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학창 시절 수업 시간 때 재봉틀의 작동원리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가마의 회전과 실채기의 역할, 톱니의 움직임부터 윗실과 밑실이 바늘땀을 형성하는 과정까지. 교과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해가 되지 않아 난감했습니다. 더불어 재봉틀로 이것저것 만들어 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났지요. 하교하자마자 어머니께 달려가 오늘 재봉틀의 원리를 배웠는데 도저히 모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님은 복잡한 원리를 설명하는 대신 망설임 없이 재봉틀의 나사를 푸셨습니다. 작은 기계 안에 정교히 들어찬 부품을 보고 크게 감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떠한 지식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학습’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학습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존재합니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공부하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하실 겁니다. 알록달록 색 펜으로 밑줄을 치던 친구, 컴퓨터로 인쇄한 것처럼 노트 정리에 열중하던 친구, 중얼중얼 말을 하며 암기하던 친구 등 저마다 자신의 학습법으로 시험을 준비하곤 했습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그렇다면 이 중에서도 사람의 기억에 가장 오랫동안 남는 학습법은 무엇일까요? 미국의 교육 심리학자 에드거 데일(Edgar Dale)은 학습 원추 이론으로 그 해답을 제시합니다. 데일은 학습하는 방법에 따라 기억하는 정도가 다르며, 단순히 교과서를 보는 것, 즉 ‘읽는 것’은 극히 일부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경험에 의한 학습의 과정을 총 10단계로 분류했습니다.

데일에 따르면 똑같은 내용을 학습할 때 우리는 언어적 상징으로 배운 것의 10%, 전시나 견학을 통해 배운 것의 50%, 행동적 경험으로 학습한 것의 90%를 2주 후에도 기억합니다. 언어적 상징에 의한 대표적인 학습법은 독서입니다. 전시나 견학은 시청각을 활용한 방법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경험에 의한 학습은 내가 실제 말하면서 행동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다시 크게 두 가지, 수동적인 학습(Passive Learning)과 능동적인 학습(Active Learning)으로 분류됩니다. 시청각을 활용한 학습까지는 수동적인 학습, 경험에 의한 학습은 능동적인 학습에 속합니다. 데일은 경험적이고 능동적인 학습이 수동적인 학습보다 더욱 오래 기억에 남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이후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인지심리학 교수 제롬 브루너(Jerome Bruner)는 앎(Knowing)의 과정을 세 가지 종류로 구분했습니다. 이는 데일의 학습 원추 이론을 단순화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 능동적(enactive) 표현은 사건의 조작적 표현(manipulative representation of past events)으로, 아이가 딸랑이를 흔드니 소리가 나는 것을 경험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조작적’이란, 물체를 다루어 움직이는 것을 말합니다.

두 번째 영상적(iconic) 표현은 심리내적 형상화(internal imagery)의 단계이며, 딸랑이를 직접 보지 않더라도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형상화해 그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상징적(symbolic) 표현은 언어와 수학적 단계로, 딸랑이를 떠올린 뒤 장남감이라는 분류기준에 따라 언어로 ‘딸랑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능동적인 표현에서 상징적인 표현으로 갈수록 고차원적인 학습의 단계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상징적인 표현 방식으로는 깊이 있는, 혹은 명확하게 인지하는 학습을 하기 어렵습니다. 영어 단어를 암기할 때 연필을 눈으로 보거나 사용하면서 ‘pencil’인 것을 기억하면 나중에도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경험하기 어려운 ‘abstract(추상적인)’과 같은 단어는 금방 잊어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지식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려면 경험의 단계와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읽는 것, 즉 교과서로 재봉틀의 작동원리를 보는 것보다 어머니가 직접 보여주신 재봉틀의 내부처럼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는 것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재봉틀의 부품을 하나씩 짚어 보며 원리를 말로 설명해 보는 것은 더욱더 장기기억으로 저장되겠지요. 가능하다면 해체된 재봉틀을 천천히 조립해 보는 것이 가장 오랫동안 정보를 기억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데일과 브루너의 이론대로라면 진정한 앎이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탐구하고 체득하면서 얻게 되는 가치 있는 행위입니다. 시험이 임박했을 때 순간적인 기지로 암기한 정보는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직접 체험하여 알게 된 정보는 머리로는 잊더라도, 본능적으로 기억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기억하고 싶은 정보가 있다면 경험에 의한 학습법을 적극 활용해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연주를 듣는 것 같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많은 사람이 도움 받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