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당산 숲 정신과, 이슬기 전문의]
분노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그 사람의 분노가 굳이 나를 향하고 있지 않더라도, 분노하는 사람은 지켜보는 것만으로 긴장된다. 특히나 과격한 분노는 폭력적인 언행으로 쉽게 이어지기도 한다. ‘분노’는 너무 뜨거워서 마치 이성을 잡고 있던 끈이 풀린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분노를 물이 끓고 있는 냄비나 화산에 곧잘 비유하곤 한다. 화를 낸다는 것은 자제력을 잃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끓어 넘쳐 냄비 속 요리를 망치거나, 화산이 폭발하여 그 주변을 삼켜버리는 모습은 ‘분노’의 이미지에 잘 어울린다.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의 큰 공감을 사며 큰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2015)’을 떠올려보자. 주인공 ‘라일리’의 머릿속에는 다섯 감정이 산다.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가 그러하다.
여기서 ‘버럭이’는 분노를 상징하는 캐릭터다. 버럭이는 분노할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에 불이 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우리가 분노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실제 분노 감정은 어떤 특성을 지닐까?
‘분노(憤怒)’란 분개하여 몹시 성을 냄, 또는 그렇게 내는 성을 뜻한다. 정상적인 감정이고, 보편적으로 느끼지만 혼란스러움을 가져온다. 기본적으로 불쾌한 감정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더 많은 고통을 가져올 수도 있다. 분노를 느낄 때의 신체적 반응은 어떨까? 우리는 분노를 느낄 때 호흡이 빨라지며 심장 박동수와 혈압이 증가한다. 아드레날린이 혈액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에,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투쟁-도피’ 반응 모드로 들어가 긴장하게 된다.
분노는 사실 이차적 감정인 경우가 많다. 촉발 사건으로 유발된 두려움에서 분노로 이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사이드 아웃’의 라일리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간 후 예전 동네의 베스트 프렌드와 화상 통화를 한다. 자신은 새로운 곳이 낯설 뿐인데, 베스트 프렌드는 새 친구를 사귀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라일리는 화를 내며 노트북을 닫아버린다. 이는 베스트 프렌드를 잃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생긴 분노인 것이다.
분노 자체는 행동이 아니라 감정이며, 행동으로 이어질 때 위험할 수 있다. 따라서 행동으로 이어지기 전에 대화로 풀 수 있어야 분노로 인한 실제적인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물이 끓어 넘치기 전에 김이 올라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자주 분노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알고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의 ‘버럭이’는 얼마나 힘이 센지, 당신의 얼굴이 달구어질 정도로 지나치게 힘이 센지, 곰곰이 고민하며 아래 특징을 살펴보자.
Duke University Medical Center 심리학 교수 Redford Williams는 ‘분노한 사람의 특징’을 일곱 가지로 정의했다.
1. 사소한 것에 화를 냄: 다른 운전자가 끼어들기를 하거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처럼 비교적 하찮은 일에 화가 나는 사람은 ‘분노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2. 대화 시 참을성 없이 끼어듦: 대화를 할 때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 못하고, 상대의 말을 끊고 자기 말만 하는 경우이다.
3. 불평불만이 많음: 다른 사람의 허물과 결점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면, 정치나 스포츠 경기 등에 대해 불평불만이 끊이지 않는다면 의심해보아도 좋다.
4. 복수심이나 원한에 사로잡혀있음: 과거에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기 어려워한다면, 그 때문에 관계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당시의 상황이 기억나거나 비슷하게 재현될 때, 좌절 혹은 고통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재경험하기 때문이다.
5. 얼굴이 자주 붉어짐: 분노할 때는 얼굴이 붉어지기 쉽다. 단순히 감정적인 ‘붉음’뿐만이 아니다. 온도계로 측정했을 때 실제로 온도가 높아진다. 호흡이 빨라지는 등 몸에도 영향을 미친다. 화는 자주 내는 사람은 고혈압, 뇌졸중, 심장마비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6. 예민함: 분노가 많은 사람은 비교적 빠르게 화를 낸다.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상황에도 빈정이 상하기 때문에, 타인의 언사를 지나치게 신경 쓰고 경계한다.
7. 냉정함: 공감능력이 떨어지며 심지어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기도 한다. 타인의 탓을 잘하고 칭찬에 인색하다면 고민해볼만 하다.
물이 서서히 끓어 오르면 뜨겁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힘든 것처럼 자주 짜증내고 신경질 내는 사람들은 자신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나 자신이 쉽게 분노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찬물을 뿌리듯 다른 생각을 하거나 산책 등으로 환기가 필요하다. 혹은 만나는 사람마다 한 가지씩 칭찬을 한다거나, 복수심이 생길 때마다 용서하는 마음을 내는 등 위의 특징과 반대되는 행동을 해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음식이 끓어올라 넘친 냄비는 쉽게 그을리고 망가지기 마련이다. 지나치게 뜨거운 분노는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을 괴롭게 만든다. 당신에게, 혹은 당신의 주변인에게 너무 뜨거운 ‘버럭이’가 있다면,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말을 통해 우리 안의 버럭이의 등을 토닥여보는 건 어떨까?
Anger is an acid that can do more harm to the vessel in which it is stored than to anything on which it is poured.
분노는 쏟아지고 있는 분노 자체 보다 저장된 그릇에 더 큰 해를 끼칠 수 있는 산(식초)이다.
– Mark Twain
서울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 대전,서울지방병무청 병역판정의사
(전) 서울 중랑구 정신건강증진센터 상담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