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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남편과 시댁의 갈등,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 승인 2018.10.25 01:27

[정신의학신문 :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남편은 속을 잘 털어놓는 성격이 아니고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런 남편이 가족과 감정이 쌓이다가 결국 폭발하게 된 거 같아요. 아예 만나려고 하지도 않고 찾아오는 가족을 만나주지도,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않고 모든 연락수단을 차단했습니다. 가족 간의 이런 불화는 주위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도 영향을 끼치잖아요. 모든 가족이 이 문제로 사이가 틀어져버렸습니다.

남편 본인도 저랑 이 문제로 말다툼을 계속하다가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겠다고 했고 급성 스트레스성 장애와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어요. 남편이 지금 약을 먹은 지도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진료도 받아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과 상담 중에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도 말하지 않으니 저는 남편의 현 상태나, 앞으로 치료 방향 등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남편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남편과 남편 가족의 불화는 저에게도 굉장한 스트레스이고 결혼 초기부터 시작된 시댁 내의 갈등 속에서 정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또 남편 가족과는 사정상 어쩔 수 없이 한두 달에 한 번은 마주칠 수밖에 없는 사이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제가 지금도 남편을 포기하지 못하고 가족의 평화를 이루길 바라고 있다는 것이고 남편을 말로 설득하거나 타이르고 있다는 거예요. 때문에 우리 부부 사이에서도 갈등이 끊이질 않습니다. 저는 남편을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남도 아니고 자기 가족이고, 듣고 보면 그리 큰 문제도 아닌데, 그 미움을 용서하지 못해서 온 가족을 이렇게 힘들게 하고 저한테 결혼초부터 이런 말 못 할 어려움을 겪게 하는 게 너무 원망스럽고 답답합니다.

남편에게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제가 이렇게 화해를 하도록 설득하는 게 남편에겐 그렇게 큰 스트레스일까요? 저는 어떤 포지션을 취하고 어떻게 남편을 도와야 할까요? 저 사람은 환자다, 아픈 이다 아무리 되뇌어도 저도 사람이기에 이 삶이 너무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최근에는 정말 살기 싫다는 생각이 간절해요.

어떻게 해야 고통 없이 죽어버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저를 발견합니다. 부족함 없이 살던 저였는데, 이 결혼으로 이 집안사람들 때문에 제 인생이 망가져버린 듯한 느낌입니다. 요즘엔 가슴에 돌을 올려놓은 듯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아요. 남편뿐 아니라 저도 환자가 된 거 같아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저에게 도움을 베풀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남편분과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계시군요. 1년이 넘도록 남편분이 치료를 받고 계신데도, 막상 질문자님 본인의 상황은 전혀 나아지는 바를 느끼지 못하고 계시니 더욱 답답함을 느끼고 있으신 것 같습니다. 고통 없이 죽어버리고 싶다고까지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정말 질문자님의 상황이 여간 힘드신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짧은 질문글에서는 정확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어떤 일로 남편분과 남편 가족분이 다투게 되신 건지,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어 있는 것인지, 질문자님과 남편 가족분의 관계는 정확히 어떠한 건지, 해결책으로 모색할 수 있는 방법들은 현실적으로 무엇들이 있을지, 이 문제들로 남편분과 질문자님이 어떤 대화들을 어떻게 나누었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저로서는 무척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들을 듣고, 죽고 싶다고까지 말씀하시는 그 답답함 뒤에 어떤 생각과 사정들이 있으신지 듣고 싶은데 말이지요. 그러나 게시판 질의글만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어떤 구체적인 조언을 드리지 못하는 점에 대해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아주 상세한 이야기들을 제가 다 듣는다 하여도 어떻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다, 예를 들면 남편과 남편 가족분의 관계를 아예 끊어라, 혹은 억지로 붙여 놓아라 같은 식의 조언을 제가 드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그런 직접적인 조언을 제가 드린다고 하여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면 지금까지 질문자님이 이렇게 새카맣게 속을 태우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보다, 제가 질문자님의 글을 보면서 유독 눈에 띄었는 글귀는 "부족함 없이 살던 저였는데, 이 결혼으로 이 집안사람들 때문에 제 인생이 망가져버린 듯한 느낌입니다"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해결되지 않는 집안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가 질문자님 마음 안에서 점점 갑절, 제곱의 갑절로 큰 분노로 자라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편 가족 사이의 갈등, 그로 인한 시댁 식구들 사이의 갈등, 그 사이에 끼인 질문자님의 마음에서는 온갖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감정들이 생겨나셨을 겁니다. 분노가 될 수도 있고, 우울, 억울함일 수도 있고, 혹은 불안, 짜증일지도 모를 그런 감정들이 매일을 해결되지 않고 부글거린다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진짜 더 큰 문제는 그 감정들이 질문자님을 잠시 괴롭게 하고 흘러가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계속 질문자님의 마음속을 빙글빙글 맴돌며 더욱 거대한 감정으로 자라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혼한 여성에게 남편과의 관계,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는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관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른 어떤 관계들보다 중요할 수 있겠지요. 특히 남편과의 관계는 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질문자님의 인생의 전부는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니, 거창하게 인생까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질문자님의 일상. 하루하루의 일상에서는 그 관계가 전부일 수 없습니다. 다른 많은 인간관계와 다른 많은 일들, 질문자님을 하루하루 살게 하는 또 다른 많은 관계와 사건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질문자님을 힘들게 하고 있는 남편, 시댁과의 문제는 그중 일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좋든 싫든, 질문자님은 남편과의 관계, 시댁과의 관계를 떠나 다른 일들에 집중하고 다른 일들에 시간을 쏟아야 하는 일상 속에 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쩌면 질문자님이 그렇게 하지 못하고 계신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남편과의 관계, 시댁과의 관계에서의 문제로 그와 관계없는 질문자님의 다른 일상들 마저 무너져 가고 있으신 것은 아닐지 우려가 됩니다. 남편과의 문제라는 그 소용돌이에 질문자님의 하루하루 전체가 다 빨려 들어가고만 있는 것은 아닐지 말입니다. 남편과의 문제에서 생긴 감정이, 남편을 떠나 나의 일상으로 돌아온 상황에서도 계속 내 마음속을 부글부글거리면서 말이지요.

