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선선한 바람과 청명한 하늘을 자랑하던 가을이 지나고 찬바람 부는 겨울로 계절이 바뀔 때 우리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큰 일교차로 인해 몸이 더 피곤하고 졸린 것 같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마음도 싱숭생숭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을이 천고마비의 계절이라서 그런 것인지 식욕도 부쩍 늘고 뱃살도 함께 느는 것 같습니다. 가을 탄다는 말처럼 기분이 괜히 멜랑꼴리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증상들은 초가을보다는 겨울의 문턱에 자리한 늦가을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은 잠시 무기력감이나 피로감을 느끼다가 자연스럽게 일상과 원래 수준의 에너지를 회복하지만, 심할 때는 우울감이 무겁게 오기도 합니다. 2년 이상 특정 계절마다 우울을 경험하고, 그것이 대인관계나 직업적, 사회적 영역에서 손상을 초래할 때는 ‘계절성 정동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 진단을 고려하게 됩니다. 

계절성 정동장애는 주로 일조량이 줄어들고 낮의 길이가 짧아지는 가을에 시작해 겨울까지 우울감이 지속되다가 봄이나 여름에는 증상이 완화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주요 증상은 과도한 수면, 과도한 식욕과 함께 탄수화물이나 단 음식에 대한 갈망, 체중 증가, 대인관계의 위축, 평소 재미를 느꼈던 활동이나 영역에서의 흥미 감소 등입니다. 반대로 드물지만 봄이나 여름에 우울감을 경험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불면증, 식욕 및 체중 감소, 안절부절과 불안, 초조함, 폭력적 행동 삽화가 나타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진_ fre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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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성 정동장애의 원인은 복합적일 수 있으며, 과학적으로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몇 가지 주요한 원인으로 밝혀진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는, 감소한 일조량과 낮의 길이가 비타민 D 합성과 세로토닌의 생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은 햇빛을 통해 비타민 D를 합성하며, 비타민 D는 기분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합니다. 그런데 비타민 D가 부족하게 되면 세로토닌 결핍이 일어나면서 우울감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멜라토닌 과다 분비로 수면 욕구가 증가하는 것입니다. 멜라토닌과 세로토닌은 모두 몸이 변화된 일주기와 일조량에 적응하고 생체리듬, 수면주기를 조절하는 데 관여합니다. 그런데 세로토닌은 부족하고 멜라토닌은 과다해지면서 신체의 균형이 깨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겨울을 비롯한 특정 계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나 믿음을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겨울의 어둠이나 찬바람을 쓸쓸하거나 좋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면서 겨울을 피하고 싶은 계절로 여기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계절성 정동장애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나타날 수 있으며, 주요 우울장애나 양극성 장애를 경험하는 사람, 가족이나 친척 중 우울증이나 조현병과 같이 정신질환을 경험한 사람이 있는 사람, 빛이 부족하고 낮이 짧은 북반구 인구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계절성 정동장애가 반드시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에 한해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일반 인구의 약 5~10% 정도가 계절성 정동장애를 경험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계절성 정동장애의 증상과 원인, 치료법이나 예방법 등을 정확하게 알고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정 계절에 우울감을 경험하지만 직업적, 사회적 영역 등에서의 뚜렷한 손상이 나타날 정도로 심각하지 않고 경미한 수준이라면 가벼운 운동, 산책을 통한 광합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갖는 것이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햇빛을 받을 수 있는 낮 동안 야외활동을 늘리고 실내에서는 자연광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가구 배치를 바꾸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특정 계절마다 반복적으로 우울을 경험하며 그로 인한 고통이 심하고 주요한 삶의 영역에 지장이 있을 정도라면 전문가를 찾고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일반적인 실내조명보다 약 20배 정도 강한 밝기인 10,000 lux 정도의 빛을 통해 우울감을 경감시키는 광선 치료도 효과적인 치료법입니다. 또 다른 치료법으로는 일반적인 우울증의 치료에서도 많이 활용되는 인지행동치료(CBT), 상담과 같이 이야기를 통한 치료,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s) 계열의 항우울제를 통한 약물치료, 비타민 D 섭취를 통한 치료가 있습니다. 각 치료법의 효과나 지속성에 관해서는 연구 결과마다 차이가 있지만, 계절성 정동장애의 치료에 효과적인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어떤 치료법을 사용할지는 개인의 신체적, 심리적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전문가와의 상의를 통해 결정하게 됩니다. 특히 약물치료의 경우 약물마다 부작용의 종류가 다를 수 있으므로 사용에 주의가 요구됩니다.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많이 표현합니다. 그만큼 누구에게나 쉽게 찾아올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대개는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낫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 감기가 심각해져서 폐렴을 비롯한 더 심한 질병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감기라고 마냥 가볍게 여기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내 몸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잘 낫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펴보고 필요하면 병원도 가고 약도 먹고 해야 하는 것이지요.

마음의 감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계절성 정동장애는 단순히 ‘계절을 타는구나.’하고 넘어가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계절성 감기가 계속 반복되고, 몸과 마음, 일상을 모두 어렵게 하는 독감이 된다면 더 이상 단순한 감기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감기를 예방할 수 있도록 운동과 긍정적인 사고를 통해 몸과 마음의 면역을 기르려는 노력과 함께,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증상들로 힘든 상황에 있다면 전문가를 통해 도움을 받으시기를 권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올 겨울을 맞이하며 날씨는 춥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계절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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