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독이 되는 관계가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는 과정

1) 독이 되는 관계에는 언제나 주도자가 있다.(2)

정신의학신문|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들이 자신의 문제를 희생자에게 덮어씌우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투사

앞의 칼럼에서 나온 자신의 무능함을 걱정하던 직장 상사의 이야기에서 나온 방법이죠. 주도자들은 집단 내에서는 자신감이 넘쳐보이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결핍이 심하고 뭔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심지어 이들은 용기가 없는 나머지 이것을 인정할 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인데, 정신적 구조가 약해서 그게 안되는 거죠.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문제가 항상 자신의 바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의 안에 있는 분노, 항상 자신을 목마르게 하는 어떤 결핍, 자신과 타인에 대한 심한 공격성.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자신의 내면의 악마. 이것을 들여다 보는 것은 고통스럽고,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자신의 내면을 건강하게 만들고 세상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들이지요.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내면에 악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문제가 있는 것은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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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정과 전치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자신의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을 부정해버리면 그 감정은 사라질까요? 우리는 많은 경험을 통해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폭력적인 감정, 목마름, 공격성은 오히려 더욱 더 커집니다.

그랬을 때 우리는 그 감정을 어떤 식으로든 표출하고, 발산하고, 원인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내면에 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정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방어기제 중에서 ‘부정’은 매우 독특한 특성을 가집니다. 이 부정이라는 방어기제는 아주 모순된 두 가지의 생각을 머리 속에 공존하게 만듭니다

독성관계의 주도자인 알코올 중독을 앓고 있는 청년의 아버지는 밖에서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세상을 원망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신체적 능력도, 타인을 조종할 수 있는 그런 기술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무능했던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공격성을 자신의 행동을 받아주지 않는 다른 사람에게 표출한다면 자신이 험한 꼴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요. 방어기제로 부정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의 생각이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기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폭력성은 자신보다 약하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고, 자신의 보호하에 있는 그의 아들에게로‘만’ 향하게 됩니다. 아직 어린 아들은 자신이 마음껏 공격성을 드러내고, 자신의 감정을 투사를 해도 저항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독이 되는 관계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나타납니다. 이들의 독성은 받아주는 사람, 또는 저항할 수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향한다는 점입니다. 이 점에서 나르시시스트나 반회성 성격장애, 즉 사이코패스와의 차이점이 두드러집니다. 차라리 이들이 자신들이 나르시시스트처럼 심각한 정신병리를 앓고 있다면, 이들은 누가봐도 어느 정도는 눈치챌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다른 사람에게 독성을 미치지 않습니다. 큰 사고나 파국이 생겨 관계가 끊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독성관계의 주도자들은 자신이 그렇게 해도 자신이 피해를 받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독성을 뿌립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자신의 아들, 딸, 배우자, 직장 후배, 반에서 영향력이 낮은 친구들이 되는 거죠. 그 외의 상황에서 이들은 선량한 사람, 최소한 무해한 사람으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이 관계에 있어서 누군가에게 독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죄책감도 없죠. 여기서 비극이 생기는데, 이들은 자신의 영향력 안에 있는 사람에게 어떠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보다도 더 오래 심각한 독성의 영향을 줍니다.

이들의 폭력이 언제나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 폐쇄적인 환경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주변인이나 심지어 피해자조차도 이들이 독성관계의 주도자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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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합리화

주도자들의 머리 속에는 아주 모순된 두 가지 현실이 존재합니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잘못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강렬한 자기방어의 본능.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합리화’를 시작합니다.

자신이 폭력을 휘두르거나 부당한 대우를 한 사실에서 불안감이나 죄책감이 없어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나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할 만큼 잘못돼었고, 무능하고, 가치가 없으면 됩니다. 또한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얘한테는 나처럼 행동할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폭력은 폭력이 아니라 정의의 처벌이나 교육, 아주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약한 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행동의 희생자들을 평가절하합니다.

“당신은 왜 당신의 아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뼈가 부러질 정도로 때렸습니까?”

- “말조심하세요. 그건 폭력이 아니라 교육이었습니다. 그건 내 아들이 어리석기 때문에 사회로 내보내려면 그러는 수밖에 없었죠. 저는 지금까지 전과 한 번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른 적도 없어요.”

“너는 왜 같은 반 친구를 학교에 나오지 못할 만큼 그렇게 놀리고 괴롭히고 돈을 빼앗았니?”

“저만 그런 거 아닌데요? 반 친구들 대부분 걔를 싫어했어요. 옷도 지저분하고, 공부도 못하니까요. 그 친구도 잘못이 있는 거 아닌가요?”

“당신은 왜 600만명의 유대인들을 강제수용소로 보내 탄압하고, 그들의 목숨마저 빼앗았습니까?”

“유대인들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죠.(히틀러가 실제로 한 말)”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이 폭력을 휘둘러도 되는 사람을 골라서, 그 사람에게 자신의 문제를 투사해서 일시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그리고 상대방이 그럴 만해서 그랬다는 합리화. 이것은 소수의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들에게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의 슬픈 본능 중 하나입니다. 처벌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폭력성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합리화하여 죄책감마저 지우는 것.

이들의 폭력은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심지어 희생된 사람들마저도 자신이 교육을 당했는지 폭력을 당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빈번히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고발을 하거나 제 삼자가 개입을 하기도 힘듭니다.

무엇보다 이 행위에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타인에게 투사를 하는 순간, 주도자의 마음 속에는 일시적으로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과 같은 마음 편한 느낌이 찾아오게 됩니다. 마치 화가 났을 때 술을 먹고, 일시적으로 잊는 것처럼, 불안할 때 배달음식을 폭식해서 먹는 동안만큼이라도 불안감을 잊으려고 하는 것. 하지만, 술과 폭식이 그러하듯 만족감은 매우 짧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희생자의 정신을 심각하게 오염시키는 행위를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드러나거나 제지받지 않는 한 반복하고 또 반복합니다.

저는 독성관계에서 일어나는 행위를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폭력’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저에게 찾아오는 환자분들의 상당히 많은 수가 지금도 현지 진행되고 있는 깨닫지도 못하는 폭력과 정신적 오염을 자신의 부모에게, 배우자에게, 직장동료에게, 친구에게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희생자들을 이 독성 영향을 뿌리는 주도자에게서 분리하지 않으면 결코 희생자의 정신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주도자들은 법적으로 범죄자는 아닙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도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들은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고, 평범한 아버지, 어머니, 형제, 친구, 동료들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들 중 그 누군가는 여러분에게는 심각한 독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과 의사들이 희생자들을 이들에게서 분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움직여야 합니다. 주변의 투사와 부정, 전치, 합리화를 사용하여 여러분을 가치 없는 존재로 만들고, 부당한 대우를 당해야 마땅한 사람이라고 평생을 주입하고 있는 독성관계의 주도자들의 영향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이건 제 삼자가, 심지어 의사조차도 해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정신은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어쩌면 나쁜 영향을 주는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권 순 재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분당서울대병원 전임의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치매전문센터장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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