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배기 아이, 형, 엄마, 일가족이 함께 숨지는 비극적인 일이 ‘잃어버린 미소’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신문, SNS 등에 게재가 되었다. 터키 해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시리아 난민들의 이야기다. 국제 이주 제단(IOM :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에 따르면 지금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이주민이 많은 시대라고 한다. 조국을 떠난 사람 수가 1600만 명을 넘었고, 3300만 명이 자기 나라 내에서 전쟁, 굶주림을 피해 옮겨 다녀야만 하는 처지다.

사진 픽사베이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400만 난민 중 한 가족의 이야기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애도가 난민 사태로 향하고 있다. 정부가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청원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고, 난민들을 위한 모금 활동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뭐가 불쌍한가? 그게 운명인 것을’, ‘난민들이 많이 와서 유럽이 골치 아프다는데, 나는 유럽 자국민들이 더 불쌍하다.’ 라는 등의 댓글이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비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이 나오는 것일까? 인격의 문제도, 공감능력이 떨어져서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자신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시리아 내전이 자신들의 삶과 관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난민 사태로 인해 많은 유럽 국가가 몸살을 앓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힘든 것을 피하기 위해 애써 관계를 차단하려고 한 노력이 이런 비극을 불러올지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비극이 자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일지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관계’를 외면하고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기본적으로 세상은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메슬로가 말한 인간의 원초적 욕구 중의 하나는 ‘관계’ 형성이다. 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 관계되어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개인의 내면에서 찾는다. 일반적으로 현재의 상황을 수용하고 거기에 맞게 적응해 나가는 것을 삶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면담하러 온 환자들이 ‘이해받지 못한다’, ‘냉정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상황일 때의 이야기다. 전쟁과 같이 아무리 노력해도 굶주림을 벗어나기 힘든, 아이가 학대당하는 평범하지 않은 상황은 주위의 환경을 바꾸는 것이 맞다. 개인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다. 세상을 바꿔줄, 주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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