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픽사베이

 

앞선 1/10강에서 해독(음독) 능력은 부족하지만 언어 이해력은 괜찮은 유형의 학생을 난독 유형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이 나오게 된다.

첫 번째 질문은 도대체 얼마나 부족해야 난독증이라는 질병으로 판정하느냐이다. 아까 평균을 100으로 정하기로 했는데 평균의 80% 이하 즉 80 정도면 될까? 이하 아니면 70%, 60%......?

 

사진_http://blog.daum.net/jung8350

 

인간의 행동을 연구할 때도 항상 같은 문제를 만나게 된다. 얼마나 산만해야 질병으로 판정할 것인가, 얼마나 지능이 낮아야 지능이 부족하다고 판정할까 같은 상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진단기준에 2가지의 제약을 가한다. 지적 기능의 저하가 그 사람의 하는 일이나 인간관계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제약과 전문가의 판단으로 정했든 심리검사로 정한 수치든 일단 미리 정해진 컷오프 수치 이하여야 한다는 제약이다.

예를 들어 ADHD의 경우에는 기준 항목 9가지 중에서 6가지를 넘어야 한다는 컷오프 수치가 있다. 지능지수의 경우에는 2 표준편차 이하, 즉 100명 중에서 98등 이하인 지능지수 70을 기준으로 지적장애를 판정한다.

 

사진_http://blog.daum.net/jung8350

 

그러면 난독증은 어떻게 진단할까? 난독증에는 ADHD처럼 증상 체크리스트가 없다. 지적장애를 판정할 때 사용하는 웩슬러 지능검사 같은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아주 보편화된 심리검사도 없다. 세계를 지배한다는 미국 진단기준의 최신판인 DSM-5에도 어떤 검사를 해서 어떤 기준점수 아래여야 진단할 수 있다고 명확히 써놓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해독 능력 검사 결과(학생에게 글을 읽어보라고 한 다음 속도와 정확도를 평가한 점수)가 100명 중에서 84등 이하일 때(1 표준편차 이하) 문제가 있다고 판정한다. 초등학교 한 학급당 학생이 20여 명이라면 3명 정도가 읽기가 늦다고 판정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은 그냥 진단하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일뿐이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어떤 조사에서 난독증이 5% 정도로 나오고 어떤 조사에는 10%로 나오기도 한다. 그것은 기준을 100명 중에 84등이라고 잡느냐 93등으로 잡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예를 들어 치매 검사로 보험적용을 받으려면 인지검사 점수가 100명 중에서 93등 이하여야 하고 학교에서 단체로 실시하는 정서행동검사도 100명 중에서 93등으로 나쁜 점수가 나올 때 위험군으로 판정된다.

 

두 번째 질문은 해독을 힘들어하는 아이 중에서 그냥 충분히 교육하지 않아서 늦된 아이와 교육을 잘 했는데도 불구하고 늦된 아이를 구분할 수 있겠느냐 이다. 실제 우리나라 어머니들 중에서는 한글이 늦는 아이를 아직 충분히 글자에 흥미가 없어서, 또는 어려서 책을 많이 읽어주지 않아서 라고 생각하고 그냥 기다리다가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한글 공부할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인지 타고난 문제 때문인지는 병력 조사와 신경심리검사를 통해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다. 제대로 된 난독증 검사에는 다음과 같은 검사들이 들어있다.