물론, 그렇게 짜증 나고 스트레스 나는 일이 있는데 어떻게 다른 일들을 하면서 영향을 안 받겠냐!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사람이 로봇도 아니고 감정을 필요할 때마다 뚝뚝 껐다 켤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그 상황, 불편한 감정으로 일상이 모두 무너져 내리고 있는 현실의 상황을 질문자님께서 다시 한번 천천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 문제로 이것과 상관없는 나의 일상들까지 모두 오염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필요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 말씀하신 남편과의 문제로 생긴 감정을 전혀 상관없는 나의 일상으로까지 끌고 들어오고 있는 그 이유는 바로 질문자님 스스로가 그 문제와 그 감정을 더욱더 무럭무럭 키워내고 있는 잘못된 생각과 집착에 있을 수 있습니다. 남편이 가족과 다툰 그 상황에, 분노와 억울함이 마음속에 솟아오르면 그 잘못된 집착은 그 분노와 억울함을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지 못하고,
"내가 왜 이런 것 때문에 이렇게 스트레스받아야 하지"
"진짜 이 사람들 때문에 내가 먼저 병에 걸리겠다"
"결국 이 집안사람들 문제 아닌가. 왜 내가 이렇게 힘들어야 하지"
같은 생각들로 그 감정을 움켜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들이 그 분노와 억울함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움켜쥔 채 더욱 큰 분노와 더욱 큰 억울함으로 키워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집착은 결코 그 감정을 해소시켜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반복되는 남편과의 갈등을 연료 삼아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며 악순환을 통해 자가증식하는 거대한 고통이 될 뿐입니다. 질문자님께서 표현하셨듯 '가슴속에 올려진 돌'처럼 내려놓을 수 없는 묵직한 고통이 될 뿐입니다.
 

사진_픽셀


중요한 것은 그 굴레에서 벗어 나오는 것이 첫 번째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질문자님을 힘들게 하는 시댁 식구들의 그 상황에서, 안 그래도 힘든데 그 고통을 더하는 질문자님 스스로의 동력을 끊는 것이 첫 번째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래야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좀 더 현명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얻을 수 있고 말입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좋은 해결책 중 하나는 하루 중 분노하고 고민할 시간을 정해두는 것입니다. 그런 고민과 분노가 올라올 때마다 거기에 빠져들고 화를 못 이겨 부들부들 떨기보다는, 정확히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고민만을 하도록 시간을 정해두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머지 시간 동안에는 그 문제에 대해 내려놓는 것입니다. 심지어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 중에도, 남편이 가족과 통화하는 것을 보는 순간조차도 우선은 그 문제를 내려두고, 정해둔 그 시간에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우선은 나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말이지요.

그러고 난 뒤, 고민의 시간에는 A4 용지를 펴고 나의 생각과 고민들을 적어보는 것입니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분노, 우울, 억울함, 원통함 등등의 감정을 적어보고, 그 감정을 일으키는 생각들은 또 무엇인지를 적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민과 생각들을 주욱 적고 난 뒤에는 그중,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생각은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가족과 당장 잘 해결했으면 좋겠다' '남편이 가족에게 사과를 먼저 했으면 좋겠다'와 같은 것들은 질문자님이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제발 좀 이런 꼴을 그만 보았으면 좋겠다'와 같은 생각들은 질문자님이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범위의 것입니다. 오히려 질문자님을 더욱 옥죄고 답답하게만 만드는 생각들이지요. 그러나 “내가 이 사람들 때문에 왜 힘들어야 하지” “왜 내가 중간에 끼어서 이렇게 힘들지”와 같은 생각들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내가 감당하고 받아들여, 지금의 이 불편한 감정을 더욱 크게 불태울 장작으로 쓰이지 않도록 갈무리해야 할 생각이지요. 이러한 것들을 나누고 분류해보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나를 객관화하고, 지금의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행동일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 당장이라도 목숨을 끊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어렵다면, 질문자님 혼자서는 이 문제를 헤쳐나가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질문자님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문제를 해결해나갈 필요가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남편분을 치료하고 계신 선생님께 상담을 받아보실 수도 있고, 부부치료를 고려해보실 수도 있습니다. 혹은 다른 병원에서 상담을 받아보실 수도 있을 테고요. 어떤 방향이건 병원을 찾고 치료를 받기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질문자님도 결국 이 사건 때문에 아파졌다!라는 결론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 문제를 보다 적극적이고 현명하게 해결해나가겠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일상을 되찾겠다!라는 질문자님의 강력한 의지이지요.

모쪼록 질문자님의 오랜 고민에 밝은 길이 드러나길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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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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