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시험... 이게 뭐라고 참 많은 사람들이, 청춘의 많은 시간을 시험 준비에 소비하고 있습니다. 중,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끝날 줄 알았던 시험이, 대학교에서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도 우리 인생에서 줄줄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진짜 시험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우리의 시간을 이렇게 좀 먹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그렇게 내버려두어도 괜찮은 일일까요? 이건 꼭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청춘이라는 시간을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험은 정말 필요해서 존재하는 것일까요?
 

사진_픽셀


여기에 대한 의문에 재미있는 실험 하나가 있습니다. ‘운인가 능력인가’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재현해서 보여준 실험인데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최후통첩게임이라는 것을 진행합니다. 최후통첩게임이란 두 명의 사람이 자원 배분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는 실험인데요. 한 사람은 제안자(A)가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응답자(B)가 됩니다. 과학자는 제안자에게 10만원을 주고 일부 금액을 응답자와 나누어 가지라고 지시를 합니다. 응답자는 제안자가 제시한 금액을 보고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면 됩니다. 응답자가 수용할 경우 제안자가 제시한 금액대로 나누어가지게 되고, 응답자가 불응할 경우 양쪽 다 돈을 받지 못하는 형태의 게임입니다. 이 게임을 진행해보면 대부분 5:5 ~ 6:4 (제안자 : 응답자) 정도의 비율로 자원배분이 일어납니다. 제안자가 극단적으로 9:1 정도로 배분하겠다고 하면, 응답자가 1만원이라도 받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공정하다고 생각해서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응답자가 수용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범위 내에서 자원 배분이 결정이 됩니다. 그것이 5:5~6:4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이 실험에서는 추가적인 설정을 하나 더하였습니다. 제안자와 응답자를 랜덤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시험을 보게 한 다음 점수가 높은 사람을 제안자로, 점수가 낮은 사람을 응답자로 배정을 한 채 실험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제안자와 응답자의 자원배분 비율이 7:3 정도로 수렴하는 현상이 보였습니다. 자원의 배분이 더 불평등하게 이루어진 것이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시험을 잘 본 것과 자원배분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지요? 시험을 잘 보는 것이 자원 배분을 더 공정하게 하는 원인이라도 되는 걸까요?

사실 시험 성적과 자원 배분 사이에는 그 어떠한 인과관계도 없습니다.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험은 실제로 우리가 업무를 수행하는 것과 별로 인과관계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정말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 고등학교 때 배우고 시험 쳤던 것들이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얼마나 도움이 되셨나요? 저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중고등학교뿐만이 아닙니다. 대학 교육은 어떤가요? 사실 가장 실용적이어야 할 의학 교육조차도 쓸모없는 것들이 가득합니다. 똑똑한 학생들 뽑아 놓았지만, 의대생들이 하고 있는 모습은 앞 글자만 따서, 말도 안 되는 말 지어내서, 억지로 외우고, 시험 때 급하게 써서 내고, 시간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를 반복하는 것이 일입니다. 저는 이미 의사가 되었지만 그러한 방식의 공부들이 지금 의사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왜 이러고 있을까요?

 

만약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교육하고 시험을 본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요? 중고등학교 6년 필요 없습니다. 그만큼 많은 양의 공부도 필요 없습니다. 시험도 필요한 만큼만 보면 어려울 일도 없습니다. 상당히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변별력이라고 하죠. 이렇게 하면, 순위를 가를 수 있는 변별력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자원을 차등 배분할 명분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교육과 시험은 필요성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그토록 배웠던 많은 지식의 실제 쓰임새가 이렇게 떨어지지 않았겠지요. 교육과 시험은 자원의 차등배분을 위한 명분만 제공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쓸모없는 것을 어렵게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청춘들은 희생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희생되고 있는 이면에서는 아무런 희생 없이 많은 자원을 차지하고 있는 금수저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그것과 관련해서는 1편에서 충분히 다루었습니다.

세상이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시험으로 불운해지는 청춘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기에는 시간이라는 자원이 너무 아깝지 않을까요? ‘너네 노력이 부족한 거야.’라고 우리 청춘들에게 귀책을 하기에는 ‘정유라’ 같은 사람은 무엇인가요? 그렇게 귀책하는 것은 기득권들이 자신의 자원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명분이 아닐까요? 계속 그런 식으로 사회를 유지하기에는 우리도 이제 아는 것이 좀 많아졌습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사회를 유지하지 말고 이제는 다시 새판을 짜는 노력이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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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인가 능력인가’ 프로그램 말미에 나온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33살의 공무원 시험 준비생의 인터뷰 장면이었는데요. 제작진이 꿈에 대해 물어보자 머뭇머뭇거리면서 말을 잇지 못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분은 울먹거리면서 ‘꿈, 꿈, 꿈이?, 꿈....’이라고 같은 말만 반복하며 말을 잇지 못하였습니다. 그 짧은 대답 안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말줄임표 안에 너무나 많은 의미가 담겨있어서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제가 삼수 끝에 의대에 진학해서 더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저라고 저 상황이 되지 말라는 법 없었습니다. 남의 얘기가 아니더라고요. 그냥 우리네 청춘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로또 같은 시험에 우리 청춘들이 낭비되고 희생당하고 있는 것은 더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는 청춘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희생 없이도 많은 자원을 소유하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이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건, 이건 더 이상은 아니지 않나요? 의미도 없고 쓸모도 없는 시험 앞에 더 이상 희생되는 청춘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시험이 아니라 꿈이 아닐까요? 적어도 꿈을 묻는 질문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청년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꿈을 꿀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이 청춘이니까요.

 

‘운인가 능력인가’ 프로그램 말미에 나오는 나레이션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청춘들이 마음껏 내일을 그려나갈 오늘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요? 더 늦기 전에 말이죠.”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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