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 총 2가지를 언급했고요. 하나는 ‘애초에 할 수 없는 것을 원해서다.’였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1~5번째 연재 내용을 참고해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가짜 이유를 진짜 이유로 착각하기 때문이다.’였습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두 번째 내용을 더 어렵게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 상담 사례를 통해 ‘가짜 이유, 진짜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가짜 이유, 진짜 이유’와 관련하여 여러분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시간으로 꾸며보고자 합니다. 제가 제 글 내용의 바탕에는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이 있다고 말씀을 한 번 드렸었는데요. ‘진화심리학’에 대해서는 8번째 연재에서 한 번 다루었고요. 오늘은 ‘뇌과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정말 신비한 뇌과학의 세계이니, 저랑 한 번 떠나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몇몇 분들의 댓글을 보니, 제 글이 과학적이어서 좋다고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오늘은 제대로 과학 이야기만 해보려 합니다. 과학에 흥미가 없으신 분들은 굳이 이 연재를 안 읽으셔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뇌과학에서 유명한 ‘리벳 실험’ 이야기부터 해보려 합니다. 벤자민 리벳이라는 분이 1980년 대에 수행했던 실험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꽤나 많은 충격을 던져주어서 아직까지 그 결과에 대한 해석으로 설왕설래 중인 실험입니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 언급하는 이 실험에 대한 해석은 아직 과학자들 사이에서 합의된 해석은 아님을 미리 밝혀드립니다. 여러 해석으로 나뉘어서 논쟁이 있지만, 저는 이하에 언급한 해석이 개인적으로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해석이 더 맞을지는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판가름이 나겠지요. 저는 임상의사이기 때문에 ‘리벳 실험’이 우리 인생에 던져주는 메시지에 초점을 맞춰서 기술을 하고자 합니다. 최대한 사실과 해석을 구별해서 기술하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이 글이 정통 과학으로 분류되는 글은 아니기에, 약간의 혼재가 생길 수 있는 점에 대해서는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과학의 엄밀함도 지키고, 대중에게 쉽게 전달도 하고, 이런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능력은 제게는 없습니다. 제 연재에서 언급했듯이 할 수 없는 것은 원하지 않겠습니다.

 

여하튼 리벳 실험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리벳 실험은 실험 설계 자체가 복잡한 실험은 아닙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당신이 손가락을 들고 싶을 때 언제든 손가락을 드세요.’라고 주문한 것이 실험 내용의 모두입니다. 단, 당신이 손가락을 들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에 시간만 check 해달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그리고, 실험 참가자들의 머리에 뇌파 측정기를, 손가락에 근전도를 측정하는 기구를 달고 실험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래서 리벳이 측정하고자 한 것은 총 3가지 시간입니다. ①손가락을 들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의 시간 ②뇌파가 움직인 순간의 시간 ③손가락이 실제로 움직인 순간의 시간 이렇게 총 3가지 시간의 선후 관계를 측정한 것이 리벳 실험입니다.

