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전 직장에서 파견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심한 괴롭힘과 더불어, 같이 일하던 여자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주동자 여자애가 제가 잘난 척이 심하고 혼자 열심히 일하는 척한다면서 아니꼽게 보았고, 제 행동 하나하나가 다 오버라고 보았습니다. 주동자 여자애와 싸운 후 저는 같은 직급의 파견 계약직 여자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으며, 상사 분들의 괴롭힘과 저를 향한 고함은 더해졌고, 정규직 사원들의 왕따 역시 심해졌습니다. 그 이후로 계속 여자들에게 무시와 괴롭힘을 당해왔습니다.

2년을 겨우겨우 계약 만료하고 회사를 나오고, 그 이후 저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너무나 지치고 상처받아 우울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일자리를 다시 잡기 위해 이곳저곳 회사를 전전했지만 그곳에서도 제대로 사회생활 및 여자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거나 유지하지 못하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타 직장에서도 직장 사수가 여자인 경우 저를 굉장히 무시하고 괴롭히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타인을 바꿀 수 없기에 저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여자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할수록 꼭 주동자 같은 분이 나타나 저를 왕따 혹은 은따를 시킵니다. 저를 무시하거나 질투하는 여자들이 그룹이 있으면 꼭 한 명이라도 있으며, 그 꼬인 감정을 저한테 괴롭힘과 왕따, 무시, 은따, 비꼼으로 표현하는데 정말 저도 노력하는데도 저를 싫어하는 여자가 꼭 생기니 이젠 포기상태입니다.

 

언제나 여자 동료와의 사이가 어색합니다. 회식 자리에서 파견 계약직이라서 저 혼자만 놔두고 다들 회식을 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친구 3명이 있으면 저 혼자 꼭 남겨지고, 나머지 둘은 매우 친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그런 것에 질투가 날 때도 있었지만 학생 시절부터 하도 이래서 지금은 무덤덤합니다. 마지막 직장이던 곳에서는 횡령죄와 공문서 위조죄라는 얼토당토않은 명목으로, 계약직인 저를 내쫓으려고 했고, 외부에 이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고, 어느 곳에서 일했고,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걸 말하지 않는 조건을 말해야 했습니다. 아울러 제가 횡령죄와 공문서 위조를 했다는 서약서를 안 써주면 징계위원회에까지 보내서 형사 처벌한다고 협박을 했기에, 전 결국 울면서 서약서를 쓰고, 이후 저는 노무 사분을 고용하여 제대로 법대로 하자고 하니, 그제야 높으신 상사 분들이 협상을 하자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거의 9개월이 지났고, 지금은 우울증 치료를 받으며 많이 마음이 안정되었고, 공부도 하고 다시 새로운 직장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있으니 게을러져서 현재 독서실을 다니는데, 독서실에서 갑자기 누군가 쪽지를 보내더군요. "혼자 공부하시는 것도 아니고 여기는 커튼도 없는데, 필기하는 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가 너무 크다면서 좀 조용히 공부하세요. 부탁드립니다."라는 쪽지였습니다. 너무 황당해서 그 쪽지를 건넨 사람을 빤히 보니 저를 째려보시다가 시선을 피하고 가방 들고 나가시더군요. 안 그대로 힘든 마음 겨우 추스르고 있는데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쪽지를 건넨 사람이 저한테 자기가 공부 안되니까 나한테 화풀이한다는 생각이 들고, 자꾸만 기분이 나쁩니다. 이후 운동도 하고, 맛있는 음료도 먹고, 4년째 먹는 우울증 약도 먹었는데, 기분이 풀리지 않네요.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기분이 나쁜 일이 생길 때  어떻게 하면 치미는 감정과 속상함, 분노를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쪽지 한 장에 지난 일들이 생각나며 왜 이리 내 주변에 이런 사람만 있지? 왜 나는 사회생활을 못하지? 왜 나는 여자들에게 괴롭힘을 받지? 왜 다 내 잘못이지? 란 생각이 꼬리를 꼬리에 물고 넘어집니다.

거리두기, 마음 챙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도 잘 안되네요. 구체적인 행동방법이나, 제 마음가짐이 바뀔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겠어요. 부탁드립니다.
 

사진_픽사베이


답변) 

나무에 상처가 나면 진액이 흐르고, 진액이 흐르면 벌레가 꼬이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나무에 벌레가 꼬이는 것을 보고, 우리는 진액 때문에 벌레가 꼬인다고 하죠. 맞는 말입니다. 진액을 먹으려고 벌레가 모이게 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틀린 말입니다. 진액 때문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나무에 상처를 만들었기 때문에 진액이 나오는 것이고 그 진액 때문에 벌레가 꼬이는 셈이니, 결국 나무에 상처를 만든 무언가 때문에 벌레가 꼬이는 것이기도 하죠. 