 

1. 의미 단어와 무의미 단어 소리 내어 읽기 (정확도와 속도)

2. 단락 소리 내어 읽기 (정확도와 속도, 운율)

3. 음운인식능력검사

4. 빠른 이름대기, 작업기억력, 비단어 따라 말하기

5. 받아쓰기 (의미 단어와 무의미 단어 또 소리대로 쓰는 단어와 음운현상 있는 단어)

 

그림_빠른 이름대기 검사_http://www.vikramr.com

 

4번 항목에 나온 빠른 이름대기 검사의 예를 들면 1-5까지의 숫자를 무작위로 50개 배열해놓고 얼마나 빨리 읽는지 알아보는 검사나 해, 컵, 공, 개, 책을 표현하는 그림 50개를 무작위로 배열해놓고 얼마나 빨리 읽는지 알아보는 검사이다. 글자를 전혀 모르는 아이도 검사할 수 있는데 글을 느리게 읽는 아이는 대부분 숫자도 그림도 느리게 읽는다. 숫자든 글자든 그림이든 일단 그것이 무엇인지 보고 알아챈 다음에 입으로 말하는 과정에서는 같은 뇌 회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타고난 게 아니라 공부할 기회가 부족했던 아이는 빠른 이름대기 검사 결과는 정상으로 나온다.

또 비단어 따라 말하기는 예를 들어 “구떼츠포”라는 무의미한 말을 불러주고 그대로 따라하게 해보는 검사이다. 한글이 늦은 아이는 “두테즈포, 두께츠포, 구떼포스” 등 여러 번 따라하게 해보아도 정확하게 따라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귀가 소리를 정확하게 들어서 뇌에 구/두/부 라는 소리의 정확한 샘플이 저장되어 있지 않아서 /구/ 로도 /두/로도 /부/로도 들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리의 정확한 샘플이 없으면 우리가 아이에게 ‘구’라는 글자를 /구/라고 읽어주어도 /구/ 로도 /두/로도 /부/로도 일관성 없이 듣고 기억했기 나중에 혼자 글을 읽을 때에도 전혀 자신이 없다. 지진파를 그리는 기계와 비슷한 기계로 가/다/바를 표시해보면 1/10초 이내에서의 차이가 이러한 소리의 차이를 가르는데 미세한 차이를 인지하는 능력은 생후 1년도 안된 아기들끼리 비교해도 차이가 난다. 특히 부모가 난독증인 아기는 건강한 부모에서 난 아기와 비교했을 때 이러한 미세한 차이를 구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사진_http://cueflash.com

 

난독증 학생이 가진 공통적인 증상은 한글 공부를 매우 싫어한다는 점과 글을 읽을 때 너무 자신이 없는 점이다. 한 번은 너무도 열심히 가르쳐도 학생이 잘 늘지 않자 학생이 아직 한글을 읽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한글이 늦는 것 같다고 말하는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의사가 이 환자가 아픈 건 건강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아프다고 얘기한다면 어떻게 들리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다. 세상에 건강하지 않고 아프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마찬가지로 한글을 일부러 늦게 배우고 싶은 아이는 세상에 없다. 만약 한글을 늦게 배우고 싶어 하는 느낌이 드는 아이가 있다면 난독증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현재는 위에 나온 검사 결과와 웩슬러 지능검사 결과, 아이가 학교나 집에서 보이는 모습을 종합하면 난독증을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위에 나온 평가항목을 검사하는 도구가 그전까지는 하나도 없다가 2014년에 쏟아져 나왔다.

그 목록과 개발자의 소속은 다음과 같다.

1. BASA- EL (교육계)

2. RARCP (특수교육계)

3. KORLA (언어치료학계)

4. CLT-R (소아정신과학계)

 

이외에도 여러 검사도구가 있지만 표준화가 되지 않았다면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다. 표준화가 되었다는 것은 그 검사 도구를 수많은 일반학생에게 실시해서 통계를 통해 평균이 얼마인지 커트라인이 얼마인지 알고 있다는 뜻이다. 표준화가 안 된 검사도구로 검사하면 진단 내리는 사람이나 기계를 파는 회사가 임의로 정한 기준에 따라 진단할 수밖에 없다.

표준화된 검사도구는 5개의 평가항목을 일부 혹은 모두 가지고 있으며 항목이 서로 매우 유사하다. 2014년 이전까지는 평가할 검사도구도 없어 기준도 없고 각자 제각각이었지만 이제는 제대로 된 검사만 받으면 진단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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