실험 설계 자체는 어렵지 않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실험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은 실험 결과 때문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관점에서 보면, ‘①손가락을 들고 싶다고 생각 → ②뇌파가 움직임 → ③손가락이 실제로 움직임’ 이런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실험 결과는 우리의 상식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②뇌파가 움직임 → ①손가락을 들고 싶다고 생각 → ③손가락이 실제로 움직임’ 이렇게 결과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 실험 이후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는가?’라는 논쟁에 불이 지펴져서 아직까지도 논쟁 중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손가락을 들고 싶다고 의지를 내기 이전부터 뇌파는 움직이고 있는데, 그렇다면 내가 순수하게 자유의지로 손가락을 든 것이 맞는가? 그렇다면 내 의지 이전에 움직인 뇌파는 누구의 의지인가? 이런 복잡한 의문들이 따라왔던 것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앞서 언급했듯이 이 실험의 해석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있지만, 제가 선호하는 해석은 ‘인간에게 free-will은 없지만, free-unwill은 있다.’입니다. 즉, 손가락의 움직임을 시작하게 하는 것은 순수하게 우리의 의지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과학 용어로 이야기하면, 손가락을 들고 싶다고 생각하기 전에 움직인 뇌파를 ‘준비 전위’라고 하는데요. 이 준비 전위의 확률분포는 과거(진화의 역사)에서 만들어진 채로 우리는 태어났습니다. 태어나서 ‘나는 손가락을 움직일 때 이런 이런 확률분포로 움직여야겠어.’라고 선택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순수한 의미에서 free-will은 없다.’라고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럼 free-unwill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리벳이 직접 언급한 말을 빌리면 전달이 쉬울 것 같습니다. 리벳은 ‘우리가 손가락을 움직이고 싶다고 생각하기 이전부터 뇌파가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 자유의지에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손가락이 실제로 움직이기 이전에 우리가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리벳이 한 워딩 그대로는 아니지만, 의미는 전달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인즉슨,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 준비 전위의 확률분포는 우리의 의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준비 전위가 일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쉽게 설명을 드리면,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 준비 전위는 한 번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확률 분포를 가지고 여러 번 일어납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러 번 일어난 준비 전위를 모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거부하고 거부하고 거부했다가 하나를 선택해서 손가락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준비 전위의 확률분포는 우리의 의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 확률 분포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우리의 의지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일어나는 준비 전위를 거부하는 힘을 통해서요. 그것이 가능한 것은 실제로 손가락이 움직이기 이전에 우리는 손가락을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로 free-unwill은 있다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과학 이야기이다 보니, 다소 어렵게 느껴지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 내용을 모두 이해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리벳 실험이 제 강의 내용과 어떤 연결지점이 있는 것이고, 우리 삶에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인가가 더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강의 내용을 거칠게 정리하면 ‘there & then에 형성된 심리 기제가 나도 모르게 반복 작동되고 있다.’일 것입니다. 리벳 실험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아주 사소한 행동조차도 there & then에 형성된 패턴이 나도 모르게 반복 작동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사소한 행동조차도 그러할 진데, 우리의 복잡한 생각, 감정, 행동은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너무나 많은 패턴들이 들어있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알지 못한 채 ‘내가 이러이러한 이유(가짜이유)로 주체적으로 한 것이야.’라고 주장을 한다면, ‘굿 윌 헌팅’의 윌이나,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상담 사례의 내담자들처럼 인생을 살아가‘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 분들도 예외는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삶을 의지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되어있는(自然) 우리의 삶을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 하나라도 더 알아가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나조차도 알지 못했던 진짜 내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추신: 리벳 실험은 제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의미가 깊었던 실험이었습니다. 한참 뇌과학 공부에 빠져 여러 책을 섭렵하고 있다가, 리벳 실험을 접하게 되었고,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뭐야, 이 결과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해?’라는 생각에 머리를 정말 싸매 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책을 읽고 고민을 하고 반복하다가 갑자기 제 자신이 툭 떨어져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하!’라는 기분 좋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전까지 저는 제 자신이 ‘피부라는 껍데기에 둘러 쌓여 있는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정말 아등바등 살아왔습니다. 제 자신을 어떻게든 해보려고요.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제 자신은 어떻게든 해보려 하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제 자신은 그냥 그렇게 되어있는 것(自然)이었습니다. 그 지점에 이르니 제 자신이 ‘피부로 둘러 쌓인 껍데기’ 안에서 툭 떨어져 나와 분리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조그마한 점이 되어 ‘피부로 둘러 쌓인 껍데기’를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조금씩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어 가더라고요. 나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하나씩 알아가니까 나 자신이 통제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도 찾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조차도 알지 못했던 진짜 내 이야기를요. 이어지는 연재를 통해 계속 그 여정을 떠나보겠습니다. 오늘은 제 이야기를 주절주절 좀 해봤네요. 관심 가져주시고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 말씀도 전합니다.

- 내친김에 다음 연재도 ‘뇌과학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가 보겠습니다.

 

※ 본 연재는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강의 내용을 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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