이런 뜬금없는 이야기를 먼저 하는 이유는, 오해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질문자 분의 사연을 볼게요. 질문자 분은 어린 시절부터 여자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셨죠. 학생 때도 그랬고, 이전 직장, 마지막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여자와 불편한 관계가 반복되는 거죠. 단편적인 상황만 말씀해 주셔서, 왜 여자와의 관계가 반복적으로 좋지 않은지는 알 수 없네요. 일반적으로 어머니와의 관계가 험난했던 경우 사회생활에서도 여자와의 관계가 쉽지 않다는 얘기밖에 할 수 없겠어요.

 

근본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자와 관계가 안 좋을 수밖에 없는 원인이 본인에게도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각각 다른 환경에서도 대부분의 여자와 갈등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죠. 자갈밭에서 달리기를 해서 발목을 삔 줄 알았는데, 러닝 트랙에서 뛰어도 발목을 삔다면, 발목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합리적이니까요.

보통 이 부분에서 오해를 많이 하세요. 나는 피해자인데 내가 문제라는 거냐, 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죠. 그래서 미리 나무 진액과 벌레 얘기를 한 거예요. 질문자 분은 상처가 있어 진액이 흐르는 나무입니다. 그 진액을 보고 질문자 분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꼬이고 있고요. 질문자 분은 지금까지 흐르는 진액을 나뭇잎으로 감추기 위해 노력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타인을 바꿀 수 없어서 자기 스스로를 바꾸려 한다는 말을 할 때 까지는 많은 과정들이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잘 아시는 것처럼, 진액을 나뭇잎으로 감춰도, 냄새까지는 감출 수 없기 때문에 벌레들은 계속 꼬이게 되죠.

질문자 분이 반복적으로 겪은 상황을 예로 들어 볼게요. 반복적인 괴롭힘을 당한 경우에는, 여자를 보면 반사적으로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 사람도 나를 무시하면 어쩌나.'

그리고 질문자 분은 이런 생각이 들면, 어울리려고 노력을 하시게 되죠. 이 노력은 주로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는 방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를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한 방법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노력들은 엇나가게 됩니다.  어떻게 엇나가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의 편의를 위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두 종류의 사람만 있다고 생각할게요. 

질문자 분이 좋은 사람에게 비위를 맞춘다고 할게요. 좋은 사람은 이 상황에 대해서, 자신이 받아야 할 대우 이상의 것을 받고 있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습니다. 좋은 사람의 특징은 자신의 받아야 할 정당한 것만 받으니까요. 금전적인 것이든, 정서적인 것이든요. 따라서 비위를 맞추는 것 자체가 좋은 사람에게는 불편한 상황으로 느껴지게 되고, 떠나기 전에 이렇게 까지 안 해도 된다고 설명을 하겠지만, 질문자 분이 이 말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결국 좋은 사람은 질문자 분 곁을 떠나게 되겠죠. 

질문자 분이 나쁜 사람에게 비위를 맞춘다고 할게요. 나쁜 사람은 자신이 받아야 할 대우 이상을 받는 것이 익숙하며, 또 그런 상황을 좋아합니다. 질문자 분을 이용하기 쉽다고 느낄 가능성도 높겠죠. 금전적이든, 정서적인 것이든요. 나쁜 사람은 이 상황이 유용하게 느껴지게 되고, 결국 자신이 질문자 분을 활용하기 유리한 상황을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질문자 분을 왕따,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고립시키는 것이죠. 사회에서 고립된 개인은 늘 취약해지니까요.

 

결국, 질문자 분이 이미 가지고 있는 여자에 대한 어떤 믿음이, 여자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주변에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믿음 그대로의, 나쁜 사람만 남게 됩니다. 좋은 사람은 떠나고, 나쁜 사람만 곁에 있게 되는 거죠. 이런 환경에서는 여자관계가 나쁠 수밖에 없고, 이 경험은, 기존의 믿음을 강화시켜서 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그러니 지금 질문 글에서 말씀해 주시지 않은 여자와의 관계가 나쁠 수밖에 없는 원인, 즉 나무에 무엇이 상처를 냈는지를 파악하고 치료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거리두기, 마음챙김 등 방법보다는 정신치료를 받으시는 게 필요합니다. 뼈가 부러진 자리에 파스를 붙인다고 좋아지진 않으니까요. 또 우울증 약이 이런 믿음을 바꿔주지는 않으니, 약과 정신치료를 병행하셔야 할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신과에서 말하는 '내가 바뀐다.'의 의미는, '나만 바뀐다.'가 아닙니다. 내가 바뀜으로써, 주변에 있는 사람이 달라지게 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물론 주변 사람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바뀜으로써, 기존에 나를 이용하려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고, 건강한 사람들이 곁에 남게 된다는 의미죠.  건강한 동료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건강해야 합니다. 본인이 문제라는 말이 아닙니다.  수액이 나오고 있는 상처를 치료하라는 말이죠. 그러니 본인이 편하게 느껴지는 전문의 선생님에게 정신치료를 받으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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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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