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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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가장 최근 화를 낸 건 언제인가요? 누구에게 화를 냈나요? 그 이유는? 화가 났을 때 혹은 화를 낸 후에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들었나요? 후련했나요? 자괴감이 들었나요? 아니면 깊은 후회가 밀려왔나요? 상대방에게 미안함이 느껴졌나요?

살다 보면 우리를 화나게 하는 일들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무례하게 구는 사람부터 약속 시간마다 매번 지각하는 친구, 공연 대기 줄에서 새치기하는 사람, 사사건건 꼬투리 잡는 진상 고객까지. 이런 사람들과 마주할 때면 원래 내가 이렇게 화(火)가 많은 사람이었나 싶을 만큼, 단전에서부터 깊은 ‘빡침’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하지만 화가 난다고 해서 언제나 그 화를 표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까딱하다가는 큰 시비가 붙거나 관계가 틀어지거나 역공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오늘은 이러한 ‘분노’의 감정과 그것에 잠재된 심리 그리고 분노 표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우리는 분노란, 뭔가를 잘못한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잘못한 일이 없는 떳떳한 사람이 표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이라고 여기곤 합니다. 언뜻 보면 맞는 이야기 같습니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그렇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별로 큰 실수나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과하게 화를 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정말로 화낼 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부적절하게 화를 분출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이들은 왜, 그런 걸까요?

 

여러분은 혹시 ‘고양이 걷어차기 효과(Kick the cat effect)’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이는 자신보다 약한 대상에게 분노나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심리학 용어를 뜻합니다. 즉,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힘이 센 사람이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거나 힘이 약한 상대에게 화풀이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회사에서 상사에게 크게 혼이 나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별일 아닌 일로 어머니에게 화를 내면, 기분이 크게 상한 어머니가 별안간 가만히 있던 아이에게 트집을 잡아 화를 내고, 어머니에게 혼이 나서 속이 상한 아이는 급기야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데까지 ‘화’가 이르는 것을 빗대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처럼 ‘고양이 걷어차기 효과’란, 분노가 강한 쪽에서 약한 쪽으로 흐른다는 이치를 설명하는 것으로, 을에 대한 권력자의 ‘갑질’ 행태나 사회적인 약자를 겨냥한 범죄행위,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 잔혹한 동물 학대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 경우라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분노는 때로 옳고 그름보다는 사회적 지위나 힘의 세기를 근거로 표출될지, 말지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분노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상대가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정말로 나의 실수나 잘못 때문에 상대방이 화가 났다면,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한 후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방의 분노 표출이 과하다거나 납득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고양이 걷어차기 효과’에서 말한 고양이가 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겠죠. 그럴 때는 상대와 나와의 사회적 위치나 관계, 역할에 따라 취해야 할 포지션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텐데요. 만약 상대가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사람이라면 다양한 방식으로 항의하거나 반격할 수도 있고, 그것조차 귀찮을 때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거나 무시하는 방법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거나 계속해서 봐야 할 사람이라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섣불리 반격했다가는 다시 역풍을 맞을지도 모르고, 단순히 피하거나 무시하는 것만은 답이 될 수 없기 때문이죠. 이때는 상대의 분노가 나의 내면에 흡수되지 않도록 상대와 나의 감정을 분리해야 합니다.

옳고 그름이나 상황에 맞지 않게 과도하게 화를 분출하는 것은, 그의 감정 조절 능력이 미숙하거나, 자신의 분노를 타인에게 전가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상대의 감정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럴 때 상대의 분노에 맞대응해서 똑같이 화를 낸다면 분노한 사자에게 먹잇감을 던져 주는 꼴이 되어 파국으로 치닫기 십상이므로, 나라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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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분노’라는 감정도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 중에 하나이므로, 분노를 느끼는 그 자체는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분노라는 감정을 스스로 잘 소화하거나 다루지 못한 채 부적절하고 과도하게 표출할 경우 타인에게 감정적인 상처나 피해를 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언뜻 보기에 분노라는 감정은 타인의 잘못이나 실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때로는 자신의 분노를 깊숙이 들여다봄으로써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성장하는 계기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거나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무력감과 결핍감, 두려움이나 외로움을 느낄 때도 타인이 자신의 욕구를 채워 주기를 바라며 ‘분노’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분노에 감춰진 진짜 욕구나 감정을 타인이 정확하게 읽고 알아서 채워 주기란 불가능에 가깝죠. 그러니 분노라는 감정은 각자의 몫이며, 이를 통해 자기 안에 숨겨진 진짜 욕구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우리가 분노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토대로 분노 폭발이 아닌 내 감정과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방법을 모색하며 적절한 자기표현을 할 수 있을 때, 분노를 생산적으로 활용함과 동시에 억울하게 엉덩이를 걷어차이는 고양이도 점차 없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장승용 원장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인하대병원 인턴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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