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대한 공부, 인식에 대한 인식, 생각에 대한 생각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지식이나 정보인데, 누군가 나에게 그것에 대해 물어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린 경험 말입니다. 스스로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른 누군가에게 설명하려 하니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면서 정리가 안 되는 거죠. 그럴 때면 스스로에게 이런 의문이 들 것입니다.

‘분명 아는 건데…… 왜 설명을 못하겠지?’ 

 

이런 경우, 우리는 정말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정말 잘 알고 있는데도 당황해서 일시적으로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상황이라면, 대부분의 경우 뇌는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제대로 학습하지 못한 채 넘어갔지만, 뇌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뇌 과학이 밝혀낸 메타인지의 비밀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의 뇌 MRI를 촬영한 결과, 전전두엽 피질의 회백질이 두껍게 측정됐다고 합니다. 이 부분의 신경세포가 유독 많고, 활성화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뇌 중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대뇌 피질 중에서 논리적 판단, 추리력, 문제해결 능력 등 고차원적 인지와 계획 능력을 담당합니다. 

그중 전전두엽 피질의 회백질은 다른 동물과는 구별되는 인간 특유의 능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미국 뉴욕대학교 스테판 플레밍(Stephen M. Fleming) 박사는 자기성찰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의 전전두엽의 피질 부위에 회백질이 많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여기서 ‘자기성찰 능력’이란 ‘메타인지’를 의미합니다. 이 메타인지(Metacognition)란, 자신의 인지적 활동에 대한 지식과 조절을 뜻입니다. 즉,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해 아는 것에서부터 모르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는 전 과정을 말합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메타인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왔습니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 베엔만 교수는 25년 동안 메타인지에 대해 연구한 결과, 메타인지가 IQ보다 성적을 더 잘 예측하는 변수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베엔만 교수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IQ는 성적을 25% 정도만 설명한 반면, 메타인지는 40% 정도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이렇듯 중요한 메타인지 능력을 과연 후천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들 것입니다. 희망적이게도 메타인지 능력은 IQ와 달리 적절한 훈련을 통해 상당 부분 그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합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우리 아이의 메타인지 능력,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1. 나의 생각과 감정을 지켜보고 알아차리는 명상 

명상은 자신의 생각을 지켜보고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차분히 깊게 호흡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는 과정을 하루 5분만이라도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메타인지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2. 내가 나를 가르치기

누군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그것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지 못하다면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정말로 자신이 그 부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3.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글로 써 보자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정보, 경험, 감정 등을 글로 써 보는 것은 셀프 테스트, 자기 점검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막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명확하지 않거나 막상 떠오르지 않을 때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진짜 학습이 시작됩니다.

 

4. 매일 보는 풍경에서 낯선 풍경으로 

메타인지는 친숙한 상황에서는 작동을 멈춥니다. 낯선 상황,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문제해결을 하기 위해 메타인지의 근육이 길러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참으로 오랫동안 공부합니다. 엉덩이를 의자에 딱 붙이고 앉아서 무한 반복적인 학습을 하는 것이지요. 물론 반복은 학습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모르는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학습이 멈춥니다. 반면,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른다는 걸 알고 있을 때, 한 번 더 학습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메타인지에 관한 실험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단어쌍을 외우게 한 다음 재학습과 셀프테스트를 진행하고 다시 시험을 보게 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재학습한 경우보다 셀프테스트를 했을 때 점수는 10점이나 높아졌다고 합니다. 자신이 아는지, 모르는지 점검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성적이 10점이나 향상된 것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학습을 할 때, 재학습과 셀프테스트 중에 무엇이 더 효과가 높다고 생각하느냐?’라고 질문했을 때, ‘재학습’이라고 대답한 비율이 훨씬 많았습니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셀프테스트보다는 재학습을 학습 전략으로 더 많이 활용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같은 내용을 읽고, 읽고, 읽으면, 우리의 뇌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뇌의 속임수로 인한 착각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어떤 주제가 나한테 친숙하면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마음도 편안한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 셀프테스트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게 됨으로써 뇌는 스트레스를 받고, 우리는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듯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지각하면 제대로 학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정반대인데도 말이죠. 한마디로 재학습은 셀프테스트보다 스트레스가 적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무의식적으로 좀 더 쉬운 학습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쉽게 배운 것은 결국 쉽게 잊히는 법입니다.

 

부모님들이 선생님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어떻게 하면 쉽게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쉽고 편안한 공부가 좋은 공부일까요?

메타인지도 기술 배우기와 비슷해서 짧은 시간 안에 배울 수 없습니다. 습관처럼 자신의 일부가 되기 위해 꾸준한 연습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연습은 부모님이 대신 해 줄 수 없습니다. 내 머릿속의 거울은 오로지 ‘나’ 자신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교사들이 메타인지를 어떻게 수업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 교육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지나친 입시 경쟁 속에서 몸과 뇌가 휴식을 취할 틈도 없이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괴로워하는 학생들에게도 조금 쉬어 가면서 똑똑하고,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 주는 것이 어떨까요? 메타인지라는 근육을 잘 키워 나간다면, 비단 학습뿐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나 방향을 찾아 나가는 데도 훌륭한 안내자 역할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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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많은 사람이 도움 받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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