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삼십대 중반 여성 직장인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초등학교 시절에는 내향적이지만 명랑한 아이였으나, 사춘기 시절부터 지속적인 우울감과 낮은 자존감, 부정적인 사고방식과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움보다는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커서, 좋은 일이 있거나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현재에 만족하거나 충실하여 기쁜 적이 드물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업, 강의 시간에 아무리 집중하려 해도 조는 것이 일상이었고, 특히 시험공부를 할 때는 늘 벼락치기만을 하고 평소에 꾸준히 집중하여 공부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게는 살면서 어떤 중·장기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려는 것 자체가 막연하고 어렵고, 달성하려 노력하거나 달성하지 못하는 것에 모두 스트레스를 받아서, 취미 생활에 대한 단기 목표 같은 것은 가끔 세워 보았지만, 직업적으로나 자기계발, 미래에 대한 목표는 전혀 세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십대 중반에 취업을 한 뒤 같은 곳에서 10년이 넘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스스로 받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문장을 읽어도 이해가 잘되지 않고, 머리가 아프며, 쉽게 우울해지고 피로해지는 것이 10년째 일상다반사입니다.

1년이 지나면 괜찮겠지, 3년, 5년이 지나면 괜찮겠지 하면서 그동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보고, 직무가 맞지 않는 것 같아 부서도 바꿔 보고, 지쳤나 싶어 휴직도 했다가, 몸이 안 좋아지기도 하여 병가도 내고 쉬고 돌아왔습니다만… 여전히 제가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레벨이 너무 커서 퇴근 이후의 삶의 질이 너무나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하루 에너지의 대부분이 직장에서 소진되고, 퇴근을 하면 무엇을 할 기력도 의욕도 없는 상태가 9할이고, 아주 가끔 이 상황을 타개해 보려고 이직 준비도 하고(실패함), 운동도 하고, 새로운 것을 배워 보고, 여행도 가 보지만, 이 모든 것이 직장 스트레스로부터의 도피일 뿐 무기력과 우울감, 낮은 자존감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해당 분야에서 10년이나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느끼는 학습력이나 경험, 업무적 지식과 이를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늘 부족하다고 여겨집니다. 제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탓하게 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 회사에 있는 내내 몸이 항상 긴장 상태로, 바짝 긴장하지 않으면 업무 처리가 되지 않음. 졸리고 피로하고 집중이 잘 되지 않으며 우울한 상태가 다반사임.

- 일을 처리하려면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 체력/정신적인 에너지가 매우 많이 소진되고, 집중력을 유지하기 어려움(계속 하기 싫다, 어렵다, 자책, 회피, 자살 충동을 느끼고 생각이 멈추지 않음). 

- 중요한 것보다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것에 더 집중해서 해결하려 하고 시간과 노력을 더 많이 들임. 그에 따라 정작 중요한 부분은 회피하고 잘 다루지 못함.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여 10년차 경력임에도 업무에 필요한 결정을 거의 혼자 못 내리고 윗사람 지침을 구해야 함.

- 회사 업무 외에도 어렵고 복잡한 업무는 늘 미루며 정리를 잘 하지 못함(특히 돈 관리, 집안 정돈, 사진 정리 등).

저는 항상 해당 분야와 직무가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만… 그래도 돈을 벌어야 살 수 있으므로 아득바득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능력으로 어떻게든 주어진 일을 하고 살아왔습니다. 분에 넘치게도 지금 직무는 보수가 높은 편입니다. 그래서 더욱 기왕이면 지금의 커리어와 직장에 좀 적응하고 만족했으면 좋겠는 마음에 그만두기 쉽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하루에도 수백 번씩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저 스스로가 너무 보잘것없고, 그 어느 상황에서도 더 많은 노력과 만족을 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싫어지며, 거의 습관처럼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직장에서는 이러한 저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모든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솔직한 대화를 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정신과에 방문하여 중증 우울증으로 약을 처방받기도 했으나, 좀 더 근본적으로 치료를 받고 싶어 상담치료를 택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2년 동안 상담을 받기도 했었는데 당시에는 잠시 괜찮아진 듯 싶다가, 최근에 다시 자살 충동이 심해져 3개월 정도 다시 상담받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제가 저 자신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아서 그런 거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해 주시는데도(인사고과는 ‘보통’입니다), 제게는 직장이란 공간이 늘 두렵고 도망가고 싶은 곳이 된 것 같습니다. 정말 간절히 퇴사하고 싶다가도 이렇게 도망치듯 퇴사해 버리면 다른 일을 찾지 못할까 봐, 다시는 새로운 조직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아 두렵습니다.

늘 진퇴양난이고 10년째 같은 고민을 하는 저… 물론 제가 선택하고 결정할 일이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셨을 때 제가 퇴사를 한다면 상황이 더 안 좋아질 것 같은지 의견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제가 우울증 외에 혹 adhd 등 정신질환이나 다른 증상이 의심되는 상태인지도 궁금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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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께서 올려주신 사연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지속적인 우울감과 직장 생활과 관련한 고민이 크신 듯합니다. 무엇보다도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이 부분이 사연자님께서 성취하고자 하는 일을 달성하는 데 장해물이 된다고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한 직장에서 10년간 일하셨고, 그곳에서 오래 일한 만큼  하시는 일의 업무량이나 강도가 꽤 높은 편이라 짐작됩니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과도해서 퇴근 후 다른 취미 활동이나 자기계발을 할 여력이 없으신 것도 고민이시네요.

