으로 힘들어지고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해결책이 생각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연자님께서 당시에 손님과 맞서 싸우지 않은 것은 직업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잘 대처하신 태도로 보입니다. 또한 아무리 고객이라도 무례하게 군다면 인간적으로 화가 나는 감정도 자연스러운 반응일 테고요. 당시에 사연자님께서 느꼈던 감정적인 반응은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이성적으로 대처하며 직업적인 역할을 잘 수행한 데 대해서는 스스로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세요. 그리고 특별히 사연자님을 감정적으로 힘들게 하는 고객에게 대응한 후에는 동료분에게 잠시라도 양해를 구하고 머리를 식히고 돌아오거나, 깊은 호흡을 하면서 방금 전에 느꼈던 격렬한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며 진정시켜 보는 것도 부정적이고 강렬한 감정을 정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다음번에 비슷하게 무례하게 구는 손님이 있을 때는 어떻게 좀 더 효과적이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실질적인 대응책을 고민해 보거나, 다른 동료들은 이럴 때 어떻게 대응하고 감정적으로 스트레스 받을 때 어떤 방법으로 해소하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서 사연자님의 생활에도 적용해 보는 건 어떨까요. 사연자님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부정적인 사건을 반추하는 데 낭비하지 않고 긍정적이고 즐거운 일들에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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