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업무 능력이 뛰어난 한 신입사원은 맡은 업무 외에 다른 잔일을 하지 않았으며, 퇴근할 시간이 되면 다른 직원들이 짐을 챙기기도 전에 제일 먼저 일어나 퇴근했다. 상사의 잔소리나 지적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기보다 자신의 입장과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업무 능력이 좋았던 신입사원은 상사의 잔소리가 갑질로 느껴졌다. 지속해서 갈등을 겪던 상사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들은 신입사원은 그 자리에서 퇴사를 결정하고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신입사원의 퇴사 사연입니다. 이에 대해 네티즌의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습니다. 의견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1. 상사가 모욕적인 언사를 한 건 잘못했지만, 우선은 대화로 풀어 본 후에 퇴사를 결   정해도 늦지 않다. 싫은 소리 듣기 싫다고 나간 거 아니냐.

2. 업무에 상관없는 모욕적인 언사라니 빨리 나오기 잘했다. 오래 있어 봤자 비슷한 상황이 또 생길 거다.

 

세대 차이는 직장에서 더욱더 두드러지는 점이기도 합니다. 2030은 기성세대, 혹은 그 윗세대가 보기에 이직이 잦고 퇴사 결정을 너무 빨리 내리는 것 같습니다. 굳건하게 한 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해 온 입장으로 보았을 때, 끈기가 부족해 보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양보하고 맞추어 나가기보다 하기 싫은 건 우선 거부하고 본다거나, 회사 혹은 자신의 업무에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2030 세대의 잦은 이직률과 빠른 퇴사 결정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현 2030 세대는 386 세대와 X세대의 자녀로 볼 수 있습니다. ‘386 세대’는 개개인의 희생으로 민주주의에 밑거름을 마련한 세대로, 그에 대한 자긍심이 큰 특징이 있습니다. ‘X 세대’는 386 다음 세대로, 이전 세대와의 뚜렷한 대비를 보이는데, 이들은 학창 시절에 디지털과 함께 성장하였고, 격식을 벗어 버린 가벼운 개인주의를 개성으로 인정받았습니다.

 

X세대 주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살펴볼까요? ‘아이와 남편보다 자신이 제일 소중하다’라고 응한 대답이 71.7%였습니다. 또한 자녀의 직업에 있어서 90.9%가 ‘꼭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 아니어도 좋다’고 답했는데요, X세대에 대한 연구 결과를 통해 그다음 세대가 느꼈을 정서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2008년 육아정책연구소에서 실시한 ‘한국인의 자녀 양육관 연구’의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이러한 X세대의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아이의 성취와 흥미 중 무엇을 강조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흥미 강조’에 X세대의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아동 중심 교육과 부모 중심 교육에 대한 선호를 묻는 질문에서 ‘아동 중심’이라고 답한 비율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X세대는 다른 부모 세대에 비해 아이의 정서적 안정을 중시하고, 대화와 이해를 양육의 수단으로 취합니다. 집단 가치보다는 개인 중심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지요. 자식이 갖추었으면 하는 소양적 측면에서 ‘자신감’을 가장 많이 선택한 세대 또한 X세대로 드러났습니다. X세대의 유행가 가사는 그 세대의 가치관과 분위기를 잘 드러내 줍니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이거 아니면 죽음 정말 이거 아니면 끝장

진짜 내 전부를 걸어 보고 싶은 그런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

(신해철,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가사 中)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매일까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 이데아> 가사 中)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양육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데 비해, 자기희생은 적었다는 점입니다. 자신감을 갖고 너의 뜻을 펼치라며 정서적 지지를 아끼지 않았으나, 희생적이진 않았다는 것인데요, X세대의 자녀, 즉 현 2030 세대의 입장에서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네 삶, 내 삶을 구분하는 느낌이었을까요?

이러한 가치관을 지닌 부모에게 양육된 2030 세대는 직업을 선택할 때 ‘일과 삶의 균형’, ‘일 자체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에 중심을 두는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특히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Z세대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두 가지 조건을 가장 많이 추구합니다.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거나,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것입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직장을 선택하는 기준은 세대별로 차이점을 보입니다. 이를 통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살펴볼 수 있는데요, 성인 남녀 1,288명을 대상으로 구인·구직 사이트 ‘잡코리아’와 ‘알바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한 번 볼까요?

X세대는 1위로 ‘만족하는 수준의 연봉(42.8%)’을 꼽았습니다. 그 뒤로 2위 ‘직원 복지제도는 잘 갖춰져 있는지(39%)’, 3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지(38.0%)’가 이어졌습니다.

이에 비해, 2030에 해당하는 MZ세대는 1위 ‘만족하는 수준의 연봉(48.0%)’은 같았지만, 2위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지(41.6%)’를 꼽았습니다. 그 뒤에야 3위 ‘직원 복지제도는 잘 갖춰져 있는지(39.7%)’로 이어졌습니다.

직장을 유지하는 여러 가지 요인 가운데, 2030 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인은 ‘일을 통해 스스로의 발전을 체감하는 것’입니다.

 

20대 후반의 한 사원은 만족스러운 연봉을 아쉬워했지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뒤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회사의 성장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고, 그에 따라 자신의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연봉이 만족스럽더라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서 벗어날수록 일에 대한 의미가 작아졌습니다. 자기계발과 점점 멀어지는 점은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 사원은 사직서를 낸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평생 남의 뒤치다꺼리만 할 순 없어요 내가 원하는 걸 해 봐야 후회가 안 남을 것 같았습니다.”

 

회사의 돈을 받으니 회사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소리로 들립니다. 하지만 2030 세대는 회사의 성장과 함께 자신의 성장을 꿈꿉니다.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당연한 것이지 개인을 묶어 둘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2030 세대의 직장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소통해야 합니다. 임금 지급에 따른 일방적인 업무 지시는 2030 세대를 애사심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MZ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자기 결정권의 존중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었습니다. 자기 결정권이란, 스스로 자신과 관련된 사안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로 1945년 UN 헌장에서 보장하고 있으며, 대한민국헌법 10조 행복추구권에 포함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또한 심리학자들은 ‘존중’을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이자 인간으로 지닌 존엄성에 대한 인정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그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을 존중받는 것’이며, 행복의 기준은 자신이 정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자신이 지닌 결정권을 귀하게 여겨 달라는 것이지 ‘자신의 의견만 맞다’고 주장하거나 ‘자기 의견만을 따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사가 ‘신입 직원이 조목조목 설명했던 말들’을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고, 자신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전달했다면 어땠을까요? 최소한 그 상사가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100%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의 입장을 알았으니 나에게도 천천히 생각해 볼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들이 생각하는 직장에서의 행복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업무에 대해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지 발언권을 부여하고 진심으로 경청하는 것이 존중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대구가톨릭대병원 의과대학 학사 , 석사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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