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초반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최근 들어 부쩍 더 많이 드는 생각이 있어 고민이 되어 사연을 적어 봅니다. 그건 바로,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제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자꾸 그리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0대부터인가 저는 스스로에게 정말 진심으로 오랫동안 사랑한 연인이 있었고, 그 연인이 오래전에 죽어서 아직도 그 사람을 사무치게 그리워한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 상상은 사실이 아닙니다. 전 살면서 연애를 해 본 적이 없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그 사람이 너무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고 보니 기억상실로 인해 그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망상까지 하게 되죠. 그리고 누구보다도 그게 사실이 아니라 허구, 터무니없고 비합리적이며 비현실적인 망상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 생각을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 

제 나름대로 생각했을 때 이 망상의 원인은 미디어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영화를 비롯한 창작물을 많이 접하고 스토리, 콘텐츠에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래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주인공’이라는 여러 매체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보고 나 자신과 동일시하여 깊이 감정이입 했을 수도 있겠다는 추측입니다.

당연히 이 망상은 망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만약에 정말, 정말로 내가 기억을 잃어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아주 약간의 희망을 버리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게 사무치듯이 그리운 감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건 망상장애의 일종일까요? DSM-5에서 말하는 망상장애의 정확한 진단 기준은 모르겠지만... 이 증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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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올려 주신 사연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최근 들어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에 대한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느끼고 있고, 그 대상이 오랫동안 사랑하는 연인이었으며, 그 연인이 오래전에 죽어서 볼 수 없기에 그리워하고 있다는 다소 구체적인 내용의 망상을 하고 있는 점이 고민이신 것 같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이러한 망상적 사고가 혹시라도 망상장애의 일종일지 걱정되는 측면이 있고, 망상장애가 아니라면 이러한 망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이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궁금하여 사연을 올려 주신 듯합니다. 사연자님을 직접 뵙지 않은 상태에서 사연글만으로 사연자님께 진단 여부나 정확한 원인 및 명확한 설명을 드리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리며, 여기서는 사연글을 토대로 몇 가지 추측되는 측면이나 사연자님께 나타나는 망상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참고할 만한 내용을 위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사연자님께서 궁금해하시는 망상장애에 관해 간단히 설명을 드리면, 망상장애란 쉽게 변하지 않는 잘못된 믿음이나 망상이 주 증상으로 나타나는 질명으로, 망상의 내용이 기괴하거나 특이하지 않고 비교적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망상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으로는 유전적 소인이나 신경학적 장애 등의 생물학적 요인, 사회적 요인 및 억압된 무의식 등이 편집적인 상태로 발전한다는 정신역동적 요인 등이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망상장애의 유형으로는 어떤 특정인과 사랑에 빠졌다고 상상하는 색정형, 자신에게 위대한 재능이나 힘이 있다고 믿는 과대형, 명확한 증거도 없이 배우자의 외도를 의심하는 의처증이나 의부증 또한 질투형 망상장애에 포함됩니다. 또,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거나 누군가 악의적으로 자신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믿는 피해망상, 자신에게 어떤 신체적 결함이 있다거나 질병에 걸렸다는 신체형, 뚜렷한 하나의 망상 유형으로 분류할 수 없는 혼합형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망상장애는 DSM-5의 진단 기준에 따라 다음의 사항들을 모두 만족하는 경우에 전문가의 면밀한 진단하에 내려질 수 있습니다. 다음의 진단 기준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A. 1개월 이상의 지속 기간을 가진 한 가지(혹은 그 이상) 망상이 존재한다.
B. 조현병의 진단기준 A(망상, 환각, 와해된 언어, 극도로 와해된 행동, 음성 증상 중 2가지 이상이 1개월간의 기간 동안 상당 부분의 시간에 나타남)에 맞지 않는다.
 - 주의점: 환각이 있다면 뚜렷하지 않고, 망상 주제와 연관된다(예: 벌레가 우글거린다는 망상과 연관된 벌레가 꼬이는 감각).
C. 망상의 영향이나 파생 결과를 제외하면 기능이 현저하게 손상되지 않고 행동이 명백하게 기이하거나 이상하지 않다.
D. 조증이나 주요우울 삽화가 일어나는 경우, 이들은 망상기의 지속 기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다.
E. 장애가 물질의 생리적 효과나 다른 의학적 상태로 인한 것이 아니고, 신체이형장애나 강박장애와 같은 다른 정신질환으로 더 잘 설명되지 않는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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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신가요? 사연자님의 망상과 관련하여 위의 진단 기준에 전부 해당한다고 판단하신다면, 또한 망상에 빠지는 시간이 점차 증가하거나 그로 인해 스스로 불편감이 느껴지고 일상생활 혹은 대인관계나 직장생활에까지 영향을 받을 정도라면, 전문가와의 면담을 통해 상담을 받아 보시기를 권유드리는 바입니다.

