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제 감정 변화가 낮설어서 사연을 적게 되었습니다. 원래 제 화 게이지 수가 20에서부터 시작된다면, 요즘 저의 화 게이지 수는 항상 99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동생과 다투는 빈도수도 늘어나게 되었고,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평소에 남이 뭐라하든 늘 참아 왔는데, 요즘에는 남이 뭐라 하면 속에서 반발심이 생깁니다. 자꾸 왜? 내가 왜 참아야 하지? 이건 아닌거 같은데?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존감이 저 바닥으로 점점 떨어지고 있고,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합니다. 혼자 화가 나서 동생 속을 다 긁어 놨으면서 시간이 잠깐 지나면 내가 왜 화가 났더라? 하며 해맑아지는 제가 참 싫습니다. 너무 이상하고 혼란스럽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 스위치가 켜졌다가 꺼진 것 같고, 너무 답답하고 숨이 찹니다. 

이대로 더 있다가는 제가 진짜 제가 아니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글을 써 봅니다.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사연 잘 읽어 보았습니다. 먼저 조울증이란 용어를 사용하셨는데요, 실제 사연자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은 조울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자기 상태가 혼란스러울 때 보통 흔히 알려진 용어를 대입하기도 하는데요, 주의하셔야 합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잘못 해석하면, 해결 방법을 잘못 적용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마음의 문제는 너무 심각하거나 너무 가볍게 해석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해석하려 노력하셔야 합니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주관성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노력’하셔야 한다는 말씀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는 충분히 연습이 가능한 영역인데요. 방법을 잘 모르는 경우 지금처럼 전문가에게 물어보시는 것 또한 정확한 자료 조사로도 충분합니다. 차근차근 사연자님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해석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겠습니다.

먼저 익숙지 않은 마음의 변화가 느껴지면 ‘내가 어떤 정신적 질환을 겪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의문이 들겠지요. 그렇다면 의심스러운 정신질환 용어를 조사하셔야 합니다. 특히 정신질환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참고하는 공식적 문서인 <DSM-5>에 개념과 진단 기준이 명확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공식 명칭은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입니다. 조울증 진단 기준이라고 검색하시면 올바른 정보를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조울증은 평상시와 달리 기분이 고양되고 즐거운 상태인 ‘조증’ 또는 ‘경조증’과 ‘우울증’이 동반된 기분장애인 정신질환입니다. 진단명은 양극성장애라고 칭합니다. 유형이 두 가지가 있는데요, 1형 양극성장애는 조증, 즉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고조된 기분이 지속되는 양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2형 양극성장애는 조증보다는 심각하진 않은 경조증 상태가 4일 이상 지속되는 양상을 보여야 합니다. 조증은 아래의 진단기준 가운데 최소한 세 개 이상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① 지나친 자신감이나 과대사고

② 수면 욕구의 감소

③ 지나치게 말이 많음

④ 생각의 속도와 양이 지나치게 빠르고 많음

⑤ 주의 집중이 안됨

⑥ 지나치게 증가된 활동이나 정신운동성, 초조

⑦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동에 지나치게 몰두함

 

일단 이 항목만 점검해도 사연자님의 상태에 부합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이 겪는 현상에는 지나친 기분 고조보다는 ‘분노 감정’이 주된 핵심 정서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단순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는 것은 ‘감정 기복’이라고 붙이는 게 더 적합합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그렇다면 현재 사연자님이 겪는 현상에 대해 조울증 가설은 기각하고, 다른 원인을 찾아보셔야 합니다. 감정 기복에는 대부분 원인이 있는데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나의 주된 스트레스는 무엇인가?’입니다. 대인관계, 가족, 직장이나 학업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충족하며 지내고 있는지, 만약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다면 스트레스를 유발할 테고, 스트레스를 해결할 방법들을 찾아 시도해 보셔야겠지요. 스트레스만 느끼고 아무 대응도 하지 않으면 결국 부정적인 감정들은 커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연자님 표현대로 감정이 폭발 직전의 게이지인 99까지 차오르는 것이죠. 그래서 약간의 자극에도 금방 분노를 터뜨리는 식으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게 됩니다. 아마도 현재 해결되지 않은 스트레스들이 있을 겁니다. 스트레스 요인들을 명확히 파악하세요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주로 느끼는 영역이 모두 다릅니다. 모두 다양한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안정감을 중시하면 통제하는 성향이 강하고, 계획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습관이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발생하면 불안함을 느끼고 이를 싫어할 수 있게 되겠지요. 보통 나의 통제나 예상을 벗어난 일들에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느끼게 됩니다. 반대의 성향인, 유연하고 자유로운 일상을 추구하는 분들은 지나치게 통제적인 분위기나 상황, 의무감에 스트레스를 많이 느낄 것입니다. 

정리하면, 주된 스트레스 영역은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와 큰 관련이 있고, 이 연결고리를 잘 이해하면 감정이 변화하는 프로세스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사연자님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스트레스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그렇지만 억압하거나 무시해서는 결코 해결이 안 됩니다.

 

사연자님이 한 말씀을 보면, 남이 뭐라 하든 늘 참아 왔다고 했습니다. 최근에 화낸 후에는 ‘내가 왜 화가 났지?’ 원인을 자신도 모르고, 감정 기복이 있는 자신을 ‘싫다’고 표현하셨는데요. 자기 감정 변화에 둔하고, 주로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억압’하고 ‘무시’하는 태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감정의 종류를 이해하고, 어떤 감정이 들 때 이를 유발한 원인을 잘 알아차리는 것을 ‘감정 인식 능력’이라고 하는데요. 정말 중요합니다.

사연자님은 사실 조울증이 아니라, 감정 인식 능력이 다소 부족한 상태로 보입니다. 글에는 동생에 대한 분노라는 감정만 나오고, 분노를 유발한 생각이나 사건이 명료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분노보다는 그 이전의 프로세스가 중요합니다. ‘아 내가, A라는 성향의 사람인데, B 사건으로 인해 C라는 생각이 들었구나. 그래서 D라는 감정을 느꼈구나.’ 이렇게 A-B-C-D의 논리적인 과정을 통해 자기 감정을 이해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내 감정이 이상하거나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것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고, 존중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내 감정 반응에 대해 타인들이 왈가왈부하더라도 이 감정들을 다시 억압하고 무시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자기 감정에 대한 확신은 곧 건강한 자존감의 기초가 됩니다. 

어쨌든 지금 사연자님이 감정을 억누르는 방식이 제대로 작동이 안되고, 기복이 심해졌다는 것은 이제 그 방식에 한계가 와서 변화시킬 때가 왔다는 긍정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부정적으로 해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연자님의 감정은 이해하고 제대로 알아주어야 하는 대상이지, 억압하고 천대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사연자님의 마음 상태를 파악하셨으니 이제 자료조사와 연습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감정을 올바르게,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감정의 종류도 잘 알고, 차이도 알아야 합니다. 먼저 ‘감정 단어’와 ‘감정 일기’라는 키워드로 검색하여, 일상에서 감정 일기를 써 보시기를 권합니다.

김정 인식 능력은 연습하면 자연스럽게 좋아집니다. 이를 보조해 줄 아주 좋은 책이 많습니다. 심리 서적 분야에서 감정 인식, 감정 표현을 다룬 내용들을 꾸준히 읽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어느새 감정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호기심과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관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연자님의 일상을 응원하겠습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학과 의원 | 이규홍 원장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의과전문대학원 졸업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수료
METTAA CBT / Schema Therapy Exp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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