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성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스포츠 경기의 역전승은 한 편의 드라마 같을 때가 많습니다. 악조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선수들의 열정은 큰 울림을 주는데요. 선수들은 승리의 비결로 ‘마인드 컨트롤’을 꼽고는 합니다. 패배가 예상되는 상황이었지만,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죠.

이러한 ‘강철 멘탈’로 자주 거론되는 선수가 ‘피겨여왕’ 김연아입니다. 부상을 입었을 때도, 압박감이 강한 세계 무대에서도 김연아의 승부사 기질은 언제나 빛을 발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도 있죠. 2010 벤쿠버 올림픽에서 라이벌인 아사다마오와 맞붙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아사다마오는 선수 인생 최초로 트리플악셀에 성공하며 높은 점수를 기록했습니다. 하필 김연아는 아사다마오의 바로 뒷 순서. 아사다마오의 코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대기 중인 김연아의 옆에서 과한 리액션을 하며 방해 작전을 펼친 것이죠. 김연아는 ‘피식’, 짧은 웃음을 지었을 뿐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덤덤한 표정으로 빙상장에 올랐죠. 그리고 이날, 그의 점수는 세계신기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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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강인한 정신력은 스포츠 선수의 역량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스포츠 과학저널(Journal of Sports Sciences)에 발표된 한 연구는 국가대표 출신, 올림픽 출전 선수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를 증명해 보였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분석한 결과, 세계 1위를 달성한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의 차이점은 ‘정신적 강인함(mental toughness)’에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정신적 강인함을 ‘압박감을 받는 상황에서도 일관성, 추진력, 집중력,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으며, 통제력을 잃지 않고 경쟁자의 수행에 흔들리지 않는 능력’으로 정의합니다. 이는 굳건한 자기 믿음, 강력한 동기부여, 높은 집중력 등 다양한 정신적 기술의 집합체로 달성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정신적 강인함은 타고나야 할까요? 연구진은 선천적 재능도 필요하지만, 반복된 연습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스포츠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강인함을 개발할 수 있는 다양한 훈련 기법을 활용하는데요. 이는 큰 범주에서 다음의 4가지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목표 설정 -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목표 뿐만 아니라, 개인기록을 어떻게 갱신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세부 목표와 전략 설정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기록을 뛰어넘기 위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최종 목표보다 정신적 강인함을 키우는 데 효과적입니다.


자기 암시 - 자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 정신적 강인함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과의 내적 대화를 통해 목표를 향한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통상 하루에 5만 가지의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5000번만이라도 “나는 할 수 있다”고 자기최면을 건다면, 목표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③ 시각적 상상 - 많은 선수들이 이를 가장 유용한 방법으로 꼽았는데요. 대회에 나갔을 때의 상황을 경기 처음부터 끝까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해보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할 때 근육의 움직임이나 피부의 감촉 등 모든 감각을 느껴보는 방식입니다.


④ 감정(arousal) 조절 - 자신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감정 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선수는 약간의 각성 상태를 선호하고, 어떤 선수는 차분한 심리 상태에서 좋은 결과를 냅니다. 연습을 반복하면 감정을 스스로 조절해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상태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박태환 선수나 이상화 선수가 경기 전 헤드폰을 착용했던 걸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음악을 통해 심적 흥분도를 올리거나, 상대 선수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도록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는 ‘통제감’을 갖는 것입니다. 연구에 참여한 많은 선수들은 이러한 자기 통제감이 타고난 재능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뛰어난 선수들은 실패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됐거나 피로가 누적된 상황 등, 신체적 또는 정서적 고통 속에서도 ①~④의 상태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자신만의 방법을 통해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험 기간이 다가와도 계획대로 공부하는 친구나 압박 면접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면접자처럼, 감정을 조절하는 데 능한 사람들은 주변의 부러움을 사곤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좋은 결과를 낼 때가 많죠.

 

승리를 거머쥔 스포츠 스타들의 진한 눈물은 그들이 견뎌온 인내의 시간을 짐작케 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그들의 화려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쉬지 않고 달려온 그들의 노력과 열정에 환호하는 것 아닐까요? 세계 무대에서도 떨지 않는 ‘강철 멘탈’이 되기까지 수만번 넘어졌을 그들의 끈기에 대한 존경과 존중. 강인한 정신력에 대한 선망은 이런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성찬 원장

이성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인하대학교병원 전공의
(전)수도군단 의무실장.아산정신병원.다사랑중앙병원 진료원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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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이 너무 좋아서 여러 번 읽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말씀은 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위안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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