망상장애의 경우, 급성 발병이 많고 대게 만성적으로 진행되면서 회복이 쉽지 않은 예후를 보이기 때문에 징후가 나타난 초기에 진단 및 치료를 시작할수록 치료 성공률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다만, 망상장애 환자의 경우 대부분 임상적인 양상에서 병식(insight)이 없는 특징을 보이는데, 여기서 병식이란 병을 갖고 있는데 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부정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자신에게 망상장애가 있지만 병식이 없는 환자들은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에 의해 진료실을 찾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더라도 의심이 많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치료적 관계를 형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요.

사연자님께서 보이는 망상의 유형을 굳이 나누자면, 특정인과 사랑에 빠졌다고 상상하는 ‘색정형’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하는 망상의 내용이 현실이 아닌 망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어 현재 시점에서 망상장애로 진단받을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망상은 비단 망상장애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스트레스나 정신적인 압박, 정서적 충격 등의 스트레스 및 불안감 등이 원인이 되는 심리적 요인, 알코올과 같은 약물 중독으로 인한 뇌 손상, 뇌 구조 및 신경전달물질 기능의 문제 발생, 양극성 장애나 조현병과 같은 다른 정신과적 질환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기에, 사연자님께서 보이시는 망상과 관련해 보다 정확하고 전문적인 이해를 원하신다면 직접 진료실에 방문하시어 상담을 받아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또한 현재 상황에서 사연자님의 망상적 사고가 더 심화되지 않도록 현실적인 노력을 기울이신다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망상의 주된 개념은 바로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환자가 비현실적인 사실을 마치 현실처럼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망상이 시작될 때 망상이 계속 뻗어 나가도록 내버려두지 마시고 일단 망상이 시작됐음을 인식한 후에 망상을 중단시킬 만한 활동들을 찾아서 해 보는 것이죠. 

몸을 움직이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다른 정신을 집중시킬 만한 활동을 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집안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거나 동네 산책 또는 러닝, 사이클 등 운동을 하거나 그 밖에 좋아하는 취미 활동을 하셔도 좋겠지요. 이렇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망상적 사고에 함몰되어 현실감각을 잃거나 판단력이 왜곡되지 않도록 자꾸만 현실감각을 일깨우는 활동들을 시도해 보세요. 

마찬가지로 이성과의 연애나 대인관계 역시 상상 속에서가 아닌, 친구나 가까운 지인들과 실제적인 만남이나 대화를 통해 현실에 더 발을 딛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시간을 늘려 가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이렇게 사연자님께 소중한 혹은 새로운 사람과 만나서 갖는 의미 있는 관계나 유익한 시간, 또 소소하지만 재미있고 생산적인 활동들로 일상생활을 채워 가신다면, 걱정하시는 망상에 빠져드는 시간을 점차 줄여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앞으로는 망상이 아닌, 현실의 세계에서 진짜 주인공으로서의 멋지게 살아 나갈 사연자님의 삶을 응원하겠습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장승용 원장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인하대병원 인턴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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