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책을 읽고 싶은데 책을 읽으려고 하면 머리가 굳어지면서 책에 있는 글씨만 눈에 들어오고 내용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아요. 

사람이 옆에 있어도 불안 증상이 심해요. 사람들이야 집에 있으면서 피하고 있지만, 집에서조차 책도 읽지 못하니 절망감이 들어요. 머리를 바닥에 대고 책을 읽기도 하고, 두 손으로 잡고 읽기도 해요. 그러면 읽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지금의 내 삶이 힘들어서 어떻게든 책이라도 읽으며 위안을 얻고 싶은 거예요. 

머리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머리를 다친 적은 없어요. 이럴 땐 머리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를 복용하면 좋을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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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의 고민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책을 읽고 싶은데, 책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집중도 잘되지 않는 상황에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으시네요.

사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 뇌 기능의 전체를 활성화해야 할 만큼 고도의 정신적인 활동입니다. 그만큼 뇌의 활성화와 에너지 소모를 많이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독서하는 습관은 우리 두뇌 발달에도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니 꾸준한 독서만큼 우리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습관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책을 읽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집중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이때 우리 뇌에서 필요한 신경전달물질이 바로 ‘노르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입니다. 이 신경호르몬은 적당한 자극을 받을 때 단기적인 동기부여에 필요한 호르몬이지만, 만약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는 상황에 노출될 경우 노르아드레날린이 생성량 이상으로 다량 방출되면서 결국 바닥이 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이 호르몬의 생성 속도도 저하되면서 독서와 같이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활동을 할 때 그 기능성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만약 현재 사연자님께서 책을 읽을 때 집중하거나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반복되는 상태시라면, 계속해서 책을 붙들고 있는 것은 오히려 스트레스 수준을 증가시키는 행위가 될 수도 있으므로, 잠시 사연자님의 뇌 스위치를 크고 휴식을 취하시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뇌가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현대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휴대전화나 텔레비전을 사용하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기’나 자연 속에서 이완된 호흡이나 스트레칭 등을 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많거나 만성화된 스트레스 문제가 있을 경우, 신체적으로 많이 피로한 경우에도 우리 뇌는 정보를 기억하거나 저장하고,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때문에 신체와 뇌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충분하고 질 좋은 수면을 취하는 것은 물론, 충분한 영양 섭취를 위한 균형 잡힌 식사가 도움이 됩니다. 그만큼 평소 스트레스 관리와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꼭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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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연자님께서 책을 읽으려는 이유, 즉 독서를 하려는 동기에 대해 말씀하시는 부분이 마음에 걸립니다. 사연자님께서는 “내 삶이 힘들어서 어떻게든 책이라도 읽으며 위안을 얻고” 싶어서 책을 읽으려 한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지금 사연자님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이며, 또 어떤 마음 때문에 힘이 드신 것인지, 책에서 받고 싶은 위로는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물론 우리는 책을 통해 정신의 양식을 쌓고, 지친 마음에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책이 아닌 다른 활동, 즉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나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도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 방법도 있음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연자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책을 통해 위로를 받고 싶을 때는 너무 어렵고 복잡한 주제, 평소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내용보다는 너무 어렵지 않은 주제나 평소 흥미 있던 주제로 에세이나 수필, 시, 심리학이나 정신건강 분야의 책들이 사연자님께는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잘 읽히지 않는 책을 장시간 붙들고 앉아 있기보다 짧은 시간이라도 집중해서 읽는 연습을 반복해 보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주의를 전환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뇌와 정신을 깨우는 데 있어 중요합니다. 너무 집 안에만 머물지 마시고, 가벼운 산책이나 운동하기, 가까운 사람들과의 가벼운 수다 떨기, 맛있는 음식 챙겨 먹기 등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는 일상의 작은 활동들도 함께 실천해 보실 것을 추천 드립니다. 기분이 너무 우울하거나 가라앉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과 마음이 피곤해지는 것은 물론, 집중력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우울증 환자의 경우, 인지 기능이 저하되면서 기억력이나 실행 기능에 있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많이 힘드시다면 당분간은 많은 분들을 만나시는 것은 자제하시되, 사연자님을 아껴 주고 응원해 주는 분들과는 주기적으로 만나거나 연락을 취하셔서 사람들과 너무 고립되지 않도록 연결감을 유지하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만약 이러한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너무 힘드시거나 불안 증상이 심해지신다면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으시는 것도 고려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연자님께서 책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다시 세상과 사람들 속에서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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