먼저, 사연자님께서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적어 주신 글에서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으신 것 같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10년간 한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근무한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다 적지 않은 보수를 받고 계시고, 인사고과도 나쁘지 않다고 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지금도 충분히 유능하고, 성실한 분이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사연자님께서는 늘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더 발전해야 한다.’는 성취와 인정 욕구가 강하신 분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너무 생활 전반에 걸쳐 작동한다면, 평소에도 긴장감이 높아지고, 거기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정작 집중해야 할 일들에 집중 가능한 에너지가 많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반복되고 강도가 높은 회사 업무를 지속하다 보면 번아웃이 올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번아웃증후군을 처음으로 정의한 크리스티나ᅠ매슬라크는ᅠ번아웃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했는데요, 각 섹션의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번아웃을 진단하는 기준이나 증상 중에 사연자님께 해당되는 것들이 얼마나 있는지 체크해 보시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 탈진: 극도의 피곤함을 느끼는 정도 
- 냉소: 실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거나 냉소로 이어지는 정도 
- 능률: 업무에 집중을 못하거나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정도 

또 번아웃 증후군의 증상을 나열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기력이 없고 쇠약해진 느낌이 든다. 
- 쉽게 짜증이 나고, 노여움이 솟는다. 
- 만성적인 감기, 요통, 두통과 같은 증상에 시달린다. 
- 감정의 소진에 심해 우울하다는 감정을 느낀다. 
- 업무량이 지나치게 많아진 것 같고 예전과 달리 열정이 사라졌다. 
- 잠을 자도 피로가 누적되는 것 같고 이전보다 더 빨리 더 쉽게 지치는 것 같다. 
- 속이 텅 빈 것 같고 일과 자기 자신,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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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신가요? 사연자님께 해당되는 항목이 많이 있으신 편인가요? 번아웃이 왔을 때는 당연히 잘 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쉴 때는 하루 중에 자주, 짧게 쉬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쉴 때는 생각을 비우고 산책을 하거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쉬는 것이 좋습니다. 인터넷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보는 것은 쉬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일을 하는 것과 같다고 느낄 수 있으므로,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지속적인 우울감으로 인해 또 최근 자살 충동이 심해져서 상담을 받고 계시다고 하셨는데요, 우울증에 걸리면, 부정적인 감정(불안, 공포, 고독, 죄책감, 적대감, 짜증 등)이 많아지고, 긍정적 감정이 줄어듭니다. 뿐만 아니라, 행동기능장애가 오기도 하는데 활동성이 줄어들고 행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수면장애, 식욕 변화, 배변장애, 나른함, 통증 등과 같은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지요. 지금처럼 꾸준한 우울증 치료와 함께 심리상담이나 인지행동치료 등도 병행하시면 치료적 효과가 더욱 좋아질 수 있으니, 희망감을 잃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사연자님께서 사연에 적어 주신 것만으로는 ADHD 진단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울증이나 높은 불안 수준, 번아웃증후군, ADHD 등 여러 정신적 어려움에 있어서 중복되는 증상들이 있을 수 있으니, ADHD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관련 검사와 함께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할 것입니다. 

참고로 성인 ADHD의 주의력 결핍에 관한 주요 증상으로는 지속적인 업무 수행 및 업무 완결의 어려움, 해야 할 일의 망각,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한 대인관계 문제, 계획적인 일상생활 관리의 어려움 등이 있습니다. 성인 ADHD 환자의 경우 객관적인 시간 인식의 필요성, 규칙적인 계획 세우기, 거절하기와 일의 우선순위 정하기,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등 필요한 경우에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면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퇴사와 관련해서는 섣불리 조언을 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생활하시는 것과 관련이 있다 보니 이 점에 대해서는 사연자님께서 시간을 두고 고심해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만, 현재 업무를 이어 나가시는 것이 심적으로 너무 힘드시고, 자살 충동까지 든다고 하시는 부분이 마음에 걸립니다. 가능하다면 병가를 내고 잠시 쉬시면서 심리치료와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집중하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일, 생산적인 일을 중단하고 쉬는 것이 무기력하다거나 가치가 없다는 생각은 갖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의 능력이 기준이 아니며, 모든 사람은 능력과 상관없이 존귀한 존재입니다. 현재 사연자님께서는 자기계발이나 성취, 생산적인 일에 대한 고민보다는 안정된 마음과 편안한 상태, 일상의 작은 기쁨과 즐거움을 찾으시는 데 초점을 맞추셨으면 합니다.

자신의 부정적인 면이 아닌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시고, 부족한 것이 아닌 장점에, 또 성취나 능력적인 면보다 사연자님의 취향이나 일상적 기쁨, 즐거움과 같은 데 집중하시다 보면 점차 자신감이 회복되고 우울증을 떨쳐 내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희도 사연자님의 치유를 향한 발걸음과 마음의 평온, 일상의 기쁨을 발견하는 여정에 응원의 마음을 보내겠습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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