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24살 여자 대학생입니다. 졸업반이고요, 인턴을 나가는 중입니다. 최근 사소한 일에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이 불안하며 무서운 생각이 들어요. 특히 낯선 사람들 속에 끼거나 낯선 장소에 가게 될 때는 패닉 상태가 한 번씩 와요. 내가 왜 여기 있지? 여긴 어디지? 난 누구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내 존재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정신과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뭐.. 그런 인턴인데요, 폐쇄 병동에서 오픈 그룹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참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요. 그리고 저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가까이 다가와 저를 만지는 분들도 있죠. 큰 반응을 보이면 안 되기 때문에 그저 웃으면서 거절하거나 앉도록 제안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그럴 때 숨이 턱 하니 막히거나 흉부 통증이 오거나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일도 빈번해요. 제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격한 감정을 표현할 때에 곁에 있으면 더 불안해지고요. 그냥 사람들이 무서워요. 내가 위험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나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고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어릴 때부터 왕따 당했던 기억 때문에 쉽게 우울해지고 사람 만나는 게 싫어지고 귀찮고 음식도 입에 안 들어가고 그러는데요. 방학처럼 나갈 일이 없을 때에는 핸드폰을 보고 속을 털어버리고 싶은 친구를 찾아봐요. 근데 다 나를 귀찮게 여길까 봐, 거절당할까 봐 무서워서 연락을 못하고 계속 우울해져서 잠만 자려고 해요. 밤엔 아무도 없을 때 나가서 멍 때리다가 다시 들어오기도 하고요.
가끔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최근 들어 들기 시작했어요. 나만 없으면 사람들은 더 편해질 거라던가 어차피 나 같은 거 없어져도 세상은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 필요 없고 쓸모없는 존재니까 죽어도 괜찮겠지 생각해요.
저는 우울한 걸까요, 불안한 걸까요? 이런 제 상태가 상담이 필요한 걸까요, 뭘까요? 이런 상태라고 진단서를 받아오지 않는 한 인턴을 그만두도록 안 해준다는데 저한테 왜 사람들은 불안만 안겨줄까요?

답변)
짧은 사연 속에 여러 가지 문제가 섞여 있네요. 정리를 좀 해 볼게요. 먼저 어린 시절 왕따를 당했고, 그 이후 쉽게 우울해지고 사람 만나는 게 싫어지죠. 또 속을 털어놓을 사람을 찾을 때도, 혹시 내가 귀찮게 여겨지거나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하고요. 심지어 내가 없으면 사람들은 더 편해질 거라는 생각도 하네요. 이런 기본적인 모습에 더해서,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는 상황에서는 다른 증상들도 보이네요. 패닉이라고 표현한 증상들이요. 내가 누구지, 여긴 어디지, 가슴이 뛰고, 불안하고. 또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지고, 내가 위험해질 것 같죠.
다른 사람이 나를 싫어하고, 내가 거절당해지고, 주변 사람들이 격한 감정을 표현하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능력이 있어서 다 처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내가 우울하고 불안할 이유는 없겠죠. 그래서 질문자 분은 본인 스스로를 무능력하다고 믿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듯해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게 된다면, 누구나 ‘나는 무능력하다.’라고 믿게 돼요. 쥐를 철창에 가두고 전기충격을 주게 되면, 처음에는 피하려고 하지만 나중에는 단념하고 가만히 전기 충격을 다 받아요. 심지어 나중에 전기를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철창 안에 마련해 놔도, 그 장소로 피하려 하지조차 않죠.
어린 시절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왕따 때문만은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어린 시절 가족, 선생님, 친구 이 세 그룹 중 한 그룹이라도 자신을 지지해 준다면, 그 사람은 정신적으로 안정을 잘 유지하거든요.
어떤 원인으로 스스로가 무능력하다고 믿게 된다면, 그 이후는 악순환이에요. 내가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행동을 할 의욕이 없어지고, 즐겁게 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니 삶의 즐거움이 없죠. 또, 상대방이 나에게 피해를 줬을 때 내가 저항할 능력이 없다고 믿으니, 모르는 사람이 두려워져요. 난 막을 능력이 없으니, 상대방의 선처에만 기대해야 하거든요. 내가 힘들 때 친구에게 연락을 하지도 못해요. 내가 능력이 없기 때문에 친구의 존재는 더 간절하죠. 내가 부담이 돼서 친구가 떠나면, 무능력한 나만 덩그러니 남는 상황이 두려울 거예요. 또 거절로 인한 상처가 감당이 안 되기도 하죠.
결국 본인이 믿고 있는 무능력한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야 해요. 지금은 그래서 전문의의 상담이 필요해요. 약도 도움이 되겠지만, 약이 믿음을 바꾸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신과 전문의의 상담을 기본으로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치료를 받으면서 진단서나 직장 문제를 같이 상담받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거절은 웃으면서 하는 게 아니에요. 특히 만성 조현병 환자분들께는 더 그래요. 내가 무표정하게 반응한다고 해서 그분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고 증상이 더 나빠지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분들이 불쾌해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다른 사람의 동의 없이 신체접촉을 자신이 했으니, 그런 불쾌함은 그분들이 감당해야 할 당연한 것이에요. 조현병 환자라고 해서 모든 행동이 용납되는 게 아니니까요.
의학적인 이유로도 그래요. 조현병 환자분들은 사회적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점점 떨어져요. 웃으면서 말로 거절을 하는 것은, 사회적 상황판단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정보예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상대방이 긍정하면서 동시에 부정하고 있는 것 이니까요.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불필요한 신체접촉은 금지되어 있고, 이 부분을 환자에게 교육해야 하죠. 교육이 가장 효과가 있는 상황은, 그 환자가 실제로 신체 접촉을 했을 때, 이것은 금지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거예요. 웃으면서 말로 거절을 하는 것보다, 무표정으로 다소 정색하면서 거절을 한다면 환자도 확실히 금지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겠죠.
무표정하게 거절을 했는데 환자분이 불쾌해할 때, 일부 관리자들은 이 상황에 대해 자신의 고용인을 비난하기도 해요. 서비스 정신이 없다면서요. 이건 앞뒤가 바뀐 거예요. 환자는 사회 속에서 결국 살게 돼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고요. 환자분이 올바로 살아가기 위해서 기본적인 규칙은 알아야 해요. 이게 바로 사회기술이죠. 사회기술을 습득시켜주는 것은 의료기관의 역할이고요. 올바른 사회기술을 습득시켜 주지 않으면서 서비스 정신만 강조하는 것은, 친절하게 비위생적인 음식을 파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동시에 동의 없는 신체접촉이 금지라는 것을 환자가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오해를 한다면, 사건은 반복될 것이고, 언젠가는 큰 사건이 날 수도 있죠. 이런 철학들은 관리자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서 함께 공유하는 것이 중요해요. 환자에게도, 의료진에게도요.
낯선 사람을 두려워 하지만, 낯선 사람을 만나야만 하는 진로를 선택한 것도 흥미롭네요. 질문자 분이 어려워하는 환경 속에 들어가신 만큼, 그 속에서 본인이 찾기를 원하는 것을 꼭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조력자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주변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하시고요.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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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경험까지 알려주셔서 더 와닿아요. 재옥쌤 짱!"
"정말 도움됩니다. 조언 들으며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